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금융의 공존·투자 키워드 ‘ESG’
[한경 머니 = 배현정 기자 | 사진 서범세 기자] 금융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는 더 특별하다. 금융은 해당 기업뿐 아니라 각 산업의 ESG 가치 실현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1. 2018년 8월 1일, 대한민국 관측 역사상 최악의 폭염이 찾아왔다. 이날 오후 3시 36분 서울은 영상 39.6도를 기록했고, 오후 4시 강원도 홍천은 40도를 기록했다. 이는 부산·인천 1904년, 서울 1907년 등 국내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전국적으로 역대 가장 높은 기온이었다. 이듬해 NH농협금융지주의 실적 발표 결과는 충격을 줬다. 농협금융지주의 손해보험 계열사인 NH농협손해보험의 2018년 기준 당기순이익이 20억 원에 그쳤다. 전년 동기(265억 원) 대비 92.4%나 급감한 성적표로 울상을 지었다. 최악의 폭염 등 이상기후와 자연재해의 여파가 실적 악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18년 농작물·가축 재해보험금 지급액은 8235억 원으로, 2001년 제도 도입 이래 최고 수준으로 치달았다.
#2 금융투자협회가 발표한 ‘2020년 펀드 시장 동향’에 따르면 혼합자산형 펀드는 연간 2조3872억 원 감소했다. 2015년 통계를 발표하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연간 기준 감소세를 기록했다. 이는 라임 옵티머스 사태 등으로 인해 한국형 헤지펀드 등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깨지며 대규모 자금이 유출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 상품을 판매한 금융사들도 큰 홍역을 치르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라임펀드를 판매한 우리·신한·기업·산업·부산은행 등 5개 은행에 지난 6월부터 12월까지 검사를 실시했으며, 늦어도 3월까지 제재심을 개최할 예정이다. 하나은행은 오는 2분기 중 제재심을 열어 라임펀드, 독일 헤리티지펀드, 디스커버리·이탈리아 헬스케어펀드 등 판매에 대한 책임을 묻게 된다. 앞서 라임펀드를 판매한 신한·KB·대신증권 등 3곳의 증권사에 대해서도 세 차례에 걸친 제재심을 진행해 기관 징계와 최고경영자(CEO) 중징계 등을 의결했다.
앞의 사례는 최근 대세로 떠오른 ‘ESG’가 우리 생활에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 준다.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앞 글자를 딴 ESG는 기업의 비(非)재무적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다. 한때 기업 이미지 개선을 위한 사회적 책임(CSR) 정도로 치부되던 ‘ESG’가 금융권의 생존 키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금융권 화두가 된 ESG 가치 실현
국제결제은행(BIS)은 2020년 1월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금융위기를 ‘그린 스완(green swan)’으로 규정했다. 그린 스완은 기후변화 등 환경 요인으로 인해 예기치 않은 위기가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금융권은 채무자의 부채 상환 능력이 손실을 보는 신용 위기부터 금융자산의 가치 손실로 인한 시장 위기, 자연재해에 따라 지급 보험금 규모가 증가하는 보험 위기 등에 휩싸일 수 있다.
역설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기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면서 ESG가 경영과 투자의 주류로 급부상하는 발판이 됐다.
글로벌에서 ESG가 가장 먼저 뿌리를 내린 유럽연합(EU)은 오는 3월부터 역내 모든 금융사를 대상으로 ESG 관련 공시를 의무화한다. 금융투자 기관들이 지속 가능 투자 정보를 공개하고, 금융상품의 지속 가능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은행, 보험, 연기금, 자산운용사, 투자자문사 등 고객 자금을 굴리는 모든 회사를 대상으로 한다. 이는 EU 역내에서 활동하는 역외 금융사도 포함된다. 국내 금융기관들이 비용 절감과 효율 차원에만 머물러 ESG 경영을 소홀히 한다면 새로운 무역 장벽에 부딪힐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세계 각국은 기후변화와 부정부패 등의 사회 문제 해결에 있어 금융업의 역할을 주목하고 있다. 금융은 ESG 가치 실현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일 수 있다는 관점이다.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사가 미래를 위해 올바른 이윤을 추구한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위기에도 지속 가능한 경제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 이선경 대신경제연구소 본부장은 “국민의 자금을 운용하는 금융기관이 ESG 확산에 앞장서야 하는 것은 수탁자의 책무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 등 금융선진국은 일찌감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공적 연기금의 ESG 투자 원칙 확립과 ESG 공시제도 강화를 통해 사회 전반에 ESG 확대를 이끌어 왔다.
