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서 예술품까지 이색펀드 전성시대

에너지 부동산 금 농축산물 럭셔리 예술품….’주식과 채권 일변도에서 벗어난 ‘이색 펀드’들이 잇따라 출시돼 인기를 모으고 있다. 명품 제조업체에 투자하는 ‘럭셔리 펀드’를 비롯, 건강 관련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헬스케어 펀드’, 와인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는 ‘와인 펀드’ 등 색다른 펀드들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자산운용 업계에 따르면 8월 말 현재 이들 이색 펀드에 쏠린 자금은 5조5810억 원으로 지난 2년간 무려 6배 급증했다. 특히 개인 투자자들이 늘어나면서 이색 펀드 투자가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위한 수단으로 각광받는 추세다. 주식시장이 요동을 치면서 주식보다 안정성이 높으면서 은행 예금에 비해 투자 수익률이 높은 이색 펀드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이색 펀드 중 ‘물 펀드’는 요즘 들어 부쩍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물 부족이 심각해질 것이라는 전망에서 시작된 ‘물 펀드’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기 몰이에 나서고 있다. 특히 중국 인도 등 인구가 집중된 신흥 개발 지역에서 수자원 고갈이 두드러지면서 아시아의 수자원 관련 기업들이 부각되고 있다.삼성투신운용이 운용하는 삼성글로벌워터펀드는 지난 4월 초 시판된 이후 100일 만에 1조 원 가까운 돈이 몰렸다. 이 펀드는 프랑스의 세계적인 수질 관리 전문 업체 베올리아 등 하수처리, 물처리 설비 공급, 물 정화 업체에 주로 투자한다. 인기에 비해 아직까지 수익률은 더딘 편. 3개월 수익률 기준으로 삼성글로벌워터주식종류형자ClassC1이 7~8%로 같은 기간 환경 펀드 평균 3개월 수익률(7.43%)과 엇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도이치투신운용이 운용하는 도이치DWS프리미어에그리비즈니스주식clsA도 환경 펀드 수익률 상위에 올랐다. 농업 관련 산업에 투자하는 펀드가 극히 드문 가운데 이 펀드는 농화학 산업 선두주자인 몬산토 등 규모가 큰 농산물 관련 글로벌 업체를 투자 대상으로 삼고 있다. 명품 브랜드에 대한 투자도 인기다. 명품 브랜드로 이뤄진 ‘럭셔리 펀드’가 투자자들을 끌어 모으고 사모 펀드들은 유명 브랜드 인수전에 뛰어들고 있다. 선진국은 물론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신흥 국가에서 명품 소비 붐이 계속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국내에서도 럭셔리 펀드의 인지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말 한국투신운용이 처음 판매를 시작한 이후 올 들어 기은SG 우리CS가 가세하면서 총 설정액이 3000억 원에 육박하고 있다.한국투신운용에 따르면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기업들의 올해 1분기 실적은 대부분 호조를 보이고 있다. 불가리 폴로 버버리 프라다 베르사체 등의 안경 제조 라이선스를 보유한 룩소티카는 올해 1분기에 매출 12억9980유로를 기록, 전년 동기에 비해 6.7% 성장했다. 이에 따라 이들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럭셔리 펀드들의 수익률도 우량한 성적을 내고 있다.실물 펀드도 관심을 모으고 있는 상품이다.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증권뿐만 아니라 원유 금 아연 옥수수 콩 등을 비롯한 실물 상품 등이 투자 대상이다. 대다수가 아직은 사모의 형태를 띠고 있는 만큼 투자 자산별 펀드 규모 등은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전체 실물 펀드의 덩치는 나날이 커져 가고 있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8월 말 기준으로 실물을 비롯한 특별 자산에 투자하고 있는 펀드는 총 193개로 총 규모는 5조600억 원에 육박한다.올 들어 가장 각광받는 실물 투자 자산은 미술품과 와인이다. 유리자산운용이 내놓은 ‘유리 글로벌 와인 신의 물방울 펀드’의 경우 지난 6월 28일 굿모닝신한증권 한 곳을 통해 판매된 지 한 달 만에 펀드 규모가 100억 원을 돌파했다. 부유층이나 기관투자가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거래되던 미술품 역시 펀드 투자의 대상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9월 굿모닝신한증권과 표화랑이 손잡고 내놓은 75억 원 규모의 ‘서울명품아트사모’가 첫 번째 아트 펀드다. 서울명품아트사모는 3년 반 만기로 연 10%대 목표 수익률을 제시하고 있다. 김흥수 백남준 등 국내 유명 작가와 중국 유명 화가인 위민준 등의 작품으로 포트폴리오를 짠 게 특징이다. 골든브릿지도 지난 1월 한국미술투자와 손잡고 100억 원 규모의 ‘골든브릿지스타아트사모’를 내놓았다.