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자동차들의 본격적인 대공습이 시작된 것인가. 일본 닛산자동차의 공식 수입이 알려지면서 관련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닛산자동차가 공식 수입된다는 것은 세계 시장에서 ‘메이드 인 재팬’의 맹위를 떨친 일본 자동차의 본격적인 수입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준중형급 일본 자동차의 등장으로 국내 자동차 시장은 일대 회오리에 휩싸일 가능성이 커졌다. 그동안 해외 수출의 부진을 내수 시장 판매로 만회하던 현대, 기아 등 국내 업체들로선 또 하나의 도전에 직면한 셈이다.일본 자동차 브랜드가 대거 수입될 것이라는 소문은 그동안 관련 업계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우선 렉서스를 필두로 한 일본 자동차 업체들의 국내 판매 실적이 예상치를 크게 웃돌았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국내에서 판매된 수입차는 총 3만8508대였으며 이 중 일본 3대 자동차 메이커(렉서스, 혼다, 인피니티)가 판매한 자동차는 1만50대를 기록해 전체 26.4%를 차지했다. 혼다가 만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CR-V는 9월까지만 무려 2625대나 팔려 단일 모델로는 최다 판매를 기록하고 있으며 인피니티의 G35세단은 1427대, 렉서스의 IS250은 같은 기간 1156대가 팔렸다. 브랜드별로 살펴보면 렉서스는 9월 말 현대 총 5320대나 팔려 전체 수입차 판매 업체 중 BMW(5403대)에 이어 2위에 랭크돼 있다.일본 자동차들은 특유의 정숙미와 간결한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특히 배기량으로는 2000cc급, 가격 면에선 3000만~4000만 원대에서 가장 높은 판매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이 한국 시장 진출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도 이런 까닭에서다. 당초 일본 자동차들이 판매에 주력한 것은 3000cc급 이상 중대형 플래그십 모델이다. 하지만 이 라인업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로 대표되는 유럽 자동차들의 아성이 너무 높아 판매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수입 자동차 시장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것은 혼다자동차가 국내에 수입되기 시작한 지난 2004년. 렉서스가 중형과 중대형 자동차 시장에서 주력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혼다는 2000~3000cc급 모델인 어코드로 국내 시장을 노크했으며 결과는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어코드는 그해 1156대, CR-V는 319대나 판매됐다. 특히 CR-V는 2000cc급 SUV로 3000만 원선에서 판매돼 수입차 구입의 장벽을 크게 낮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 판매를 시작한 닛산의 프리미엄 브랜드 인피니티도 국내 진출 2년 만에 상위권으로 뛰어올라 수입 자동차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일본 자동차들의 강세로 현재 국내 수입차 시장은 중소형급은 일본, 중대형급은 유럽, 미국으로 양분돼 있는 상태다. 이런 가운데 도요타, 닛산 등의 등장으로 중소형급의 일본 독주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일본 업체들 중 가장 발 빠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메이커는 닛산자동차다. 한국 내에서 인피니티 판매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닛산은 지난 10월 해외 시장 마케팅을 담당하는 콜린 돗지 수석부사장 입을 통해 닛산자동차의 한국 진출을 공식 발표했다.한국닛산의 그레고리 필립스 사장은 “한국 시장 진출을 위한 시장 조사를 이미 끝마쳤다”면서 “인피니티는 럭셔리 브랜드로, 닛산은 대중형 브랜드로 차별화해 한국 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말했다.시기는 내년 하반기가 유력하며 판매될 차량은 최근 미국에서 선보여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로그, 무라노, 알티마 등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크로스오버스포츠유틸리티차량(CUV)인 로그는 2.5리터에 4개의 실린더로 운영되는 엔진과 첨단 엑스트로닉인 CVT,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이 장착돼 최고의 주행 성능을 자랑하는 모델이다. 이 차가 출시되면 현대 베라크루즈와의 경쟁이 불가피하다.2007년 닛산의 베스트 판매 차량인 알티마도 수입이 임박한 상태다. 최근 일본에서 공개된 2008년형 알티마에는 인텔리전트 키, 블루투스를 이용한 핸즈프리 폰 시스템, 후방 카메라, 첨단 터치스크린 내비게이션 시스템 등이 탑재돼 있다. 