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배현정·공인호 기자] 올해 금융권은 대대적인 조직 개편에도 불구하고 최고경영자(CEO) 인사는 최소화했다. 대내외적인 변동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조직의 안정 속 혁신’에 방점을 둔 것. 이에 올해 새롭게 사령탑을 맡아 금융권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 뉴 리더들의 행보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통상 국내 금융사들은 매해 연말 대규모 인사와 조직 개편을 통해 분위기 쇄신에 나서 왔다. 특히 대형 금융지주사들의 경우 최근 수년간 비대면·디지털 금융 확산에 맞춰 조직 개편에 각별한 공을 들여 왔다. 은행, 보험, 증권을 막론하고 너도 나도 소규모 팀(cell) 단위의 애자일 조직(agile organization)을 강조해 온 것도 상명하복식 조직 문화로는 디지털 혁신이 어렵다는 절박감이 반영됐다.

올해 KB금융은 한 발 더 나아가 정보기술(IT)·소프트웨어 개발 조직인 데브옵스(DevOps: Development+Operation) 형태의 조직 변화를 꾀했고, 우리금융은 대대적인 조직 슬림화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이 같은 내부 변화에도 불구하고 각 금융사들의 경영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KB금융지주가 차기 회장군 육성 차원에서 10년 만에 부활시킨 ‘부회장직 부활’이 그나마 눈에 띄는 변화다. 초대 부회장에는 양종희 전 KB손해보험 대표가 선임됐다.
특히 ‘리딩뱅크’ 경쟁을 이끌고 있는 허인 KB국민은행장과 진옥동 신한은행장의 연임이 결정되면서, 오는 3월 임기가 만료되는 권광석 우리은행장과 지성규 하나은행장의 연임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 행장의 경우 같은 기간 임기가 만료 예정인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추가 연임 여부가, 통상적이지 않은 초임 임기(1년)를 부여받은 권 행장은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의 속내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은행권의 경우 NH농협금융지주와 NH농협은행 모두 내부 출신의 새 사령탑을 맞았다. 이와 관련, 업계에서는 정보통신기술(ICT) 및 제조업 분야와 달리 금융업의 경우 업무 혁신만큼 ‘리스크 관리’도 빼놓을 수 없는 핵심 덕목이라는 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만큼 과거 어느 때보다 리스크 관리가 핵심 과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 다만 그룹 차원의 충성도가 반영된 ‘보은 인사’라는 지적과 함께 국내 금융사들이 외부 인재 영입에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농협금융, ‘손-권 라인’ 출범…‘디지털+WM’ 강화 포석
“노키아와 코닥의 사례에서 잘 알 수 있듯이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과 성장은 기업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최근 언택트라는 큰 변화는 디지털금융 시대를 앞당겼고, 디지털화는 모든 기업의 중요한 어젠다가 됐습니다. 농협금융은 디지털금융 혁신을 발 빠르게 추진하고, 농협금융만의 특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쟁력 있는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해 디지털 선도 금융사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해 나가겠습니다.” <손병환 농협금융지주 회장 취임사>

“디지털금융 혁신은 농협은행의 미래가 달린 생존과제로 고객 중심의 플랫폼 경쟁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전행적인 디지털 전환 추진, 오픈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개발, 모바일 플랫폼 확장 등 디지털 역량을 꾸준히 길러 왔습니다. 앞으로는 데이터 기반 마케팅 강화, 빅테크 제휴, 디지털 신사업 육성 등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고객과 함께하는 생활금융 플랫폼을 구현할 것입니다.” <권준학 농협은행장 취임사>

올해 첫 임기를 시작해 손발을 맞추게 된 손병환 농협금융지주 회장과 권준학 농협은행장은 취임 일성으로 ‘디지털금융’을 강조했다. 통상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동시에 바뀌는 경우는 드문데, 이번 CEO 인사는 지난해 말 김광수 전 회장이 은행연합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데 따른 연쇄 인사의 성격이 짙다.

