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국 드림월드 회장

년 한 부산 사나이가 인도네시아 발리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쓰라린 실패를 안고 떠나는 사나이의 마음속엔 회한이 가득하다. 전도유망한 청년 사업가에서 하루아침에 실패자로 떨어진 지난 세월을 곱씹으며 발리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지금 발리 부동산 재벌로 우뚝 선 드림월드 한정국 회장은 그렇게 정든 고국을 떠나야만 했다. 남들보다 빨리 찾아온 성공은 결코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성공은 잠시 머무르는 안개와 같다는 격언을 처음 뼈저리게 경험한 것도 그때라고 털어놓는다.대학 졸업 후 롯데삼강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한 회장에게 기회는 일찍 찾아왔다.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사업가 기질 때문일까. 처음부터 그는 승승장구해 창업 5년 만에 5~6개 기업을 거느린 중견 기업의 경영자로 성장했다. 당시 정부로부터 부산·경남 지역에서는 최초로 우수 중소기업인에 선정될 정도로 그는 성공 가도를 달렸다.“우수 중소기업인에 선정되면 은행에서 연 5%로 대출을 해주던 때였습니다. 당시 은행 예금금리가 두 자릿수였으니까 대출받은 돈으로 은행에 예금만 해도 돈을 벌 수 있었죠. 그러나 너무 어린 나이에 성공을 맛봐서 일까요. 그게 결국은 저를 자만의 길로 내몰았던 것 같습니다. 성공에 도취돼 있는 사이 회사는 조금씩 기울고 있었으니까요.”급기야 1990년 목재 회사가 부도를 맞으면서 그의 화려한 성공 신화는 막을 내렸다. 최고급 승용차에 수백 명의 종업원을 거느리던 사업가에서 하루아침에 그는 실패자의 자리에 서 있었다.그때 머릿속을 스쳐가던 것이 인도네시아 발리였다. 1988년 한 잡지에서 본 경치에 매료돼 여름 휴가차 찾은 발리가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 회장은 말한다. 한창 잘나가던 시절 그는 당시 유럽인들 사이에서 휴양지로 주목받기 시작한 발리를 다녀왔었다. 신들의 섬, 세계 최고의 휴양지인 발리가 어쩌면 그에겐 사업 실패의 아픔을 이겨낼 피난처였는지도 모른다.“회사를 정리하면서 직원 몇 명에게 발리로 가서 다시 시작하자고 제안했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인도네시아에서 목재를 한국으로 수출하는 것이 꽤 괜찮아 보였습니다. 목재업을 워낙 오랫동안 해봤기 때문에 자신도 있었습니다.”그러나 쉽게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숱한 실패를 경험해야 했다. 자신 있었던 목재업은 물론 유리컵, 난초 수출이 번번이 실패로 이어지면서 그는 철저하게 깨졌다.“한 번은 바닷가재를 얼음과 함께 넣어 한국에 수출했는데 어이없게도 본심사에서 통관이 딱 막히더라고요. 혹시나 해서 사전에 샘플 몇 개를 수출했는데 그땐 분명히 문제가 없었거든요.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는 쉽게 이뤄졌는데, 한 번 실패한 다음 다시 일으키는 데는 그보다 몇 배 더 어려움이 뒤따랐습니다.”그렇게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7차례 실패를 경험했다. 그런 한 회장에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말 그래도 칠전팔기의 기회였다.“쿠타 해변 근처의 한 임대 주택에서 살던 때였습니다. 수라바야에 가서 5년 동안 일하고 왔는데 그 사이 그 동네 땅값이 200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부동산의 ‘부’자도 모르고 살아왔는데 실제 내 눈앞에서 그런 광경이 벌어지니 자연히 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둘씩 바다가 보이는 땅을 매입하기 시작했던 것이 오늘날 이렇게 됐습니다.”쿠타 해변 근처에 럭셔리 풀 빌라 리조트 드림랜드를 건설한 것도 우연한 기회에서 비롯됐다. 발리는 지역색이 강한 도시다. 이 때문에 각 마을 촌장의 권한이 절대적이다. 난데없이 그가 드림랜드라는 리조트를 건설하겠다고 하자 마을 주민들의 반발이 극에 달했다. 