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 안전세미나 참관기

웨덴의 자동차 볼보는 참 고집스럽다. 지난 8월 말 볼보는 싱가포르 볼보안전센터로 아시아 기자들을 초청, 안전 세미나 및 테스트 이벤트를 가졌다. 자동차 업체의 기자 초청 행사는 신차 발표회나 전략 세미나가 일반적이다. 신차 발표회는 주로 차의 성능이나 디자인이 기존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준다.전략 세미나는 마케팅 이야기가 대다수다. 볼보처럼 안전을 주제로 세미나와 테스트 이벤트를 개최한 것은 이례적이다. 세미나에서는 그동안 볼보의 안전 시스템이 어떻게 진화됐는지 장시간에 걸쳐 소개됐다. 스웨덴 본사에서 온 리처드 닐슨 안전 특성 매니저(Safety Attribute Manager)가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볼보가 개발한 충돌 방지 시스템에 대한 아시아 기자들의 테스트 행사도 가졌다. 행사를 마치고 난 뒤 가진 뒤풀이에서도 볼보 관계자들은 볼보가 안전을 위해 어떻게 노력하는지를 설명하기에 바빴다.기자는 의문이 들었다. 과연 ‘안전의 볼보’가 통할까 하는 것이다. 최근 자동차 업계의 흐름을 보면 ‘안전’은 뒷전이다. 대신 친환경, 연비, 디자인 등이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 9월 열린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만 봐도 그렇다. 주요 자동차 업체들은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연비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벤츠는 배출가스 ‘제로(0)’를 목표로 한 디젤엔진 차량을 선보였다. BMW는 일본 차들의 전매 특허나 다름없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한 미래 자동차 모델을 제시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볼보의 안전 제일주의가 고리타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그러나 안전에 대한 볼보의 철학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확고하다. 볼보가 말하는 ‘안전한 차’는 ‘튼튼한 차’를 뜻하는 게 아니다. 닐슨 매니저는 “볼보의 안전 철학은 운전자가 최대한 운전에 집중할 수 있는 운전 환경을 구성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그는 올해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선보인 XC60 콘셉트카에 적용된 시티 세이프티(City Safety) 시스템을 예로 들었다. 이 시스템은 위기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충동을 방지해 준다. 볼보는 이 기술이 도입되면 앞차와의 추돌 사고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티 세이프티 시스템은 향후 2년 내 상용화될 것으로 보인다.또 하나, ‘안전의 볼보’를 강조하고 있지만 디자인이나 성능 면에서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소형 세단 C30은 2007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진행된 오토니스 카 디자인 어워드(2007 Autonis Car Design Award)에서 가장 멋진 모델로 선정됐다. 또 자동차 전문지인 ‘오토 빌트(Auto Bild)’의 독자들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차’로 뽑힌 적도 있다. 특히 2005년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선임 디자이너 매니저 스티브 마틴을 스카우트하며 디자인 혁신에도 힘을 쏟고 있다. 스티브 마틴은 “자동차는 바퀴 위의 조각”이라고 말할 만큼 자동차를 예술품으로 다루는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다.1927년 설립된 볼보가 이제까지 선보인 혁신 기술은 80여 가지다. 1959년 첫선을 보인 삼점식 안전벨트, 1964년 개발된 후방향 어린이 안전 좌석 등은 수많은 생명을 구해낸 발명품으로 평가받고 있다(상자 기사 참조). 이번 싱가포르 안전 세미나에서 한국 기자들을 대상으로 소개한 ‘브레이크 서포트 기능이 있는 충돌 방지 시스템(Collision Warning with Brake Support)도 볼보가 자랑하는 최신 기술 중 하나다. 자동차 전방 그릴 안쪽에 레이더 송신 장치를 장착, 앞차와의 거리와 앞차의 속력을 계산해 지나치게 차간거리가 좁혀졌을 때 음향신호와 경고등을 통해 운전자에게 위험을 알려준다.이 시스템은 주행 여건에 따라 다양하게 세팅할 수 있다. 고속 주행에서는 앞차와의 경보음 간격을 넓힐 수 있고, 복잡한 시내 주행에서는 간격을 좁힐 수 있다. 김보민 볼보코리아 이사는 “졸음 운전 등으로 발생하는 사고를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한국에 수입되는 볼보 차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무선설비규칙’과 관련된 법 규정 때문이다.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볼보의 위상은 예전만 못하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중반까지 볼보는 국내 수입차 시장 1위 브랜드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독일 차와 일본 차에 밀려 중위권에 머물러 있다. 볼보의 뛰어난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저평가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안전을 첫머리에 두는 볼보의 마케팅이 감각적 소비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전한 차가 아름다운 차’ 라는 볼보의 일관된 비전이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진다면 예전의 명성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볼보가 자랑하는 안전·편의 장치개인통신 단말기(PCC·Personal Car Communication)거리에서도 차량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리모컨 형식의 개인통신 단말기. 포켓 사이즈인 PCC의 형태는 일반 리모컨 키와 비슷하다. 차량의 잠금 상태 및 알람 상태 등을 100m 거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차량에 장착된 심장 박동 센서를 통해 차 내에 낯선 사람이 침입하거나 생명체의 심장 박동이 감지되면 즉시 확인할 수 있다.사각지대 정보 시스템(BLIS·Blind Spot Information System)차량의 양쪽 사이드 미러 아랫부분에 작은 카메라를 장착해 주행 시 양쪽 사각지대에 다른 차량의 움직임이 감지되면 실내에 있는 알람 램프가 점멸하면서 다른 차량의 존재를 알려주는 기능. 운전자들이 사각지대에 차량이나 오토바이 등이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차로를 변경할 때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첨단 안전장치.전복 방지 시스템(RSC)볼보 SUV 모델인 XC90에 장착된 시스템으로 전복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SUV의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한 장치. 특히 빗길과 같은 미끄러운 노면에서 발행하는 비상 상황에서 차량의 전복을 방지한다. 자이로 센서가 차량의 경사각 및 전복 위험성을 측정하며 필요에 따라 전복 방지 시스템은 엔진 파워를 차단하거나 또는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 이상의 바퀴에 제동을 걸 수 있다.후방 어린이 안전 시트사고 시 유아의 사망률을 낮추기 위한 장치. 정면 충돌 시 어린이들은 목과 머리가 급격하게 앞으로 쏠렸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충격이 매우 크다. 하지만 후방으로 향하는 시트를 이용하면 아이의 등이 힘의 충격을 감당하게 되며, 머리가 급격히 앞으로 쏠리는 일이 없다. 연구 결과 교통사고 시 유아를 전방으로 앉혔을 때의 유아 사망률은 후방으로 앉혔을 때보다 5배 이상 높았다.경추 보호 시스템(WHIPS: Whiplash Protection Seating System)심한 추돌 사고 때 프런트 시트의 등받이와 머리 받침을 신체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여 마치 공을 받을 때처럼 힘을 줄여줘 탑승자의 목뼈뿐만 아니라 허리에 전해지는 충격을 최소화한다.싱가포르=권오준 기자 jun@prosume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