역시 굿모닝신한증권이 출시한 ‘SH명품아트특별자산투자신탁1호’에는 모집 3시간 만에 120억 원이 몰려들었다. 한국투자증권이 박여숙 화랑과 손잡고 지난 6월 내놓은 ‘서울아트사모특별자산2호’도 판매 하루 만에 100% 일반 투자자들로 80억 원이 마감되는 인기를 누렸다.이뿐만 아니다. 기관이나 글로벌 딜러들의 몫으로 여겨졌던 먹을거리나 천연 자원들도 펀드로 등장했다. 금보다 비싸다는 한우는 이미 여러 곳에서 펀드화됐다. NH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이 농협중앙회 전남지역본부와 손잡고 내놓은 국내 최초의 생물(生物) 펀드 ‘마이에셋 사모 순한우 특별자산 투자신탁’을 필두로 꾸준히 상품이 출시되고 있다. 그만큼 돈이 된다는 의미다. 삼겹살 펀드도 있다. 흥국투신운용이 판매한 바 있는 ‘삼겹살펀드’는 삼겹살을 값이 쌀 때 매입해 비쌀 때 되파는 방법으로 수익을 추구한다. 우리투자증권이 꾸준히 판매하고 있는 ‘우리 Commodity 인덱스’의 경우 아예 원유를 비롯해 면화 대두 콩 돼지 금 등 여러 가지 실물 자산을 하나의 묶음으로 구성해 동시에 투자한다. 한국투신운용의 ‘한국 고철펀드 1호’는 고철과 관계된 기업에 투자하고 하나대투증권이 내놨던 ‘퍼스트 클래스 커피설탕 펀드’는 이름 그대로 커피와 설탕에 투자한다. 뮤지컬 등의 문화 상품은 물론 대학교 기숙사에 투자하는 펀드도 있다.문화 상품도 사모 펀드의 중요한 투자 대상이다. 지난 2005년부터 설정 붐이 일기 시작해 현재 수십 개 펀드가 설정돼 있다. 거의 모든 자산운용사가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 문화 콘텐츠에 투자하는 사모 펀드를 운용 중이라고 할 정도로 관심이 높다.이 가운데 가장 각광받는 분야는 드라마. 물론 한류에 힘입은 측면이 크다. 마이애셋의 ‘MBC-E&B 한류사모’는 중국에서 드라마를 찍어 중화권 시장에서 판권 수익을 노리는 펀드다. 이 회사는 뮤지컬 공연에 투자하는 특별 자산 펀드도 운용 중인데 지금까지 5개 사모 펀드가 설정돼 있으며 설정액만 100억 원을 훌쩍 넘는다. 이 밖에 현대와이즈자산운용, 굿앤리치자산운용, 골든브릿지자산운용 등도 한류를 염두에 둔 드라마 사모 펀드를 운용 중이다.부동산 펀드와 리츠는 대안 투자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분야다. 부동산에 간접 투자한다는 점이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상당 부분 완화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동산을 베이스로 삼는 상품 구성이 투자자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실제로 국내 주요 오피스에 투자하는 부동산 펀드와 리츠는 이번 주가 조정기에도 흔들림 없이 안정적인 수익률을 유지하고 있다. 오용헌 서울증권 상무는 “부동산 펀드와 리츠는 훌륭한 대안 투자 상품”이라면서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사태와 국내외 부동산 시장 침체가 겹쳐 있지만 부정적 영향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밝혔다.부동산 펀드의 안정성은 최근 들어 더욱 빛나고 있다. 부동산 펀드 수익률 상위에 랭크돼 있는 미래에셋맵스프런티어부동산4호는 8월 22일 현재 1년 수익률이 44.61%다. 연초 이후로는 21.29%. 맵스자산운용 관계자는 “18개 부동산 펀드의 수익률이 대부분 급격하진 않아도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투자 대상 부동산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지 않는 한 위험성이 크게 높아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색 펀드 중 리스크가 적지 않은 상품도 있다. 금융시장 자체와의 상관관계가 적기 때문에 양쪽에 함께 투자할 때 위험 분산의 효과가 있지만 실물 펀드 등 이색 펀드들은 대부분 금융시장보다 상대적으로 변수가 적은 기초 자산 한 가지의 가격 변화에 따라 수익이 나기 때문이다. 아직은 이색 펀드 중 상당수가 사모 형태로 이뤄지고 있는 데다 기초 자산의 구성이 복잡하고 수급·가격 동향을 알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도 일반 투자자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지나치게 기대 수익률을 높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채권 펀드 수익률보다 3~4%포인트 정도 높은 수준의 수익을 바라는 것이 적당하다는 얘기다. 우재룡 한국펀드 대표는 “실물 펀드 등 이색 펀드에 대해 과도한 수익률을 기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리츠나 인프라 펀드의 경우 연평균 7~10% 정도의 수익률을 기준으로 상품과 투자 시점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이색 펀드들은 기본적으로 장기 투자 상품이기 때문에 단기적인 성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주식 투자에 대한 대안 및 분산 투자라는 데 유념하라”고 강조했다.김태철 기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