녀노소를 막론하고 허리가 잘록한 사람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배가 나오지 않은 사람 중에서도 팔다리 근육은 빈약하고 복부의 장기 사이에 내장지방이 낀 ‘마른 비만’인 경우가 상당수다. 고혈압 비만 당뇨병 고지혈증 심장병 뇌졸중은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질환이다. 발병의 양상은 달라도 뿌리는 한군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알면 성인병 또는 생활 습관병으로 불리는 현대인의 복합적인 만성질환을 예방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이를 설명하는 키를 쥐고 있는 의학 용어가 ‘대사(代謝)증후군(metabolic syndrome)’이다. 미국 국립 콜레스테롤 교육 프로그램(NCEP)이 제시한 대사증후군의 진단 기준은 다음 5가지 중 3가지 이상을 충족한 경우다. ①복부 비만: 남성은 허리둘레가 90cm 이상, 여성은 80cm 이상 ②중성지방: 150mg/dl 이상 ③고밀도지단백(HDL)과 결합한 콜레스테롤: 남성 40mg/dl 미만, 여성 50mg/dl 미만 ④공복 혈당: 110mg/dl 이상 또는 당뇨병 치료 중 ⑤혈압: 수축기 130mmHg 이상 또는 이완기 85mmHg 이상 등이 5가지 진단 기준이다.대사증후군을 안고 있다는 건 다른 질환이 동시 다발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사망할 위험도 크게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당뇨병 환자 중 50∼60%에서 고혈압이, 70∼80%에서는 고지혈증이, 약 60%에서 복부 비만이 발견되고 있다. 역으로 고혈압 환자의 20∼30%는 당뇨병을 지니고 있다. 더 쉽게 얘기하면 당뇨병 환자는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언젠가 고혈압이 될 확률이 100%인 반면 고혈압이 당뇨병이 될 위험은 상대적으로 낮다.이런 모든 위험은 과잉 열량 섭취와 운동 부족으로 인한 비만과 고지혈증에서 시작된다. 지방을 과잉 섭취한 경우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이 혈관 벽에 쌓이고 그 위에 칼슘 등 부스러기가 들러붙게 된다. 이는 이물질로 여겨져 백혈구(대식세포)의 공격을 받게 되고 이에 따라 혈관벽에 염증이 생겨 혈관이 탄력이 없고 균열되기 쉬운 상태로 변한다.혈관벽에 뭉친 혈전은 더 크고 단단해지는데 이것이 떠돌아다니다가 좁아진 심장 관련 혈관을 완전히 막으면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이 되고 뇌와 관련된 혈관을 차단하면 뇌졸중이 된다.또 탄수화물을 다량 섭취하면 췌장은 혈당을 처리할 인슐린을 만드느라 과로하게 된다. 이것이 일상화되면 같은 양의 혈당을 처리하는데 더 많은 인슐린이 필요하게 된다. 췌장의 과로와 인슐린의 저효율성이 심화되면 췌장은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지며 한두 가지 약만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중증 당뇨병으로 악화된다. 위험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혈당이 조절되지 않으면 식후에 고혈당이 나타나고 이때 인슐린도 정상치보다 높아져 고인슐린혈증이 된다.이렇게 되면 인슐린이 체내에 지방을 저장해 놓으려는 특성이 강해져 비만과 고지혈증이 심화된다. 당뇨병은 또 혈관의 자정작용을 떨어뜨리고 물러진 혈관 벽에 각종 노폐물이 끼게 해 혈관의 탄력성을 떨어뜨리므로 고혈압이 오기 쉽다.요즘 30대 직장인의 14.8%가 2년 만에 대사증후군에 걸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지난해 3월 발표됐다.연이어 성인 당뇨병 환자의 79%(여성 85%, 남성 73%)가 고지혈증 또는 비만 등을 동반해 장차 심근경색 및 뇌졸중에 빠질 수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게다가 대사증후군은 암과 발기부전 위험도 높인다고 하니 배를 줄자로 재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식사량을 줄이고 운동을 열심히 하고 이래도 안 되면 의사에게 약을 처방받아 꾸준히 복용해야겠다.정종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