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의 사서오경에 숱하게 나오는 인(仁)은 흔히 아는 ‘어질 인’이 아니라 ‘사랑할 인’ ‘사람다울 인’으로 해석해야 맞다. 취할 이(利)가 아닌 베풂과 사랑, 사람다움을 뜻한다. 프랑스에서 대학 입학 자격에 합격하면 이과나 문과에 관계없이 누구나 의과에 진학할 수 있다. 의과대에 입학하면 해부학이나 생리학보다 인문사회과학의 비중이 더 크다. 이들 분야가 해부학의 3배, 물리학의 6배를 차지한다고 한다. 의술(醫術)이 인술(仁術)임을 확실히 가르치고 있다. 법조인을 키우는 미국의 로스쿨도 사회학이나 인류학 등 인문학 전공자들을 선호한다고 한다. 법밖에 모르는 사람보다도 덕목을 갖춘 사고로 베풂과 사랑이 우선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바로 인의 계념이다.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공허하게 들린다. 광복 후 급격한 변혁기를 거치며 오랜 독재 정권으로 관료주의가 뿌리박혀 모든 제도와 사고방식이 획일화됐다. 이것저것 다 따지다 보면 아무 일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러한 관료주의의 폐단은 인재 양성과 안배 과정에서 학벌과 단순한 시험(국가고시 등)만으로 인재를 등용하는 편의주의적인 방법을 낳았다.‘흥부전’의 흥부를 무능한 인간으로, ‘삼국지’의 유비는 무능한 지도자이며 조조는 영웅이라고 믿는 이 시대에 인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게 보일 수 있다. 어느 기업이 조사해 보았더니 많은 사람들이 유비와 같은 사람이 최고경영자(CEO)가 되면 그 회사는 망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요(堯) 순(舜)을 비롯해 그 많은 성군(聖君)들이 다스리던 나라들은 그때 왜 망하지 않았으며, 백성의 고혈로 만리장성을 쌓으며 군림한 진나라는 왜 불과 15년 만에 망해야 했는지 역사학자들은 처음부터 다시 연구해 보아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은 만덕(萬德)의 으뜸이다. 용도 폐기된 지 이미 오래돼 있지만 인은 남에 대한 배려이고 베풂이다. 그 반대말은 이가 될 것이다.인은 화(和)이기도 하다. 인 자체가 보이지는 않지만 인 없이는 어떤 일을 도모해도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유비가 아니면 관우 장비 제갈량을 한 배에 아우르지 못하며, 인이 아니면 용(勇)이나 충(忠)과 의(義)도 한곳에 잡아두지 못한다. 인은 결코 어리석고 무능한 자의 몫이 아니며, 결코 손해 보는 덕 또한 아니다. 인한 자만이 마음(天心, 人心)을 얻을 수 있고 천하를 도모할 수 있다.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숭고한 직업이나 그를 빌미로 과다한 이익을 취할 수도 있다. 많은 환자들에게 혜택을 준다면서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는 결코 빈민촌에서 의료봉사로 일생을 보낸 가난한 의사보다 훌륭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아직도 인이 무용한 덕목이라고 생각하는 CEO가 있다면 그는 진정한 리더가 아니다.인은 겸허해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인을 베풀 때는 음덕(陰德), 혹은 은덕(隱德)을 쌓는다고 말하며 성경에서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다. 인은 무력보다 강하다. 공자 이후 많은 선현들은 군왕과 군자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인을 꼽았다. 인이 없는 독재자는 국민을 탄압하고 인이 없는 재벌은 존경보다 질시 대상이 된다. 세상에는 인을 좇는 사람과 이를 좇는 두 부류가 있다. 천하의 제갈량이 유비를 따른 것은 유비가 조조보다 유능해서가 아니며 성공보다 덕을 따른 것이다. 그것이 선(善)이기 때문이다. 조조는 성공했고 유비는 실패했다. 그런데도 세상은 유비를 받들고 조조를 경멸한다.하중호칼럼니스트한국투자자문 대표 역임성균관 유도회 중앙위원(현)cafe.daum.net/yejeol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