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 우리투자증권 PB R&D팀장

이프 얘기 잘 들어서 재테크에 실패하는 경우는 드물잖아요. 직장 다니는 남성은 집을 살 때도 대출이자 걱정이 앞서 쉽게 못 지르지만 가정주부인 여성은 앞으로 가격이 올라 얻게 되는 기대 이익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 남자들보다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것 같아요.”한정 우리투자증권 PB R&D팀장이 내놓은 부부간의 부동산 투자 패턴에 대한 해석이 이채롭다. 한 팀장은 “남성의 감성이 시골 오솔길이라면 여성은 8차선 고속도로와 같다”며 “남성은 한 가지 일에 몰입하는 데 반해 여성은 육아와 자녀 교육서부터 재테크까지 훨씬 다양한 멀티태스킹을 감내해 내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재테크 여성 우위론처럼 들리지만 지난 10여 년간 PB센터에서 다양한 고객과의 만남에서 형성된 경험칙이다. 최근에는 이 같은 여성 고객들의 사례를 모은 ‘한국의 여자부자들’이라는 재테크 서적도 펴냈다.지난해 말 우리투자증권에 합류한 한 팀장은 사내 85명의 팀장 중 최연소 팀장이자 유일한 여성 팀장이다. 회사를 옮기자마자 사내 팀장 모임의 총무 역할까지 맡을 정도로 사교성이 남다르다.씨티은행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한 팀장은 미래에셋증권 1호 압구정 지점을 거쳐 대우증권 1호 PB센터(압구정)와 1호 자산관리센터(도곡점) 팀장을 지내는 등 줄곧 거액 금융자산가들을 고객으로 상대해 왔다. 은행에서 증권업계로 옮긴 1990년대 후반 미래에셋 압구정점은 현 박현주 미래에셋회장이 가장 공을 들이던 곳이기도 하다.“은행이 안정적 직장이지만 금리로 고객을 잡아두는 영업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미국 선물중개사 자격을 따서 미래에셋으로 옮겼죠. 당시 압구정 지점은 박현주 회장이 지점장보다 더 자주 지점 직원들에게 밥과 술을 사가며 영업을 독려하고 직접 최우수 고객들도 소개해 줄 정도로 남다른 애정을 가졌던 곳이었어요. 덕분에 처음 뛰어든 증권 영업에서 자신감도 많이 생겼죠.”미래에셋 압구정점에서 7년여 동안 고객 자산가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한 후 본격적으로 PB 영업에 도전하기 위해 대우증권으로 옮겼다. 대우증권이 지난해 의욕적으로 추진한 강남 일대 자산관리센터 구축도 한 팀장이 주도했다. PB고객 관리에서 마당발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대우증권 출신인 박종수 우리투자증권 사장이 지난해 한 팀장에게 같이 일하자고 제의했다. 증권사 PB 가운데 우리투자증권이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는 게 한 팀장의 분석이다. “증권업계 1위인 대우의 경우 PB의 전 단계인 자산관리에 역점을 두고 있는 상황이고 삼성은 모든 점포의 PB화를 추진하면서 다소 개인 뱅크화가 되는 분위기인데 반해 우리투자증권은 이미 전 점포가 자산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있어 PB가 자리 잡기에 가장 좋은 여건을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경영진도 PB 확장에 역점을 두고 있어 가장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은 토대를 갖추고 있는 셈이죠.”한 팀장은 10여 년 가까이 자수성가형 부자들을 만나면서 평범한 주부가 수십억∼수백억 원대 자산가로 변모한 사례가 적지 않은 데 놀랐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부를 축적했는지 유심히 살펴봤다. “아침에 일어나면 경제신문을 비롯해 신문 3∼4개를 탐독하며 철저하게 공부하고 공모주나 부동산 등 가장 자신 있는 부분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재산을 불려가는 등 나름의 원칙이 있더라고요.”일례로 남편이 육군 장성인 한 고객은 고등학생 자녀가 대입 준비하는 동안 옆에서 같이 공부해 보석감정사 자격증을 따 부유층 상대의 보석감정 사업으로 큰돈을 모았다. 또 연구원인 남편 봉급으로는 생활이 힘들어 직접 건설업에 뛰어들었다는 70대 여성 고객은 건물을 신축해 매각하는 방식으로 자산을 수백억 원대로 불렸다고 한다.