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저장장치 SSD 분야 다크호스…디지탈퍼스트

존의 컴퓨터 하드디스크(HDD)를 대체하는 솔리드 스테이트 디스크(SSD)라는 제품이 새로운 시장을 열 것이다.” 이른바 ‘황(黃)의 법칙’으로 유명한 삼성전자 황창규 반도체총괄 사장이 올해 하반기 돌풍이 기대되는 제품으로 SSD를 꼽으며 강조한 말이다.SSD는 플래시 메모리를 디스크 드라이버로 사용하는 저장 매체다. 컴퓨터에 남아 있는 유일한 아날로그 장치인 HDD를 교체할 차세대 저장 장치로 주목 받는 제품이다. 적용 분야는 모든 PC와 노트북, 모바일 기기, DMB-내비게이션, 디지털카메라, 산업용 컴퓨터 시스템 등 다양하다. SSD의 전 세계 시장 규모는 2008년 4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코스닥 상장 업체인 디지탈퍼스트는 차세대 시장인 SSD 분야를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기술 벤처기업인 엠트론(Mtron)을 최근 계열사(지분율 51%)로 편입, 새로운 성장 엔진을 장착했다. 덕분에 연초 3000원대 초반에 머물러 있던 주가도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리며 10월 중순 현재 다섯 배 정도인 1만4000~1만5000원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디지탈퍼스트는 엠트론과의 합병을 위한 실무 작업을 진행 중이며 11월 중에 합병 절차를 마무리지을 계획이다. 기술 벤처기업인 엠트론은 지난 2005년 10월 50여 명의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석·박사 연구원들이 중심이 돼 세워졌다. 실제 SSD 분야 연구는 이보다 앞선 2000년부터 서울대 산학 연구소에서 시작됐다.첨단 전기전자 업체로 성장하고 있는 엠트론에 대한 평가는 한국에서보다 해외 시장에서 더 뜨겁다. 엠트론은 지난 3월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정보기술(IT) 전시회 ‘세빗 2007’에서 350만 달러의 수출 계약을 체결하는 등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지난 7월에는 미국의 투자회사 메릴린치로부터 SSD 원천 기술 경쟁력을 인정받아 거액의 투자 자금도 유치했다. 디지탈퍼스트가 발행한 해외 전환사채(CB)를 통해 메릴린치가 1500만 달러(약 140억 원)를 투자한 것. 조달된 자금은 대부분 엠트론의 기술 개발 및 설비 투자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세계 유수의 기업들의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 마이크론 테크놀러지의 자회사 렉사미디어와 LSI로직도 잇따라 투자를 제의 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독보적인 기술력 덕분에 수주 물량도 넘쳐나고 있다. 전 세계 주문형 반도체(ASIC) 설계 2위 업체인 프랑스 아트멜(Atmel)과 추진했던 ASIC칩 생산은 이미 완료됐고 10월 현재까지 미국 일본 업체 등으로부터 수주한 금액만 3000억 원에 이른다.엠트론의 SSD는 메모리 반도체인 플래시 메모리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개념의 저장 장치로 꼽힌다. 기존 HDD에 비해 데이터를 읽고 쓰는 속도가 월등하게 빠르고 부피가 작아 가벼운 것이 장점이다. 안정성과 내구성, 전력 효율성 등 모든 면에서 HDD보다 성능이 뛰어난 것으로 검증됐고 특히 다양한 기기에 적용할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이라는 평가다. 노트북과 캠코더, PMP 등 휴대기기의 저장 장치를 비롯해 산업용과 군수용 컴퓨터 시스템의 저장 장치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게 디지탈퍼스트 측의 설명이다. 이는 설계상 효율성으로 인해 가격 경쟁력과 응용력 면에서 경쟁사 대비 비교 우위에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더욱이 설계 접근 방식의 특이성도 강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가상이론이 적용된 ‘병렬 어레이’ 방식을 활용하고 있어 데이터를 읽고 쓰는 속도가 경쟁 업체보다 빠르다. 이러한 설계 방식의 근본적인 차이 때문에 경쟁 업체들이 속도 개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국내외 증권사들의 호평도 이어지고 있다. 외국계 증권사인 BNP파리바는 지난 5월 보고서를 통해 “엠트론이 개발한 SSD는 속도 면에서 경쟁 업체들의 제품을 압도한다”면서 “낮은 비용으로 높은 효율성을 낼 수 있는 사업 구조까지 갖추고 있다”고 적극적인 매수를 추천했다.이 보고서의 영향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지난 10월 초 현재 외국인의 디지탈퍼스트 보유 지분율은 연초보다 8%포인트가량 늘어난 9%대까지 높아졌다. 보고서가 나온 시점인 5월부터 9월까지 5개월간 매수세가 몰렸고 이 기간에만 외국인들은 약 160만 주를 순매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현 시가총액 10분의 1 수준인 200억 원에 달한다.삼성증권의 장정훈 연구위원은 최근 “엠트론의 기술은 세계적인 IT 박람회 ‘세빗 2007’에서 그 높은 성능을 인정받았다”면서 “삼성전자와 샌디스크 등 국내외 대기업의 SSD 제품보다 품질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엠트론의 기술력은 경쟁사들과 1년 이상의 격차를 늘린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장 연구위원은 “다만, 디지탈퍼스트의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이 16.74%에 불과한 점은 경영권에 위협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가파른 성장세로 인해 올해 엠트론은 매출액 1000억 원과 순이익 320억 원을 무난히 달성할 전망이다. 각 증권사들은 내년에도 매출액과 순이익을 각각 3500억 원과 945억 원을 예상하는 등 고속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현재 엠트론은 시장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삼성전자와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고 SSD의 소재가 되는 플래시 메모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있다. 본격적인 SSD 제품 양산을 위해서다. 지난 2월 SSD 시제품 개발에 성공한 엠트론은 7월에 양산용 컨트롤러칩 개발을 완료한 뒤 9월부터 본격적으로 SSD 제품 생산에 돌입했다. 핵심 부품인 컨트롤러칩은 미국 반도체 수탁 생산(파운드리) 업체인 아트멜을 통해 생산하고 완제품 조립은 국내 업체에 맡기는 등 대부분의 공정이 아웃소싱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디지탈퍼스트 관계자는 “휴대전화 CDMA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퀄컴처럼 해외 경쟁사들로부터 로열티를 받는 원천 기술 보유 업체로 성장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이 회사의 중장기 마케팅 전략도 돋보인다. 2007년 진입기, 2008~09년 성장기, 2010년부터 시장 극대화로 구분해 전 세계 SSD 시장점유율 1위를 목표로 단계별 마케팅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올해까지 서버 및 산업용 기기 시장 진입이 1차 목표다. 포럼과 연구조합 등의 활동을 통해 산업 인지도를 높일 계획이다.2009년까지는 4~128GB 내장형 및 외장형 SSD 제품을 생산, 노트북 등 휴대기기용 저장 매체 시장을 노크한다. 마지막 단계인 2010년부터는 SSD 적용 시장을 확대하고 차세대 메모리 관련 분야와 사업 연계 구도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정현영 한경닷컴 기자 j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