실제 2020년 ESG 열풍의 기폭제로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 래리 핑크 회장의 폭탄선언이 첫손에 꼽힌다. 그는 공개 서신을 통해 ‘투자 결정 시 지속 가능성을 기준으로 삼겠다’라고 선언했다.
국내에서도 ESG를 중심으로 한 속도감 있는 산업 재편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연기금과 금융기관들이 ESG 평가에 기반한 경영과 투자에 속속 나서고 있다. 국내 연기금의 ESG 및 SRI 관련 투자 비중은 2017년까지 1% 전후에 불과했지만, 2018년에는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4%까지 증가했다. 김용진 국민연금 이사장은 2020년 11월 KB금융그룹이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2022년엔 책임투자 원칙을 기금 전체 자산의 50%로 확대할 예정이다”고 청사진을 제시했다.
금융당국의 움직임도 빠르다. 금융위는 ESG 책임투자 활성화를 위해 ESG 정보 공개를 확대하는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로 했다. 친환경과 사회적 책임 문제를 담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와 지배구조를 포함한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공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한다. 한국거래소는 이미 지난 1월 17일 상장법인이 ESG 정보 공개에 참고할 수 있는 ‘ESG 정보 공개 가이던스’를 발표했다. ESG 정보 공개 및 책임투자 확대가 기업과 자본시장의 지속 가능 성장으로 이어지는 ‘ESG 밸류체인 구축’을 위해 관련 정책을 발굴·추진해 나가겠다는 복안이다.
[big story] 금융의 공존·투자 키워드 ‘ESG’

ESG는 “리스크 관리 전략의 핵심”
ESG는 단순히 착한 투자에만 머물지 않는다. ESG가 기업과 주주를 울리고 살린 사례들은 오래전부터 숱하게 제시돼 왔다. 2010년 멕시코만 기름 유출 사건으로 직후 주가는 무려 50% 넘게 곤두박질쳤다. 2015년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배출 조작 사건도 ESG가 투자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 줬다. 폭스바겐은 해당 사건이 불거진 직후 43%나 주가가 빠졌다. 지난해에는 배출가스·소음 인증을 받지 않은 차량을 국내로 들여와 판매한 혐의(‘대기환경보전법’ 위반) 등으로 국내 법원이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AVK)에 벌금 260억 원을 선고했다. 조보람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은행산업, 그린스완에 대비하는 자세 보고서'에서 “착한 경영이나 올바른 투자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ESG는 이제 리스크 전략 관리의 핵심으로 규범화돼 가고 있다”고 했다.
금융사의 대출 기준도 ESG를 반영해 새롭게 짜이고 있다. 그동안 대출 심사 때 기업 재무 정보를 중심으로 평가했지만, ESG 지표도 함께 고려하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할부·리스 업체인 현대커머셜과 임팩트 투자사인 크레비스는 연초부터 ESG를 기업대출 심사와 투자 때 반영하기로 했다.
이들 업체는 이를 위해 핀테크 업체인 지속가능발전소가 만든 ‘비재무·인공지능(AI) 기반 중소기업 지속가능신용정보 서비스(SCB)’를 이용해 ESG를 기준으로 등급을 부여하는 서비스를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기업지배구조와 사회공헌 활동, 사내 조직문화, 친환경 정책 등을 기준으로 기업을 평가해 등급을 부여한다. 이처럼 ESG를 대출 심사 때 반영하면 재무 정보로 대출 문턱을 넘기 어려운 중소기업들이 ‘지속 가능성’으로 대출이나 투자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대형 금융기관들도 적극적으로 ESG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금융권의 환경(E)에 대한 관심은 괄목할 만하다. 그동안 금융권은 소비자 보호 등과 관련된 사회(S)나 이미 제도와 공시가 엄격하게 적용되는 지배구조(G)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대신, 환경(E) 분야에선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아 왔다. ESG 평가기관의 가중치도 금융 섹터에 대해선 환경(E) 반영 비율이 낮았다. 서스틴베스트의 경우 전체의 최고 25%까지 반영하는 다른 산업과 달리, 금융 섹터에서 환경(E) 점수는 5%만 반영했다.
이렇듯 금융권에서 환경(E)을 향한 능동적 변화가 포착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신한금융지주는 2050년까지 그룹 내부와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제로 카본 드라이브를 통해 탄소 배출 관련 기업에 투자하거나 대출하지 않을 뿐 아니라 30년 내 해당 기업 투자와 대출을 모두 회수하겠다고 밝혔다.