외국인이 자신들의 허락도 받지 않고 건물을 짓겠다고 하니 주민들로선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발리 역시 지역 주민들의 의견이 개발에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에 지역민의 불만을 무마하지 않고는 사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 한 회장은 마을 촌장의 허락을 얻어내기 위해 삼고초려했다. 세 번째로 마을을 방문할 때는 그의 진입을 막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죽창을 들고 서 있을 정도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마을촌장과 대면한 자리에서 그는 지역 주민 상당수를 직원으로 채용할 것과 마을 전체에 상하수도, 전기 등 일체의 시설을 무상으로 제공할 것을 약속했다.당시 3.3㎡당 1만3000루피에 구입한 드림랜드 땅은 5년이 지난 지금 3.3㎡당 27만 루피까지 치솟았다. 또 발리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운영 수익도 상당하다는 것이 한 회장의 설명이다. 드림랜드 성공 이후 그는 럭셔리 풀 빌라 오션블루I과 오션블루II 등을 잇달아 건설했고 여기서 얻은 이익을 부동산을 매입하는데 재투자하면서 한 회장은 발리에서 토지를 가장 많이 보유한 외국인이 됐다. 막대한 토지를 계속 매입하는 그의 행보에 대해 현지 찬반 논쟁이 일 정도다.드림랜드, 오션블루의 성공에 고무된 그는 최고급 리조트 개발에 여념이 없다. 이를 위해 사토 드 발리라는 풀 빌라 리조트 브랜드도 만들었다. 반얀트리, 카르마 등 세계적 호텔 체인들이 들어선 웅아산에 지어질 사토 드 발리 웅아산은 8만8000㎡에 89가구의 최고급 풀 빌라를 짓는 프로젝트다. 143.21㎡의 1베드룸부터 419.21㎡의 4베드룸까지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최근 발리의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으며 특히 관광객 수가 연평균 26%씩 늘어나면서 리조트 값이 엄청나게 뛰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여행 잡지 트래블 앤드 레저가 지난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연속 세계 최고의 휴양 섬으로 발리를 선정한 것만 봐도 발리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매년 400만 명 이상이 발리를 다녀갑니다. 일부에서 공급 과잉을 우려하기도 하는데 푸껫이나 사모아에 비하면 아직도 저평가된 측면이 많습니다.”오는 12월 샤토 드 발리 웅아산이 완공되면 그는 향후 발리 최고 관광지로 부상할 파당바이에 초호화 리조트를 건설할 계획이다. 이미 파당바이 주변에는 W호텔, 샹그릴라 등 세계적 호텔 체인들이 대거 건물을 짓고 있다. 샤토 드 발리 파당바이는 반얀트리, 인터콘티넨탈 등 세계 유명 호텔 체인에 운영 전반을 맡길 계획도 갖고 있다.쿠타 해변에서 배로 15분 거리에 있는 누사퍼니다 섬 330만㎡ 부지에는 골프장, 워터파크, 테마파크, 풀빌라 등 종합 레저타운을 건설할 계획이며 발리 섬 내륙에 있는 우붓에도 종합 리조트를 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일본 내 골프장, 리조트 인수도 타진 중이다.“계획대로라면 향후 5년 내 16개 호텔리조트 체인을 가진 기업으로 발돋움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싱가포르 증시 상장도 가능해집니다. UBS은행 싱가포르지사에 실사를 맡겼는데 발리 부동산 시장 상황이 워낙 좋아 긍정적인 의견이 많습니다. 한국 내 마이에셋자산운용에서도 투자 유치를 받았는데 당초 예상치를 크게 웃돌 정도로 시장 상황이 좋아 추가 투자에도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발리 최고의 부동산 디벨로퍼로 우뚝 선 한 회장의 시선은 어느새 인도양과 태평양을 넘나들고 있다.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 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