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 제네바 공장 방문기

월의 제네바 날씨는 조금 성나 있었다. 고급시계박람회(SIHH) 기간에 맞춰 바쉐론 콘스탄틴의 제네바 공장을 방문하기로 한 날에도 어김없이 비바람이 몰아쳤다. 하지만 얄궂은 날씨도 취재에 앞선 기자의 흥분을 가라앉히기엔 역부족이었다. 세계 ‘최고(最古)’ 시계 브랜드의 공장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바쉐론 콘스탄틴의 제네바 공장은 SIHH 전시장인 제네바의 팔엑스포와 가까운 플랑 레 조위테 지역에 있다. 브랜드 250주년 기념으로 지어진 건물이어서인지 장소도 특별히 신중하게 선별했다고. 제네바 공항과의 근접성이 매우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또한 1880년 이후 브랜드의 상징이었던 유명한 말테 크로스를 지역의 문장으로 갖고 있는 점 또한 매우 흥미롭다.팔엑스포에서 출발한 버스가 빗길을 가르며 15분가량 달렸다. 3만㎡에 달하는 널따란 초원 위에 마침내 모습을 나타낸 바쉐론 콘스탄틴 제네바 본사 겸 공장.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최신식 건물답게 모던하고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자연 풍경과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이 건물은 2004년 8월 9일 새로운 제조 공장으로 설립됐다. 바쉐론 콘스탄틴이 개최한 국제 건축 경연에서 우승을 거머쥔 스위스 출생 프랑스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가 디자인했다. ‘가까운 곳에서 우리의 시간과 함께하는 존재’를 디자인 콘셉트로 잡았다. 금속으로 이뤄진 건물 외관은 시간의 활기참을 상징하며 견고한 구조는 영원함을 나타낸다.본격적인 공사는 2002년 12월부터 시작됐다. 이곳 본사 겸 제조 공장은 과감한 디자인, 투명한 구조로 특색 있게 지어졌다. 행정 업무와 생산 업무가 한 건물에서 이뤄지게 했으며, 이를 위해 약 400명의 직원들이 동시에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공식적으로 개관한 것은 9월 8일로, 2년간의 기획과 18개월의 공사가 끝난 후였다. 1755년 창립된 이후 단 한 차례도 그 역사가 끊인 적 없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 브랜드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순간이었다.정문을 들어서자 전시된 축도기가 보이고, 유리와 스틸로 만들어진 계단과 깔끔한 인테리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계를 제조하는 공장과 업무를 보는 사무실이 이질감 없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에서 역시 최첨단 건물이라는 탄성이 흘러나온다.이 공장에는 시계 제조 공정에 관련된 모든 요소들을 한군데로 모아 놓았다. 기계식 무브먼트를 조정하고, 케이스를 고정하고, 점검하는 워크숍과 애프터서비스센터뿐만 아니라 디자인 스튜디오도 포함하고 있다. 단, 무브먼트 등 핵심 부품을 생산하는 곳은 따로 있다.세계적인 브랜드 명성에 걸맞게 성격이 다른 두 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바쉐론 콘스탄틴. 깊은 산속에 있는 발레 드 주의 르 센티에 공장과 기자가 방문한 제네바 공장이 그것이다. 스위스 발레 드 주의 르 센티 제조 공장에서는 연구·개발 및 기계식 무브먼트 부품 생산이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르 센티에 공장에서 무브먼트를 개발하고 생산하면 제네바 공장에선 그 무브먼트를 가져와 조립하고 케이스를 고정하는 등 사후 공정을 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는 식이다.두 공장을 통해 생산되는 시계는 연간 약 1만5000개. ‘두 공장에서 고작?’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거의 모든 공정을 수공으로 하는 데 따른 것이다. 무브먼트 안에 들어가는 기름을 일정하게 떨어뜨리는 기계 등 불가피한 공정을 제외하곤 모두 손으로 제작하고 있는 것. 이러한 정성은 제네바 홀마크 인증으로 공식 인정받고 있다.제네바 홀마크 인증은 받는 것만으로도 브랜드엔 큰 자랑거리다. 쏟아지는 모조품을 막기 위해 생긴 제네바 홀마크는 무브먼트의 정확성 및 신뢰성과 결점 없는 마무리, 폴리싱, 전체적인 미를 확보하는 12가지 구체적인 기준에 따라 완벽하게 검사한 후 조건적으로 부여된다. 브랜드마다 홀마크 인증을 하나 받아내기도 힘든 마당에 바쉐론 콘스탄틴은 모든 제품에 대해 인증을 받고 있다. 이를 위해 수작업을 고집하다 보니 바쉐론 콘스탄틴의 연간 생산량은 업계 최소 수준이다. 이는 대량생산하지 않는다는 명품 이데올로기에도 자연스레 부합하는 것이다. 홀마크 인증에 관한 모든 것은 제네바 공장에서 관장한다.이 브랜드가 계승해 온 풍부한 장인 정신과 기술력은 플랑 레 조위테의 제조 공장이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데 밑거름을 마련했다. 삼박자가 척척 맞아 떨어진 것도 한몫했다. 앞으로도 바쉐론 콘스탄틴은 본사 겸 공장이 있는 플랑 레 조위테 지역뿐만 아니라 발레 드 주의 르 센티에 지역의 공장, 그리고 제네바 심장부의 역사적인 케 드 릴을 주축으로 제네바 시계 제조의 아이콘으로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공장 방문을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오르면서 기자는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역사가 깊은 명품 시계가 오래도록 사랑받고 생존할 수 있는 이유를.제네바(스위스)=김지연 기자 jykim@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