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안전한 투자 전략으로 미술품 수집이 권장되고 있다. 포브스 잡지에 소개된 세계 100대 부호 중 30% 이상이 미술품에 투자한다는 통계 자료만 봐도 미술품 투자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미술품을 사서 손해 볼 일은 드물다. 미술품엔 양도세는 물론 토지나 건물처럼 재산세도 부과되지 않는다.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과 달리 미술품은 투자한 동안 집에 걸어 두고 즐길 수 있다는 ‘감성적 향유 가치’도 뒤따른다. 이것은 미술품 투자만이 가진 특별한 매력일 것이다. 최근 미술 시장의 추세를 열 가지로 요약해 보자. 첫째, 매력적인 투자 포트폴리오 항목에 미술품이 굳게 자리 잡고 있다. 둘째, 작가의 선호도에 있어 학력이나 연령 등이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 셋째, 국내 작가들이 국내에서보다 해외의 아트페어나 경매 등을 통해 먼저 이름을 떨치는 예가 빈번해졌다. 넷째, 작가 소식이나 작품 가격 정보 등에 대한 공유가 일반화되고 있다. 다섯째, 국내외 화랑의 크로스 오버 진출 사례가 늘어 점차 글로벌화되고 있다. 여섯째, 작품의 재판매로 환금성을 기대할 수 있는 창구가 늘어나고 있다. 일곱째, 극사실주의 기법과 뚜렷한 시즌별 특성을 지닌 작가가 크게 선호 받는다. 여덟째, 블루칩 작가와 일반 작가의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아홉째, 컬렉터 성향이나 계층의 세대교체 시기를 맞았다. 열째, 미술 혹은 미술품에 대한 향유 인식이 점차 일반화되고 있다. 이 외에도 지원 정책이나 구조적인 시스템의 변화 등 많은 사항이 있을 것이다.흔히 미술품은 처음부터 지나치게 투자 개념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예술품으로 즐기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한다. 바람직한 취미 수준을 넘어 경제적 투자 수익을 높이려면 ‘안목’과 ‘시간’이 필요하다. ‘좋은 작품을 사서 5~10년 기다리다 보면 대부분의 경우 금리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투자 가치로 미술품을 구입한다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구매에 나서야 실패 확률이 적다는 것이다. 가령 증권에 거금을 투자해 얻은 이익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을 들여 소장하게 된 미술품으로 얻게 된 수익률이 오히려 높다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된다.미술품 투자로 기대치만큼 이익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림에 대한 관심이나 투자 효과는 일단 본인이 직접 사보는 것부터 시작된다. 얼마가 됐건 직접 산 작품에 대해선 남다른 애정이 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투자 효과는 투자 금액에 비례한다. 영국의 세계적인 아트 펀드사인 파인아트펀드의 필립 호프만 대표는 “미술 투자는 큰 액수를 쏟아 부을 수 있을 때에만 승산이 있으며, 아주 전문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림 감상용과 투자용은 엄연히 구분된다. 보기 좋으면 감동과 장식 효과도 좋겠지만, 반드시 투자 효과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간혹 혐오스러운 작품이 역으로 더 부가가치가 높은 예가 적지 않다. 데미안 허스트의 상어나 해골작품, 중국 펑정지에의 사팔뜨기 여인이나 자오넝지의 일그러진 인물상 역시 그렇다. 미술품 투자를 말할 때 ‘안목’이란 말이 단서 조항처럼 붙어 다니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투자 당사자에게 투자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선 안목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결국 미술품 투자는 장기적인 투자여야 승산이 있으며, 전문가의 안목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장기적인 투자’라는 말이 꼭 구입한 작품을 무한정 품고 있으란 말은 아니다. 컬렉터 사이에 ‘갈아탄다’라는 말이 있다. 회화에서 조각으로, 국내 작가에서 해외 작가로, 서양화에서 동양화로, 작고 작가에서 신진 작가로, 사실주의에서 추상으로…. 