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 초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가장 여성스러우면서 자유로운 의상 스타일을 창조하고 당대의 패션을 이끌었던 위대한 디자이너’라고 하면 누가 생각나는가? ‘마담 니나 리치’라고 답할 수 있다면 패션에 대한 당신의 식견은 인정받을 만하다.파리지엔이 사랑하는 브랜드인 니나 리치의 창시자인 마담 니나 리치는 1883년 1월 14일 이탈리아의 튀렝(Turin)에서 태어났다. 패션에 대한 남다른 관심으로 소녀 시절 작은 액세서리로 장식된 외출 모자를 만들어 가족들을 놀라게 했던 그녀는 이미 20세기를 이끌어나갈 위대한 디자이너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었다.의상실의 견습생으로 재단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그녀는 곧 튀렝에서 유명한 재단사가 됐다. 가슴 속에 원대한 꿈을 가지고 더욱 넓은 세계로의 진출을 꿈꾸던 그녀에게 루이 리치와의 만남은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안겨 줬다. 어린 시절부터 디자이너의 꿈을 키워 온 튀렝을 떠나 몬테카를로로, 그리고 전 세계 패션을 선도하는 파리로 이주해 본격적인 디자이너의 과정을 밟게 된 것이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스물두 살이었다.대부분의 시간을 의상 디자인 연구에 몰두하며 노력한 결과 그녀는 몇 개의 하이패션 하우스와 함께 일했으며 디자인을 외국에 팔기도 했다. 의상 디자이너로서 점차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마담 니나 리치는 자신만의 하이패션 하우스를 열 것을 결심하고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천부적 예술가 기질을 가진 그녀의 창조 활동을 지원하면서 하이패션 하우스를 성공적으로 운영해 줄 사람을 찾던 그녀는 아들인 로베르 리치와의 사업을 결심한다. 디자이너로서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니나 리치 여사의 창의성과 예술가적 기질은 아들 로베르 리치의 미에 대한 비전과 사업가적 기질과 결합해 니나 리치를 명실 공히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 최대의 패션 회사로 성장시키는 발판이 된다.니나 리치는 가장 여성스러운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철학 아래 여성스러움을 우아하면서도 기품 있고 당당하게 표현했다. 그녀의 디자인에 매료된 많은 고객들이 니나 리치 의상실을 찾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상실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해외에까지 알려지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니나 리치는 카퓨신 가의 3개 건물에 11개 층을 사용하고 450명의 재봉사와 25명의 판매 직원을 둘 만큼 발전을 거듭하면서 프랑스 최고의 하이패션 하우스로 우뚝 섰다.니나 리치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손님 개개인의 개성을 발견하고 아름다움으로 승화할 줄 아는 그녀의 재능 때문이었다. 모델에게 천을 씌우고 재단하는 그녀의 독특한 방법과 기술은 개개인의 개성을 최상으로 표현하려는 예술가적 기질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녀는 작품 하나하나에 혼과 열정을 쏟았다.제2차 세계대전 후 니나 리치의 하이패션 하우스는 일대 전환기를 맞이했다. 로베르 리치에 의해 새로운 고객을 창출해 낼 수 있는 표현의 수단인 향수를 런칭한 것. 니나 리치의 첫 번째 향수인 ‘쾨르 주아(Coeur-Joie)’가 1946년 발매됐으며, 뒤 이어 1948년 프랑스 향수의 고전이 된 ‘레르 뒤 탕(L’air du Temps)’이 출시됐다. 이후 니나 리치는 하이패션 하우스뿐만 아니라 향수 하우스로도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하이패션 사업을 기성복, 가죽 제품, 액세서리, 니트웨어, 스포츠웨어, 안경, 시계, 보석, 남성 제품 등 모든 영역으로 확장해 나갔고 1979년엔 파리에서 가장 큰 거리인 몽테뉴 가에 최초의 부티크를 열어 현재 니나 리치 본사의 기틀도 잡았다. 그 후 제네바 도쿄 홍콩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세계의 주요 도시에 부티크를 잇달아 오픈하면서 점차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했다.니나 리치는 프랑스 패션 업계에 끼친 지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레지옹 도뇌르 훈장(Chevalier de la Legion d’honneur)’을 수상했으며, 1970년 11월 30일 87세를 일기로 파리에서 그 화려한 생을 마감할 때까지도 창조 작업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천부적인 예술가적 기질과 철저한 프로 의식으로 여성의 아름다움을 한 단계 끌어올린 마담 니나 리치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한 획을 긋는 예술가였다. 그녀의 ‘리치’ 스타일은 앞으로도 영원히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남게 될 것이다.김지연 기자 jykim@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