2020년 9월 국내 금융그룹 최초로 ‘탈석탄 금융’을 선언한 KB금융은 국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신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및 채권 인수에 대한 사업 참여를 전면 중단할 예정이다. 삼성증권과 삼성자산운용은 석탄 채굴 및 발전 사업에 대한 투자를 배제하기로 했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한화생명과 한화손해보험 등 2금융권에서도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신규 투자와 관련해 보험계약 인수를 중단하는 등 탈석탄 금융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그린뉴딜’을 한국판 뉴딜의 중심축으로 선정한 정부는 녹색금융의 제도적 기반을 오는 6월까지 마련하고, 단계적 고도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mini interview
키이스 리 WWF 아시아지속가능금융 총괄
“韓 은행들 ESG 리스크 공시 개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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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규모의 비영리 국제자연보전기관 세계자연기금(WWF)은 한국 5개 상업은행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48개 은행을 대상으로 지속가능금융 성과를 분석한 ‘2020년 SUSBA(Sustainable Banking Assessment, 뱅킹 부문 지속가능금융 평가)’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SUSBA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요소를 은행의 전략과 의사결정 절차에 얼마나 반영하는지, 이른바 ‘ESG 통합’ 성과를 다각적으로 평가한다.
2020년 네 번째로 시행된 SUSBA에는 기존 아세안 회원국인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6개국의 38개 은행과 함께 한국의 5개 은행과 일본의 5개 은행이 처음 평가 대상으로 참여했다. 이번 SUSBA에 참여한 우리나라 은행은 국내 자산 규모 최대의 상업은행인 KB국민은행, 하나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IBK기업은행 등 총 5곳이다.
주요 평가 내용은 은행들의 목적(purpose), 정책(policy), 절차(process), 임직원(people), 금융상품(product), 포트폴리오(portfolio) 등 6개 부문에서 ESG 요소가 얼마나 반영됐는가다.‘2020년 SUSBA’에 따르면 은행들은 금융 활동에 ‘환경’과 ‘사회’ 부문 고려 요소를 포함하는 노력을 개선했다. 전년 대비 전체 아세안 은행의 75% 이상이 성과를 개선한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의 은행들이 획득한 점수는 아세안 은행들의 평균 수준이었으며, 일본의 은행들은 평균 이상이었다.
한국의 은행들은 여러 조사 항목 가운데 은행의 비전과 장기 전략의 지속 가능성 부문을 어떤 방식으로 포함했는지 공개하는 데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다만 이는 아세안 은행들의 평균 수준이었다. 반면 조사 은행들이 기후변화나 자연 손실에 따른 리스크에는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은 키이스 리 WWF 아시아지속가능금융 총괄과의 일문일답.
[big story] 금융의 공존·투자 키워드 ‘ESG’
한국의 은행들이 일본보다 ESG 통합점수가 낮습니다.
“한국의 은행은 지속 가능성을 비전과 장기 전략에 어떻게 포함시켰는가를 공시하는 데 있어 아세안 은행과 비슷한 정도로 잘하고 있습니다. 5개 은행 중 4개 은행이 유엔환경계획 금융 이니셔티브(UNEP-FI)의 책임뱅킹 원칙 서명사입니다.
현재 5개 은행이 모두 그린 금융상품을 제공해 지속 가능 발전에 공헌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 정부의 그린뉴딜을 이행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전반적인 금융 활동에서 ESG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정책과 절차에 대한 공시에 있어 개선할 점이 있습니다. ESG 리스크 관리에 관한 정책과 절차에 관한 공시가 없다면, 실제로 은행이 금융 활동에서 ESG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해당 은행의 포트폴리오가 기후변화, 담수 부족, 인권 및 노동권 침해 등의 리스크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을지도 모릅니다.”
은행들이 기후변화나 자연 손실에 따른 리스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우선 기후변화 및 기타 환경 문제가 고객과 대출 포트폴리오에 중대한 리스크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다음 포트폴리오의 어떤 부분에서 위와 같은 리스크에 많이 노출돼 있는지 식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리스크가 높은 부분을 식별한 후에는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한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이는 고객을 대상으로 ESG에 관한 기대사항을 정책으로 개발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해당 정책은 국제 모범 사례와 맞닿아 있는 수준으로 마련돼 효과 있는 정책으로 작용해야 합니다.”
ESG 정책 개발에서 중요 사항은.
“정책 개발 과정에서 크게 세 가지 절차가 필요합니다. 첫째, 고객의 ESG 성과 평가 및 기후·환경 리스크에 대한 노출 평가, 둘째, 고객과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한을 둔 행동 계획의 개발, 셋째 이러한 계획을 준수하는지 모니터링이 뒤따라야 합니다.