이 차는 기아 오피러스와 현대 그랜저 TG, 르노삼성 SM7 등의 시장을 상당 부분 잠식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라노는 3.5리터 DOHC V6엔진이 탑재돼 최고 출력 240마력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다목적 SUV로 미국 JD파워가 뽑은 최고의 중형 멀티 액티비티 차량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7년형 무라노에는 7개의 스피커와 보스 오디오 시스템, 7인치 LCD 컬러 모니터 등이 탑재돼 있다. 한국닛산은 닛산 브랜드를 판매하는 딜러(공식 판매 및 서비스 대행업체)망을 인피니티 브랜드와는 별도로 구축, 바로 딜러 선정에 착수할 예정이다.렉서스로 국내 수입차 시장의 강자로 우뚝 선 도요타자동차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물론 한국 내 판매를 담당하는 한국도요타자동차는 공식적으로는 아직 한국 시장 진출을 검토한 바 없다고 말하지만 물밑에서 진행되는 움직임은 매우 분주하다.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한 도요타의 등장은 국내 수입차 시장의 다변화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관련 업계의 관심이 매우 높다. 도요타는 현재 1500cc를 주로 취급하는 넷츠, 1600~2000cc급을 담당하는 코롤라, 동급 중형 프리미엄 모델을 생산하는 토요페트, 2000cc급 이상은 크라운으로 딜러 망을 각각 구축해 놓고 있다. 만약 도요타자동차가 공식 진출한다면 현재로선 토요페트 라인에서 생산되는 캠리와 코로나, 프리우스 등을 유력한 후보군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캠리는 북미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모델로 가격 경쟁력이 높다.일본 자동차 판매 4위를 기록 중인 미쓰비씨도 조만간 국내에 들어온다. 미쓰비씨는 현재 내년 하반기 수입을 목표로 대우자동차판매와 합작법인을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미쓰비씨는 현재 중형 세단인 갤랑과 랜서, SUV인 파제로 등을 앞세워 국내 3000만~4000만 원대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미쓰비씨는 2000cc급 차량인 갤랑을 내세워 현대 쏘나타, 기아 로체, GM대우 토스카와 일전을 벌이겠다는 각오다. 하지만 배기량에 비해 가격은 상대적으로 비쌀 것으로 예상돼 결과는 미지수다. 이 밖에 랜서는 그랜저 TG, SM7과 가격 충돌이 불가피하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SUV 파제로 역시 국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 것으로 관측된다.이런 가운데 중소형 시장에서 독주해 오던 혼다자동차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도 관심거리다. 혼다는 현재 북미 시장에서 판매 중인 프리미엄 브랜드로 아큐라를 보유하고 있다. 아큐라는 정숙미를 앞세우는 렉서스보다는 퍼포먼스에 치중하는 인피니티와 아이덴티티가 유사해 북미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중소형 시장에서 도요타, 닛산 등의 강력한 도전을 받을 경우 닛산은 반대로 아큐라로 프리미엄급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일본 자동차들의 대거 유입은 국내 자동차 업계에선 위기이자 기회일 수 있다. 국내로 진출하는 일본 업체들은 3000만~4000만 원대 차를 주로 수입할 것이기 때문에 이들 시장에서 거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국내 자동차 메이커들로선 당장 판매 위축이 우려된다. 한국 시장 진출을 가장 먼저 선언한 한국닛산은 “닛산자동차 모델은 폭스바겐, 푸조 등 유럽 자동차들을 상대로 일전을 벌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들 모델의 수입은 국내 완성차 메이커들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상당수 업체들은 추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비해 자동차를 미국에서 제작해 국내로 들여오는 방법도 검토 중이어서 이들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수입자동차협회 관계자는 “일본 자동차의 등장으로 2000cc급, 3000만 원대 시장을 놓고 업체 간 경쟁이 불가피해졌다”면서 “당분간은 일본 업체들의 영향력이 거셀 것”으로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도 “일본 자동차 업체의 등장은 국내 자동차 업체들의 기술력 향상에도 도움을 주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국내 업체들로선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송창섭 기자 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