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할 나위 없이 가격은 공급과 수요의 함수다. 가격은 언제나 공급과 수요의 양이 일치하는 지점에서 결정된다. 이것이 가격 결정의 메커니즘이다.그러나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 가격이 내리면서 오히려 수요가 감소하는 사치재가 있는가 하면 부동산 시장에서는 가격이 오를 때 공급이 줄어들고 오히려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주식 시장에서도 가격 메커니즘의 예외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코스피지수가 2000을 넘던 호시절은 차치하고라도 지난 봄 이 지수가 1700~1800에 이를 때에는 ‘사자’ 세력이 제법 기세를 떨치더니 정작 주가가 추가로 하락하면서 시장은 완연히 맥이 빠져 있다. 더 비싼 값에도 샀던 물건을 이제는 훨씬 싼 호가에도 손을 내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소위 전문가라는 이들도 다를 바가 없다. 장밋빛 전망이 대세를 이루던 ‘지수 2000’ 시절과는 대조적으로 이들의 입에서는 비관적인 전망이 넘쳐흐르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이니 펀드 런(대량 환매)이 발생하지 않고 있는 것이 그나마 천만다행인지도 모르겠다.그도 그럴 것이 세계 경제는 지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의 충격과 고유가에 두 손 두 발이 다 묶여 있다. 신용 경색, 고용과 소득의 감소, 경기의 후퇴와 인플레이션(이 둘을 합하면 스태그플레이션이 된다)의 위협에 이어 제5차 중동전쟁의 발발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악재는 끝이 없다. 18개월 내에 미국의 은행이 150개는 문을 닫을 것이라는 충격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야말로 좋은 뉴스라고는 약에 쓰려 해도 없는 셈이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보면 세상이 다 어둠뿐인 듯하지만 칠흑 같은 그 어둠 속에서도 세상은 조금씩 밝아오고 있는 법이다. 그러기에 블랙 먼데이의 충격이 주택대부조합 파산으로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우지수는 2년 만에 붕괴 직전의 주가를 회복했고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로 직격탄을 맞은 주가가 제자리를 찾는 데 필요했던 시간은 고작 14개월에 불과했다. 시야를 넓혀 보아도 하락장이 3년 이상 간 예를 우리는 찾을 수가 없다.주가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유력한 수단으로 평균회귀라는 개념이 있다. 경기가 그렇듯이 주가도 장기추세선을 중심으로 파동을 그리며 나아간다. 어떤 주가가 장기추세선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다면 그 주가는 추세선으로 돌아가려 하기 때문에 하락하게 되고 반대로 아래에 있으면 주가는 상승한다. 개별 주식의 경우에는 예외도 있겠지만 시장 포트폴리오는 철저하게 이 장기추세선 위에서 평균에 수렴한다. 이 추세선은 또한 경제가 성장을 계속하는 한 우상향할 수밖에 없다.지난 5, 6년 세계 시장은 좋은 시절을 누려 왔다. 돌이켜 보면 주가 상승의 일부분은 장기추세선을 벗어나 더 높은 곳에 있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의 시련은 지난 수년 간 세계 경제가 누려 왔던 호시절에 대한 자기 반성의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 반성이 다소 지나쳐 주가가 추가로 하락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이번 충격으로 상당 기간 세계 경제는 홍역을 앓을 수밖에 없겠지만 고유가와 경기 침체에 이은 수요의 감소가 상품 가격을 떨어뜨리게 되고, 이는 경제의 회복 능력을 복원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국내 주식은 최근 주가 하락으로 주가수익률(PER)이 10배 안팎으로 떨어졌다. 길게 보면 좋은 주식을 싼값에 살 수 있는 지금이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하나은행 목동역지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