이러한 정책과 프로세스의 적절한 구현을 지원하기 위해 은행에 올바른 거버넌스 체계가 마련돼 있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ESG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책임이 이사회 및 고위 경영진에 있는지, ESG 전담팀이 마련돼 있는지, ESG에 대한 역할과 책임이 은행의 세 가지 방어선을 포함한 주요 구성원에 배정됐는지, 모든 직원이 ESG에 대한 적절한 교육을 받는지 여부가 확인돼야 합니다.
기후 시나리오 분석과 같은 포트폴리오 차원의 리스크 평가도 필요합니다. 이는 포트폴리오를 탈탄소화하는 과학기반목표(SBT)로 설정함으로써 보완될 수 있습니다. SBT의 설정은 전환 관련 기후 리스크를 완화하고 은행의 전체 기후 전략을 뒷받침하는 데 핵심입니다.”
탈탄소화를 위한 SBT는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은행의 SBT 설정은 2050년까지 파리기후변화협정에 따라 은행 포트폴리오의 탈탄소화를 목표로 함을 의미합니다. 은행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해 나가기 위해 전략을 개발하고, 조치를 계획함으로써 기후 위기 대응에 절실하게 필요한 탄소중립 경제로의 전환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SBT의 설정과 달성은 은행에도 구체적인 이점을 제공합니다. SBT는 일종의 은행 비즈니스의 미래를 보장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포트폴리오를 파리협정에 맞추려면 기후 관련 리스크를 평가하고 완화하는 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은행 포트폴리오의 회복 탄력성이 향상됩니다. 새로운 기회를 식별해 내고, 수익을 높이는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SBT는 저탄소 전환을 지원하는, 새로운 금융상품의 혁신을 주도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국 정부의 2050년 탄소중립 선언 등 기후변화 관련 공공정책의 변화에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해당 은행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리더십을 나타내며 은행의 평판 향상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후나 자연 문제를 헤쳐 나가는 데 은행의 주요한 역할은.
“은행은 자본에 대한 접근과 자금의 비용을 인센티브로 활용해 고객이 비즈니스 모델과 지역의 식량, 에너지, 교통과 인프라 시스템을 전환하는 단계를 나아가도록 장려할 수 있습니다. 이는 물론 고객을 대상으로 국제 ESG 모범 사례에 부합하는 수준의 강력한 대출 정책을 적용하고, 고객과 소통하며 고객이 이러한 모범 사례를 달성하기 위해 지원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은행은 ESG 달성과 연관된 금융 활동도 활발히 할 수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확대, 전력화, 지속 가능한 농업 등 기후변화 적응 및 완화 프로젝트에 관한 자금 공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칠 수 있습니다.”
mini interview
이선경 대신경제연구소 ESG본부장
“ESG, 시작 단계…환경 분야 관심 증대될 것”
[big story] 금융의 공존·투자 키워드 ‘ESG’
“현재 국내 금융권의 ESG는 시작 단계입니다. 현재 금융사 내의 차이보다는 앞으로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이선경 대신경제연구소 ESG본부장은 최근 국내 ESG 바람이 불면서 기업별 줄 세우기 현상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이 본부장은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에서 국내 ESG 선두권 금융기관도 예외가 아니었다”며 “누가 ‘최고인가’보다는 금융 전체가 ‘선량한 관리자’로서 당연한 의무와 책무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SG 평가 요소 중에는 환경 분야에 대한 관심이 앞으로 증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권에서 실질적으로 ESG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조직과 정책을 정비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신경제연구소는 지난해 국민연금의 주식 모델 개선 및 채권 ESG 평가 체계 구축을 제공하는 기관으로 선정됐다. 2021년 국민연금이 굴릴 약 450조에 달하는 국내 주식과 채권 투자에 반영할 ESG 모델 구축에 참여했다. 다음은 이 본부장과의 일문일답.
국내 금융권의 ESG는 일반 기업과 비교해 어떤 수준인가요.
“금융의 ESG 평가 점수는 국내 다른 산업에 비해 낮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조금 더 빠르게 준비하려는 인식을 갖고, 적절한 통제 장치를 구축하고 조직을 정비하는 곳이 앞으로 많이 발전할 것입니다. 그러나 ESG에 너무 무관심한 곳은 각성해야 합니다. 벌써부터 금융권 내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금융은 수탁자로서의 책무가 있습니다. 금융기관은 고객의 돈으로 강력한 힘을 얻었습니다. 오늘날의 테슬라는 금융의 지원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겁니다. 금융은 우리 사회에 ESG 가치가 널리 전파되도록 관련 회사들에 책무를 요구해야 합니다.
