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종합건축사사무소(대표 정영균)는 국내 1위 건축 설계 전문 업체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이 회사는 인천국제공항을 비롯해 W호텔 워커힐, 산업은행 본사, 상암동 누리꿈 스퀘어 등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건축물의 설계를 도맡아 왔다. 특히 국내 수주 위주인 경쟁사들과 달리 작년부터 해외에서 100억 원대의 대규모 건축 설계를 연거푸 수주하며 국제 시장에서 한국의 건축 설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코스닥 1000여 개 상장사 가운데 실적 공시가 가장 많은 회사이기도 하다. 지난해 실적 공시 건수는 42건, 보안상 공시를 내지 않은 것까지 합산하면 60여 건으로 1주일에 한 번꼴로 크고 작은 수주를 따낸 셈이다.중형 실적주로 눈길을 끌면서 지난해 소리 없이 오른 주가 상승 폭이 무려 500%에 달한다. 연초 4000원이었던 주가가 지난해 말 2만 원(액면분할 이전)까지 치솟았다. 최근처럼 변동성이 큰 장에서는 단기 급등주들의 낙폭이 두드러지는데 비해 이 회사는 오히려 소폭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외국계 대형 투자은행(IB)이 지분 8%가량을 블록 딜 방식으로 사들여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희림이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국내 상장사에서는 보기 드문 경영권 변경 과정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최대 주주가 이영희 창업주(회장)에서 현 대표인 정영균 대표로 변경됐다. 정 대표는 1997년 희림에 부장으로 입사, 이사 상무 전무를 거쳐 2001년부터 경영을 맡아 온 전문경영인이다. “평소 때가 되면 후배들에게 회사를 맡기겠다”고 얘기해 온 이 회장이 지난해 보유 지분 42.35% 가운데 30.03%를 정 대표를 비롯한 임원 22명에게 시가보다 싸게 넘겨준 것. 정 대표는 순식간에 지분 25.37%를 보유한 최대 주주가 됐다. 이 때문에 “사위가 아니냐”는 추측을 낳기까지 했다.“1994년 대학 은사가 소개해 주신 회사 가운데 희림을 택한 것은 창업주의 철학 때문이었습니다. 건축 디자인 분야의 대선배이자 누구보다 열정이 강한 분이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런 분 밑에서라면 마음껏 일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희림을 택했습니다. 이후 평소 ‘때가 되면 후배들이 마음껏 회사를 키워보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지난해 70세를 맞아 후계 구도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에 기존 임원들에게 시가의 절반 수준인 6000원에 지분을 넘기셨습니다. 남은 지분 12.32%도 순차적으로 넘기실 계획입니다.”“현재 블록 딜을 요구하는 외국계와 국내 기관이 있지만 좀 더 두고 볼 생각입니다. 그동안 주가에 부담으로 작용했던 유동성 부족이 어느 정도 해소된 만큼 시간을 두고 논의할 예정입니다. 건축 디자인 분야가 상대적으로 리스크는 낮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데 반해 아직 시장에서는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만큼 시장의 평가를 좀 더 끌어올리는 게 우선이라고 봅니다.”“1994년 입사 당시 100억 원이 채 안됐던 매출이 지난해 1270억 원을 달성했습니다. 올해는 매출 1700억 원, 영업이익 170억 원을 잡고 있는데 무난히 달성할 것 같습니다. 포화 상태인 국내에서는 고수익의 프로젝트 위주로 수주 계획을 잡고 있고 해외에서는 현상 설계 및 도시 설계 등 미래 수익 연계성이 높은 수주 활동을 벌일 생각입니다.”“올 들어 133억 원 규모의 베트남 5성급 호텔복합단지, 시리아 안누르 마스터플랜(5억 원) 중국 다롄 STX주거단지 마스터플랜(17억 원) 등 상당한 규모의 설계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현상 설계에서 당선된 베트남 EVN 금융상업센터 설계도 37억 원에 따냈습니다. 앞으로 베트남 외교부 청사 국제 공모, 하노이 타오타이 신도시, 두바이 물류창고, 아제르바이잔 주거복합단지 등 굵직한 입찰이 대거 대기 중입니다.”“해외 수주 프로젝트의 수익률은 국내 대비 2∼3배가량 높습니다. 국내에 비해 건축물의 디자인 설계에 대한 요구 수준이 높아 건축물 공사에서 설계 비중이 높기 때문입니다. 수익성 확대를 위해서는 해외 수주가 관건이라는 얘기죠. 일례로 최근 베트남에서 따낸 EVN 건물의 경우 ㎥당 설계 단가가 17만 원으로 국내보다 2배 이상 높습니다. 베트남의 물가 수준을 감안하며 엄청난 가격이죠. 지난 해 아제르바이잔에서 수주한 바쿠 호텔도 수익성이 국내 대비 100% 이상 높습니다. 결국 글로벌 건축 디자인 업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해외 수주가 핵심입니다. 2002년 2억 원이었던 해외 매출이 지난해에는 181억 원으로 늘었습니다. 2010년까지 해외 비중을 50%로 늘릴 생각입니다.”“미국에서 20∼30명 규모의 소형 건축 디자인 업체를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에서도 사업이 확장되면 현지의 디자인 관련 회사를 인수해 볼 생각입니다. 해외 인력은 이미 지난해 컬럼비아대 출신 건축 설계 인력 2명을 선발한데 이어 올해도 미국 동서부 명문대 출신 건축학과 전공자를 뽑기 위해 지난주에 현지 리크루팅을 다녀왔습니다.”“한국 건축 설계 업체로는 유일하게 매출과 설계 디자인 능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2006년에는 순위권에도 들지 못했으나 지난해 해외 수주 확대에 힘입어 일본의 니켄세케이에 이어 2위에 올랐습니다. 니혼세케이 쿠메세케이 P&T 등 일본과 중국의 대형 업체를 따돌려 뿌듯합니다. 이런 평판은 해외 인력 채용 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건축 설계는 사업 특성상 인적 자원이 가장 중요합니다. 인적 자원의 수가 그 회사의 능력과 잠재력을 측정하는 지표인 셈이죠. 희림은 현재 978명의 직원 가운데 미국 일본 프랑스 건축사 12명을 포함해 건축사가 86명입니다. 기술사 83명, 건축 및 실내 건축기사 299명, 토목 조경 기계 전기 177명 등 가장 강력한 건축 디자인 맨 파워를 갖추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게다가 갓 입사한 신입 디자이너와 최고경영자가 한자리에서 토론을 벌이는 회사 문화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희림은 법인 전환 후 지난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고 성장해 왔습니다. 다만 2007년 이전까지는 시장의 주목을 받지 못해 ‘재미없는 주식’이었으나 2001년 초반부터 공을 들여온 해외 사업이 가시화되고 증자와 액면분할 등을 통해 시장의 유동성을 늘리려는 노력에 대해 투자자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액면분할 후 주가기준으로 2만 원 안팎이 주가수익률(PER) 등의 기준으로 봐도 적정하다고 봅니다. 주주 우선 경영 원칙에 따라 최근 주당 500원의 배당을 결정하는 등 꾸준히 배당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익이 늘어나는 만큼 주주들에게 과실을 돌려줘야 한다는 게 평소 생각입니다.”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서울대 건축학과미 펜실베이니아대 건축학 석사미 보워 루이스 건축사무소희림건축사사무소 전무글 김형호·사진 이승재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