농협금융의 이번 CEO 인사는 여러 측면에서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데, 무엇보다 직전 농협은행장을 역임 중이던 손 전 행장을 임기 10개월 만에 금융지주 회장으로 추대한 것도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농협금융 회장의 경우 지난 2012년 지주사 출범 이후 초대 회장을 제외하고는 줄곧 관료 출신 인사가 자리를 맡아 왔다. 이번 회장 선임 과정에서도 주로 관료 출신 인사들이 하마평에 오르며 ‘낙하산 인사’ 논란의 재현 조짐이 엿보였다. 이와 관련해 농협금융 임원추천위원회는 농협에 대한 손 회장의 폭넓은 식견과 뛰어난 전략·기획 능력, 디지털 전문성 등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손 회장은 지난 1990년 농협중앙회 입사 이후 30년 이상 정통 ‘농협맨’으로 경력을 쌓아 왔으며, 특히 지난 2015년 스마트금융부장 시절에는 국내 첫 오픈 API 도입과 함께 NH핀테크혁신센터 설립에 기여한 ‘디지털 전문가’로도 평가받고 있다.
손 회장과 2년 임기를 함께할 권준학 농협은행장 역시 30년 ‘농협맨’이다. 권 행장의 경우 개인고객부 및 퇴직연금부 등을 거치며 ‘금융 전문가’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권 행장은 퇴직연금부장 시절 빅데이터 기반의 퇴직연금 전용 로보어드바이저 ‘NH로보-Pro’를 도입해 자산관리(WM) 서비스 고도화에 일조했으며, 개인고객부장 시절에는 ‘농협금융 통합우수고객제도’의 참여 계열사 확대에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은행 산업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디지털금융과 자산관리 부문에서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 ‘손-권 체제’가 출범하면서 농협금융의 향후 행보에 대한 내외부 관심도 과거 어느 때보다 뜨거운 분위기다.
KB손보 김기환·농협생명 김인태, 실적 개선 구원투수로
“KB손해보험의 위치가 5위까지 떨어져 있는 작금의 이 상황에 대해 여러분들께서도 분명 분하고 안타깝게 느끼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범한해상에서 출발해 KB손해보험까지를 돌이켜볼 때 우리에게는 충분히 1등 DNA가 있습니다.” <김기환 KB손해보험 사장 취임사>

“내년 출범 10주년을 맞아 다가올 10년의 비상을 위해 현안을 슬기롭게 해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소명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급격히 다가온 언택트 시대에 보험사의 디지털 전환은 절박해졌고,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에 따른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패러다임 또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김인태 NH농협생명 사장 취임사>
김인태 NH농협생명 사장과 김기환 KB손해보험 사장은 신성장 동력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위기의 보험업계’에서 구원투수로 나선 두 사람은 비(比)보험 출신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보험업계 관행을 깨는 능동적인 혁신이 기대된다.

KB손해보험은 2020년 1~3분기 당기순이익이 전년 동기에 비해 20% 넘게 감소했다. 보험업계 전반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지만, 5대 대형 손해보험사 가운데 당기순이익이 감소한 것은 KB손해보험이 유일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기환 사장은 KB손해보험의 체질 개선을 이뤄 낼 적임자로 발탁됐다. 국민은행 소비자보호그룹 상무, 리스크관리그룹 전무 등을 거쳐 KB금융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은 뒤 2018년 부사장을 거쳤다. KB금융지주와 KB국민은행에서 재무, 리스크, 홍보, 인사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한 팔방미인으로 탁월한 경영 능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김기환 사장은 첫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었다. 목표도 실적 향상 수준이 아니다. ‘보험도 KB’라는 그룹의 방향성 아래 ‘1등’을 선언했다. 가장 혁신적이고 전방위적인 디지털화, KB금융그룹 보험 부문 3사(KB손해보험, 푸르덴셜생명, KB생명)의 협력 모델 구축을 통해 새로운 가치 창출에 나선다. 장기 상품을 판매하는 보험업의 특성상 가장 변화가 느리다는 보험업계에서 ‘제2의 도약’을 이뤄 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NH농협생명은 지난 2018년 당기순손익이 적자로 전환된 아픔을 겪었다. 2018년 연결재무제표 기준 1183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이후 점차 실적을 회복해 가고 있지만, 자산운용 수익률이 업계 평균에 못 미치는 등 수익성 개선의 과제를 안고 있다.

김인태 NH농협생명 대표이사도 신년사에서 올해 사업 전략 방향을 ‘지속 가능한 가치경영 체계 확립’으로 정하고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인해 장기 성장 동력 확보가 필수적 요소다”고 강조했다. 1962년생인 김인태 사장은 1991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해 농협중앙회 금융기획팀장과 NH농협은행 기획조정팀장, 인사부장, 종합기획부장, 마케팅부문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지난해 4월부터 농협금융지주 경영기획부문장을 맡아 발군의 기획 능력을 높이 평가받았다.

저금리·저성장·저출산의 ‘3저(低)’가 뉴노멀이 된 2021년, 보험사의 위기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 역성장의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보험업계의 움직임은 분주하다.
보험연구원은 2021년 생명보험 수입보험료가 0.4%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코로나19 위기로 녹록지 않았던 지난해에도 수입보험료가 2.5%는 증가했으나 올해는 감소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새로운 보험 국제회계기준(IFRS17) 시행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2023년 시행으로, 보험사의 자본 확충 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