지난해 라임·옵티머스 사태는 금융사에 큰 교훈을 남겼습니다. ESG 가치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사태 발생 전에 위험 요인이 걸러졌을 것입니다. 그렇지 못해 금융사들도 힘들어지고, 시장도 위축됐습니다. ESG의 위험과 기회 요인을 금융에 어떻게 녹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ESG 기준에 맞는 자원 배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투자 회사를 모니터링하고, 함께 개선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금융 ESG에서 특히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은.
“ESG라는 개념 자체가 환경, 사회, 지배구조의 다양한 지표를 통해서 평가받는 주체의 지속 가능성을 보는 것입니다. 해당 기업이 10년, 20년, 30년 후에도 급변하는 환경에서 지속 가능하도록 경영하는 주체인가를 평가합니다. 이때 산업별로 환경, 사회, 지배구조의 영향이 모두 같지 않습니다. 특히 환경 분야의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매일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산업과 금융이나 정보기술(IT)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금융은 금융 산업에 맞는 ESG 기준으로 평가돼야 합니다.
현재 국내 금융업 평가에선 지배구조의 영향이 크지만, 앞으로는 환경 분야의 영향이 높아질 것입니다. 현재 환경 부문의 영향이 적은 이유 중 하나는 정보와 기준의 부족 문제도 있습니다. 국내보다 앞서 ESG를 실천했던 글로벌 기준을 바탕으로 우리 현실에서 수집 가능한 모델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은 3월부터 모든 금융사를 대상으로 ESG 관련 공시를 의무화합니다. 국내에선 어떤 준비가 이뤄지고 있나요.
“지구 온도를 낮추기 위한 파리기후변화협정과 같은 전 지구적 공동 대응이 중요해졌습니다. 각국 정부의 ES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정책이 마련될 것입니다. 그에 맞는 자본의 배분도 이뤄져야 하니, 금융권도 준비해야 합니다. 현재는 ‘지속가능금융’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단계입니다. 우선 지속가능금융이 정의돼야 합니다. 그에 따른 제도가 정착되면 금융기관이 지켜야 할 기준도 마련될 것입니다.
국민연금은 2019년부터 연금의 운용 원칙으로 지속 가능성을 추가하고 ESG를 반영한 책임투자를 강화해 왔습니다. 2020년에는 대신경제연구소와 ESG 기준을 만들고 중점관리 사항을 구축한 상황입니다. 국민연금이 먼저 ESG 기준을 확립하고 반영하면, 금융기관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안타까운 것은 일부 기업은 아직 수익을 챙기기도 어려운데 ESG까지 고려해야 하나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올바른 인식의 전환부터 이뤄져야 합니다.”
ESG 등급이나 점수가 평가기관마다 다른데요.
“ESG 평가기관은 수집 가능 정보 내에서 평가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문제는 현재 수집이 가능한 ESG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입니다. 대신경제연구소를 비롯한 여타 평가기관의 정보가 모든 것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매년 상장기업을 중심으로 등급 평가를 진행하는 것은 ESG 제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함께 발전하기 위해서입니다. 향후 정부는 ESG 가이드를 마련해서 더 많은 정보를 공시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ESG 평가기관들도 그에 맞춰 평가 체계를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겠습니다.”
최근 금융권의 ESG 강화 움직임에서 주목하는 것은.
“ESG는 ‘핫’한 투자 대상의 개념이 아닙니다. 최근 투자의 관점에서 ESG 관련 전기자동차, 수소자동차 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ESG 전체를 이해하기보다 ‘핫한 테마에 빨리 올라타라’는 식은 지양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 친환경 분야가 유망한 것은 분명하지만, 자칫 단기 급등한 수익률 거품이 꺼질 경우 투자자들이 ESG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하고 외면할 수 있습니다. 최근 금융권에서 ESG 관련 대표적인 상품으로 채권 발행 붐이 일고 있는데, 이는 ESG 관련 사업 중 일부라고 봅니다. 가장 중시하는 것은 ESG를 관장하는 조직과 정책의 정비, 경영진의 인식 변화입니다. 조직이 정비돼야 장기적인 실천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단순히 ESG 조직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직 내 어떤 위치인가도 고려합니다. ESG 관련 기구가 전사를 아우르며 어떻게 운영되느냐가 중요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파란 하늘’인 날짜를 세어 보게 됐습니다. 기후변화를 피부로 접하고 있는 거죠. ESG를 하나의 비용으로 인식해서는 안 됩니다. 개인, 금융, 정부 모두 각 차원에서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ESG는 공존의 이슈입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9호(2021년 0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