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벌 증시가 연초부터 요동치고 있지만 펀드 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세는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코스피지수 1700선마저 위협받는 와중에도 주식형 펀드로 꾸준히 자금이 몰리면서 1월 현재 주식형 펀드 수탁액이 70조 원을 넘어서고 있다. 특히 올해는 전체 펀드 수탁액(366조 원 추정)이 처음으로 정기예금을 추월할 전망이다. 가계의 핵심 재테크 수단이 정기예금에서 펀드로 명실 공히 권력 이동을 하게 되는 원년이 되는 셈이다.하지만 지속적인 자금 유입에도 불구하고 올해 펀드 시장은 숨고르기를 통한 질적 변화를 맞게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대다수 펀드 애널리스트들은 기존 펀드 재배치와 기대 수익률 하향 등을 통한 보수적 투자 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이계웅 굿모닝신한증권 펀드 리서치팀장은 “올해는 펀드 투자자들에게 다소 힘겨운 한 해가 될 것”이라며 “고수익에 대한 지나친 기대, 펀드 투자 단기화, 특정 펀드 쏠림 현상 등 단기 팽창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미국과 중국 경제의 불확실성 확대, 이에 따른 이머징 마켓의 성장세 악화, 전년 대비 완화되고 있는 펀드 자금 유입 속도 등 투자 환경도 예년만 못한 상황이다. 국내 주식시장이 지난해 단기 급등에 대한 부담과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중국 긴축 정책 여파로 연초부터 조정을 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지적이다.김대열 하나대투증권 웰스케어센터 부부장은 “올해 펀드 시장은 리크스 요인이 늘어나면서 해외 펀드의 자금 유입이 둔화되고 있다”며 “1분기 중 국내 주식형 펀드 비중은 확대되는 반면, 중국 쏠림 현상은 완화되는 변화를 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펀드 누적 수탁액은 366조 원이 예상되나 증가율은 전년의 52.5%에 크게 못 미친 17.8%에 그칠 전망이다.그렇다면 투자자들은 올해 펀드 투자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짜야 할까. 전문가들은 변동성 확대에 대비, 분산 투자와 가치주와 테마형을 한데 묶는 혼합형 등을 통한 보완 투자를 권하고 있다. 선진 글로벌 시장, 이머징 마켓, 개별 펀드 등 3중 구도로 위험을 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동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하방경직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도록 상품 구성을 재배치하라는 얘기다. 테마형 투자자라면 대형주 종목 비중이 높은 가치주 펀드를 보완 상품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해외 펀드의 경우 선진 시장 경기 둔화에 따른 이머징 국가의 위험 자산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주력 펀드는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머징 펀드로 하되 국가 분산 범위가 남아프리카공화국 라틴아메리카 등까지 포함된 글로벌 이머징 펀드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재경 삼성증권 펀드리서치 파트장은 “이머징, 가치주·테마혼합, 선진글로벌 펀드 등 3가지로 포트폴리오를 재배치한 후 추가 여유가 있다면 이머징 시장 투자 붐의 수혜주인 소비재 관련 테마 펀드를 추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전문가들은 국내 주식형 펀드와 함께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관련 펀드를 투자 1순위로 꼽고 있다. 국내 주식형 펀드는 국내 증시가 주가수익률(PER) 13.03배로 여전히 저평가 수준인 반면 기대 수익률은 38.0%로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변동성이 커진 최근 시장에서 매력도가 한층 부각될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 올 들어 해외 펀드 수탁액 증가세는 주춤한 반면 미래에셋의 ‘디스커버리 주식형펀드’ ‘인디펜던스 주식형펀드’ 등 국내 주식형으로 자금이 몰리고 있다. 박현철 메리츠증권 펀드 애널리스트는 “전체 펀드 수탁액에서 국내 주식형이 차지하는 비중은 34%로 미국 56%, 영국 71%, 일본 84%에 비해 현저히 낮아 비중 확대 여지가 높다”고 말했다.해외 펀드는 지역별로는 브릭스, 섹터로는 소비재 관련 펀드를 추천했다. 브릭스를 가장 대표적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 지역으로 꼽았으며 이어 극동, 아시아 순으로 투자 매력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했다. 브릭스 펀드는 주요 4개 이머징 국가의 투자 비중이 자동적으로 조정된다는 측면에서 분산 투자 효과도 높다는 지적이다. 올해 펀드 시장의 ‘뜨거운 감자’인 중국 펀드에 대해서는 보수적 견해가 강화되는 분위기다. 이계웅 팀장은 “올림픽 이후 경제 급락 우려는 다소 과장됐으나 성장세가 둔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만은 사실”이라며 “고점 대비 30% 이상 하락한 시점에서 재접근하는 조심스러운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Box in Box얼마 전 한 투자자로부터 받은 질문이다. 이 투자자는 지난해 고수익을 안겨 준 중국과 인도 펀드와 같은 펀드를 찾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족집게식 투자를 원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역사적 관점’이다. 멀리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2001년 이후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으로 인해 국내 자산시장은 엄청난 활황세를 보였다. 주식과 부동산은 적어도 3∼4배가량 올랐다. 코스피지수도 4배가량 뛰었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 부동산도 치솟았다. 특히 중국과 인도 등의 고성장 국가의 자산시장은 매우 높은 수익을 시현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지난 7년간 걸어왔던 길이다.2008년을 출발점으로 과거를 돌아 볼 때, 먼저 투자자들에게 요구되는 자세는 ‘기대 수익률을 낮추는 것’이다. 지난 7년간의 급격한 상승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미국 증시 역사를 돌아보더라도 합리적인 주식 투자의 기대 수익률은 물가상승률을 제외할 때 약 7%였다. 이런 통계를 볼 때, 과거 몇 년간의 수익은 급격하게 저평가가 해소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합리적인 투자자라면 은행 금리의 2∼3배를 목표 수익률로 설정하는 것이 적당하다. 그런데도 많은 투자자들이 과거 고수익의 단맛을 잊지 못한다. 이는 심리적 착시 현상 탓이다. 인간의 인지 구조에는 ‘잔존 효과’라는 것이 있어서 최근의 것만을 기억하려는 성향이 있다. 고수익만을 기억하고 올해도 그러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또 한 가지는 시장이 어려울수록 자산 배분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이미 전 세계 경제는 미국발 스태그플레이션, 원유 값과 곡물 값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사태 등으로 불안감에 휩싸여가고 있다. 수많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장기 투자 수익을 결정하는 것은 종목 선택이나 투자 타이밍이 아니라 자산 배분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투자자들은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짜면서 먼저 주식형 펀드와 확정 금리를 지급하는 저축 상품의 비중을 결정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국내 주식과 해외 주식으로 나누고 이머징 마켓의 편입 비중도 따로 고려하는 게 바람직하다. 투자 결과를 평가할 때 개별 펀드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벗어나 포트폴리오 전체의 수익률을 따지는 방식으로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이를 두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행태 재무학자 대니얼 커너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세계적 관점(the global view)’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한다. 여기서 말하는 세계적 관점은 글로벌 투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넓고 크게 보라는 얘기다. 이를 펀드 투자에 적용하면, 각 개별 펀드의 수익률이 아니라 자산 배분된 포트폴리오의 전체 수익률을 중심으로 사고하라는 것이다.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이상건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 lsggg@miraeass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