이 같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보험사들은 수성보다 도전에 나서고 있다. 미래에셋생명은 오는 3월 국내 보험사 최초로 제판분리라는 실험에 도전한다. 기존 보험설계사 영업조직을 자회사형 법인보험대리점(GA)으로 이동시켜 보험 상품 개발과 판매를 분리하는 것이다. ‘제판분리’는 모회사인 보험사는 상품 개발과 자산 운용에 집중하고, 자회사인 GA에 상품 판매를 맡기는 방식이다. 갈수록 GA의 시장점유율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기존 보험사도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실험에 나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파격 인사도 단행됐다. 지난 9년간 미래에셋생명을 진두지휘해 온 하만덕 부회장이 자회사형 GA인 미래에셋금융서비스로 자리를 옮겼다. 하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미래에셋생명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 미래에셋생명은 기존 공동대표 체제에서 변재상 사장 단독대표 체제로 전환됐다. 미래에셋금융서비스를 업계 최고의 종합 금융판매 회사로 도약시키겠다는 미래에셋의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한화생명도 대형 보험사 ‘빅3’ 가운데 첫 주자로 제판분리 실험을 추진 중이다. 오는 4월을 목표로 설계사 2만여 명을 이동시켜 한화생명금융서비스를 신설한다.
신한생명과 오렌지라이프의 ‘통합’도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중형 보험사인 신한생명과 오렌지라이프의 살림이 합쳐지면 총자산 70조 원의 ‘업계 4위’ 대형사가 탄생한다. 지난해 12월 대표이사 임기가 만료된 성대규 신한생명 사장이 신한라이프의 초대 CEO로 내정됐다.
신한·KB국민 2+1 관행 깨고 ‘연임’
새 수장 우리카드 김정기 ‘혁신’ 예고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을 기회로 삼아 2021년을 ‘디지털 지급결제 금융사’로 도약하는 원년으로 삼겠습니다.”
1월 4일 열린 신임 사장 취임식에서 김정기 우리카드 사장은 오래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펼친다는 ‘제구포신(除舊布新)’을 올해의 경영 사자성어로 꼽았다.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택하겠다는 ‘취임 일성’이다.

김 사장은 이날 비장한 각오로 변화와 혁신을 당부했다. 올해 카드업계는 험난한 경영 환경을 마주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실물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데다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본업인 신용카드업에서 수익성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주요 카드사 8곳은 2020년 상반기 가맹점 수수료 수익이 전년 동기 대비 945억 원이나 감소하는 진통을 겪었다. 앞으로도 법정 최고금리 인하와 가맹점 수수료 적격비용 재산정의 벽을 넘어야 한다. 빅테크 플랫폼사들과의 치열한 생존 경쟁도 예고돼 있다.

김 사장이 취임과 동시에 제시한 경영 키워드는 네 가지다. ▲영업력 강화를 통한 시장지배력 확대 ▲디지털 혁신을 통한 전 부문의 ‘디지털화(化)’ ▲신수익원 발굴을 통한 수익구조 다변화 ▲그룹 시너지 사업 강화 등이다.

업계에서는 김 사장이 우리카드뿐 아니라 우리금융그룹 차원에서 신사업 추진의 선봉에 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우리카드는 우리은행과 더불어 최근 마이데이터 사업 예비허가를 받았다. 자동차 할부 금융도 적극 공략 대상이 될 전망이다. 김 사장은 우리금융지주에서 손발을 맞춘 박경훈 아주캐피탈 대표이사와의 협력으로 자동차 할부 시장에서 시너지를 강화하는 데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김 사장은 2004년 우리은행 중소기업전략팀 부부장을 시작으로 영업기획팀 부부장 및 수석부부장, 전략기획부장, 개인영업전략부장 등을 거친 탁월한 사업전략가로 알려져 있다. 비(非)은행 혁신의 선봉에서 미래 패권을 좌우할 수익 다각화를 이뤄 낼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우리카드를 제외한 카드사들은 변화보다 안정을 택했다. 지난해 연말 CEO 임기 만료를 앞뒀던 카드사는 신한, KB국민, 우리, 비씨 등 4곳이었다. 이 중 우리카드만 수장이 교체됐다.

카드사들은 간편결제 업체와 경쟁, 마이데이터 사업 신사업 추진 등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조직 안정이 우선시되는 형국이다. 업계 1위 신한카드의 임영진 사장은 카드업계의 ‘2+1’ 임기라는 관행을 깨고, 연임에 성공했다. 임 사장은 2017년 첫 임기를 시작으로 4년째 신한카드를 이끌고 있는 가운데, 이번 연임으로 향후 2년의 임기를 추가로 보장받게 됐다. 카드업계 전반의 흔들림 속에서도 시장점유율(MS) 1위를 굳건히 유지해 온 경영 성과를 인정받았다.

이동철 KB국민카드 사장도 ‘2+1’ 관례를 깨고, 3연임에 성공했다. 향후 1년간 KB국민카드를 더 이끌게 됐다. 자동차 할부 시장에서 신한카드와 선두를 다투는 등 신사업 공략에 성공한 공로가 인정됐다. 지난해 KB국민카드는 9년 만에 카드업계 2위로 올라서는 성과를 냈다.

이동면 비씨카드 사장은 부진한 실적 개선이 연임의 걸림돌이다. 비씨카드의 2020년 3분기 당기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40% 급감했다. 이러한 실적 악화에도 현재로선 조직 안정 차원에서 연임을 택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이 사장은 2020년 3월 취임해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오는 3월 임기 2년이 도래하는 장경훈 하나카드 사장도 연임이 유력하다. 하나카드는 2020년 3분기 당기순이익 1144억 원의 성과를 올려 ‘순익 1000억 시대’를 열었다. 전년 동기보다 129.9%나 급증한 성과를 낸 상황에서 ‘2+1’ 관례에 따라 추가 1년 연임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9호(2021년 0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