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 이맘때면 투자자들은 내년도 대내외 경기와 가격 변수 전망을 토대로 투자 계획을 수립한다. 내년에는 세계 경제나 우리 경제 입장에서 고려해야 할 변수가 유난히 많은 것 같다. 무엇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의 파장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가 가장 큰 변수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어떤 단계를 거쳐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이론적으로 각종 위기는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 즉,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과 같은 특정 사건을 계기로 발생한 유동성 위기(혹은 신용 위기)가 조기에 해결되지 않을 경우 시간이 흐르면서 금융 시스템의 위기로 전염된다. 한 나라의 경제의 동맥 역할을 하는 금융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실물 경기가 침체된다.현 시점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라 발생한 유동성 위기가 앞으로 시스템과 실물 경기 위기로 증폭될 것인가에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돼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만약 모기지 부실이 앞으로 시스템 위기로 전염된다면 세계 경기가 둔화되면서 투자 환경은 크게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이런 면에서 내년 세계 경기를 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엇갈리고 있다. 하나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긴급 유동성 지원과 재할인율 및 연방 기금 금리의 대폭 인하로 유동성 위기가 해결되면서 세계 경기가 연착륙(soft landing)할 것이라는 시각이다.다른 하나는 FRB의 조치가 오히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근본적인 해결을 지연, 앞으로 세계 경기가 더 침체될 것이라는 경착륙(hand landing) 견해다. 일부에서는 1930년대와 같은 대공황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도 있다.현재로서는 이 중 연착륙 시나리오가 더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최악의 경우 미국 경기가 침체된다 하더라도 중국 등 브릭스(BRICs)와 포스트 브릭스(post BRICs) 경제의 호조에 따른 ‘글로벌 해법(global solution)’으로 세계 경기가 깊은 수렁에는 빠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 전망 기관들의 시각이다.오히려 한국 경제는 내년이 더 좋게 전망되고 있다. 대부분 국내 전망 기관들은 내년에 우리 경제성장률이 5%대를 기록해 잠재 수준을 웃돌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 경기가 연착륙하고 새로운 정부가 경기나 증시에 우호적인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경기적인 측면에서 세계나 우리 경기가 큰 문제가 없다면 내년 투자 계획을 짤 때에는 가격 변수 면에서 당면한 두 가지 큰 현안이 있다. 이미 투자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사안이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이후 달러 가치가 약세를 보이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달러 가치 폭락설이 과연 가시화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이후 각국의 통화 가치가 미국 측 요인에 의해 주로 좌우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달러 가치 폭락 여부는 미국 경기 흐름과 미국 금리 인하 폭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앞으로 미국 경기가 연착륙하고 연방 기금 금리가 현 수준에서 크게 변화되지 않는다면 달러 가치는 고용지표 발표 이후 급락한 상태에서 벗어나 점차 안정을 회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미국 경기가 경착륙하고 연방 기금 금리가 대폭 인하될 경우 달러 가치는 폭락하고 이 경우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청산과 달러화 중심의 국제 결제 시스템이 약화되는 등 세계 경제와 국제 금융시장이 일대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그렇다면 달러 가치는 어느 쪽으로 흘러갈 것인가. 그동안 세계 각국들이 아무리 자국의 이해관계를 중시한다 하더라도 급격한 변화와 혼란을 선택하지는 않았고 특히 외환시장에서 그런 움직임이 심했다.현 시점에서 달러 가치는 폭락보다는 세계 각국 간의 묵시적인 공조 하에 세계 경제의 최대 현안인 글로벌 불균형 문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질서 있는 조정’, 다시 말하면 연착륙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으로 기대된다.또 하나의 변수는 고공 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동향이다. 이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이후 국부 펀드의 참가로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글로벌 머니 게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최근 들어 선진국과 개도국 자금 간에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머니 게임은 ‘S’자형 투자 이론으로 잘 설명된다. 이 이론은 모든 신기술과 제품은 시장점유율을 일일이 측정하지 않아도 점차 틈새시장을 파고들어 소비자와 가정 속에 10% 정도가 보급되고 나면 급속히 퍼져나간다는 것이 핵심이다.이 이론을 세계 각국의 경제 발전 단계에 적용하면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이상인 선진국은 중장년기에, 1000달러에서 3만 달러에 속한 개도국과 중진국은 청소년기에, 1000달러 이하인 저개발국은 유아기에 해당된다.투자 결정의 요소를 수익성·안정성·환금성으로 볼 때 요즘은 유동성이 워낙 풍부해 선진국, 개도국 자금 모두가 투자 시 환금성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선진국 자금들은 높은 수익을 좇아 잉여 자금은 펀드 형태로, 잉여 자금이 없을 때에는 금리차를 이용한 캐리 자금 형태로 개도국에 유입된다.반면 개도국 자금은 수익성보다는 안정성을 중시해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받는 미국의 국채를 비롯한 선진국 자산에 투자한다. 지금까지 세계 경제와 국제 금융시장이 안정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선진국 자금이 유출되더라도 이를 개도국 자금이 채워주는 국제 간 자금 흐름 메커니즘이 잘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문제는 갈수록 심화되는 국제수지 불균형으로 미국 국채를 비롯한 선진국 자산의 안정성이 떨어지면서 지금까지 유지돼온 국제 간 자금 흐름 메커니즘이 흐트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이후 중동 산유국과 아시아 국가들의 과잉 저축분이 미국 국채에서 선진국의 기업 인수와 같은 실물 자산으로 옮겨가는 추세다.이런 과정에서 개도국 자본이 선진국의 항만, 에너지와 같은 기간산업을 인수할 경우 선진국에는 경제 안보상 위협이 될 수 있다. 이 점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화’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를 외쳐왔던 선진국들이 최근 들어 모든 경제 현안을 자국의 주권 확보 차원에서 바라보는 ‘경제 애국주의(economic patriotism)’로 선회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이처럼 선진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경제 애국주의로 나아감에 따라 자원 보유국을 중심으로 개도국들의 반발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올 들어 세계 경기가 둔화되는 추세 속에서도 유가와 국제 원자재 가격의 고공 행진이 지속되고 있고 대내외 증시에서 원자재 관련 업종의 주가가 크게 상승한 것도 이 때문이다.앞으로 세계 증시와 원자재 가격의 움직임도 글로벌 머니 게임에서 나타나고 있는 선진국의 경제 애국주의와 개도국의 자원 민족주의로 대표되는 경제 이기주의를 어떻게 절충해 나가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결국 내년에 투자 계획을 수립할 때는 무엇보다도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급속히 바뀌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브릭스와 포스트 브릭스에 대한 비중을 늘릴 것을 권한다. 동시에 가격 변수 움직임이 커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위험 관리에 그 어느 때보다 신경 써야 한다. 이제는 위험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내부화할 때가 된 것이다.한상춘 한국경제신문 전문위원 겸 한국경제TV 월가특파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