한 팀장은 부자가 되는 사람들에게는 뚜렷한 목표가 있다고 말한다. 그가 11년째 담당하고 있는 한 50대 초반의 고객은 30대 중반까지 삼성 계열사의 평범한 샐러리맨이었으나 십수년 사이 수백억 원대 자산가로 탈바꿈했다.“입사 후 10년 뒤에는 직접 사업을 해야겠다고 목표를 정한 후 정말 만 10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선박부품 무역업에 뛰어들었어요. 현재는 금융자산만 100억 원에 달해요. 자신의 사업에서 얻은 경험을 살려 노르웨이 룩셈부르크 선박 펀드에 한 발 먼저 투자해 고수익을 올렸고 대우조선해양 현대미포조선 등 조선 관련주로도 큰 재미를 봤어요.”이제 갓 50대를 넘긴 이 고객은 앞으로 1∼2년 내 은퇴해 서울의 고궁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는 관광 가이드가 다음 목표란다. 한 팀장은 “젊어서 악착같이 고생해서 돈을 많이 번 고객들은 숱하게 만났지만 부를 이룬 뒤 자신의 새로운 꿈에 도전하는 분은 많지 않다”며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젊은 투자자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사례인 것 같아 개인적으로도 존경한다”고 말했다.한 팀장이 관리하고 있는 PB 고객들은 금융자산이 최소 10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대에 달한다. 월급을 쪼개 자산을 불려 가려는 일반 투자자들과 자산 설계 구조 자체가 다르다. 하지만 이들 거액 자산가들 역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와 이에 따른 증시 급락 등 외부 변수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돈 냄새에 관한 한 타고난 감각을 지닌 이들의 투자 패턴 변화는 시장을 미리 읽을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최근 국내에서는 증시가 1800선을 회복한 가운데 부동산 시장에서는 강북 일부 지역의 아파트가 급등세를 보이고 서브프라임 악몽도 마무리 조짐을 보이는 등 대내외 투자 환경이 터닝포인트를 맞고 있다. 이에 대해 한 팀장은 “대부분의 펀드 투자자들은 ‘이제 안전한가’를 두고 여전히 고민하는 가운데 일부 공격적 투자자를 중심으로 주가수익률(PER)이 크게 낮아진 중국 관련 펀드의 비중을 다소 확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다만 2006년 말께 유럽과 일본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들은 손절매도 못한 채 묻어두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이처럼 여전히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우세한 가운데 지난해 하반기 이후 펀드 급락을 경험한 거액 자산가 중 상당수는 고수익보다 절세 쪽으로 재테크 방향을 선회하는 추세다.“과거에는 펀드의 높은 수익률이 세금 부담을 상쇄할 수 있었지만 지난 6개월간 수익률이 곤두박질치면서 낮은 수익률과 세금이라는 이중고를 치르고 있어요. 특히 5월 종합소득세 납부 시한 등을 앞두고 100억 원 이상 거액 자산가들은 물가연동채권 등 안정적 수익률과 절세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상품에 보다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게 특징입니다. 신용등급이 우수한 신주인수권부채권(BW), 전환사채(CB) 인수나 사모 주가연계증권(ELS) 비중도 높여가는 추세예요.”최근 노원 상계 등 강북 지역의 부동산 가격 급등세에 관심을 두는 고객이 거의 없다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다주택 소유자에 대한 양도세 등의 세금 문제가 풀리지 않는 이상 부동산 투자 매력이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어요. 게다가 고객들 대부분이 이미 다주택 보유 상태여서 강북 지역 부동산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분위기예요. 오피스나 상가에 보다 관심이 많은데 최근엔 목이 좋은 공급 물량이 없어 부동산 투자는 개점휴업 상태나 다름없습니다.”글 김형호·사진 이승재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