넓게는 수집 항목을 국적이나 장르 혹은 작가 등에 따라 바꿔간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장기적인 투자’와 연계해 볼 때 ‘바람직한 갈아타기’는 조금 다른 개념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좀 더 풀어보자. 국내 미술 시장에서 수익률을 보장해 주는 작가는 속칭 ‘블루칩 작가’의 작품이다. 이들은 우량주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본다면 작고 작가에 박수근 김환기 도상봉 이대원 등, 원로 작가에 천경자 김형근 김종학 김창열 권옥연 윤중식 배병우 이우환 박서보 등, 중진 작가에 이왈종 김덕용 사석원 오치균 이정웅 김동유 배준성 이수동 등, 젊은 작가에 홍경택 박성민 도성욱 윤병락 변웅필 김준 이동재 안성하 김지혜 최소영 천성명 이환권 등과 송명진 임태규 신선미 등 최근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작가들까지 본다면 대략 어림잡아 50~60명 선이다.물론 블루칩 작가에 대한 기준은 투자자의 기호나 시장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브랜드화된 같은 작가의 작품일지라도 경우에 따라 가격과 가치는 달라진다는 점이다. 그 작가의 시즌별 소재별로 적게는 몇 배에서 열 배 가까이도 격차가 있다. 쉬운 예로 천경자 화백이나 권옥연 김형근 화백의 소녀 시리즈는 본인의 다른 테마 작품에 비해 월등히 선호도와 가격대가 높다. 도상봉의 라일락, 배병우의 소나무, 사석원의 꽃과 당나귀, 이수동의 자작나무, 이정웅의 붓 등 작가 개인별 트레이드마크 역할의 예는 이미 시장에선 상식으로 통한다.작품 성격의 시즌에 따라서도 가격은 큰 차이를 보인다. 초유의 상한가를 구가하고 있는 이우환 화가는 뚜렷한 시기별 테마를 지닌 대표 작가다. 선 시리즈를 시작으로 점, 바람, 조응 등으로 구분된다. 이 중에서 선호도 첫 순위는 단연 선 시리즈다. 특히 이 작품의 수작(秀作)을 한국에서 만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간혹 일본의 개인 컬렉터로부터 어렵게 흘러나온 작품이 물밑 거래된다는 얘기만 떠돈다. 더군다나 가정에서 걸어놓고 향유할 수 있는 50호 미만의 작은 작품은 더욱 희귀한 편이어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이 작가는 주로 100호(162×130.3cm) 크기 작품을 제작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일본의 한 경매에서 1970년대 중반 12호(60×50cm) 크기 선 시리즈 작품이 수수료 포함, 8000만 엔(약 7억~7억5000만 원) 정도에 팔렸다. 적지 않은 금액이다. 현재 시장에선 30호(91×72.7cm)에서 50호(116.7×91cm) 크기의 수작일 경우 12억~15억 원까지 호가한다는 추정이다. 이에 비해 최근의 조응 시리즈 100호는 5억 원 미만에 호가된다. 작품이 있을 때 얘기다. 공급은 줄고 수요가 늘면 가격은 당연히 올라가는 법. 지난 시즌은 이미 더 이상의 생산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구작이 더 비싼 것은 어느 정도 타당한 이치일 것이다.정리하자면 똑같은 블루칩 작가라도 해당 작가의 ‘1급 미술품’을 확보할수록 수익률 또한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효율적인 미술 투자를 하려면 주식 투자와 마찬가지로 미술 시장의 흐름을 확인하는 데 부지런을 피워야 한다. 눈여겨본 작가의 작품 중에서 최상의 컨디션에 대표성을 겸비한 작품을 찾아낸 순간, 투자의 반은 성공한 셈이다.새로운 대안 투자 대상으로 급격히 떠오른 미술품. 누구에게나 기회는 주어졌다. 개인을 떠나 기관, 기업까지 미술품 투자 바람이 일고 있다. 기회를 거머쥔 이라면 예외 없이 ‘문화 CEO’로 등극할 수 있다. 일부 미술 투자자들의 경우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해외 경매와 국제 아트페어에서도 적극적인 구매욕을 과시한다. 어느 기사에서 밝혔듯, 소더비 경매회사의 인상주의 미술 담당자 존 탠콕은 “1990년대 초반까지 국제 경매 회사의 아시아 고객은 일본인뿐이었는데 요즘은 한국인과 대만인이 더 많아졌다”고 전한다. 이렇게 국내외를 넘나드는 미술품 투자 열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어차피 피하지 못할 대세라면 즐기라고 했다. 다소 어수선한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 국내 미술 시장이라지만, 나만의 맞춤 기호를 찾아 최적의 작품을 골라낼 수 있다면 그가 바로 ‘문화 CEO’의 주인공이 아닐까.이수동, 겨울사랑, 캔버스에 아크릴릭, 116×227cm, 2004.천성명, 달빛아래 서성이다, 혼합매체, 가변치수, 2004.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