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층에서 늘고 있는 뇌전증 발작
뇌전증(간질)은 특별한 원인이 없는 발작이 반복해서 발생하는 만성 신경계 질환이다.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면서 온몸을 규칙적으로 떨거나 거품을 무는 증상이 나타난다. 소아에서 많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인구 고령화로 노년층에서도 늘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전 질환으로만 알고 있지만 뇌졸중과 같은 질환에 의해서도 발생한다.

질환 등으로 발병, 노년층에서도 발생
‘뇌전증(epilepsy)’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외부에서 악령에 의해 영혼이 사로잡힌다는 뜻이다. 의학적 지식이 무지했던 과거에는 정신병자, 귀신 들린 사람 등으로 낙인을 찍으며 치료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잘못된 선입관으로 아직까지 사회적 편견을 갖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병이기도 하다.

뇌전증은 비정상적인 뇌파 때문에 발생한다. 뇌 속에 있는 신경세포는 서로 연결돼 미세한 전기적 신호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이 과정에서 뇌신경세포에 과도하게 전류가 흐르면 발작이 나타난다.

뇌전증 발작을 일으키는 원인은 많다. 지금까지 확인된 뇌전증의 원인은 유전, 분만 중 뇌손상, 뇌염이나 수막염 후유증, 뇌가 형성되는 중에 문제가 있는 경우, 뇌종양, 뇌졸중, 뇌혈관 기형, 뇌 내 기생충 등이 있다.

또 뇌전증은 생각보다 흔하다. 인구 1000명당 5~10명의 유병률을 보인다. 여전히 20세 미만 소아청소년기에서 가장 많지만 노년층에서도 늘어나고 있는 질환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 빅데이터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뇌전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 중 최근 5년 사이 65세 이상 노년층이 24% 가까이 늘었다. 2015년 2만1448명에서 2019년 2만6515명으로 증가한 것이다.

두 차례 이상 발작하면 진단 받아야
뇌전증 발작은 전신이나 일부분의 경련부터 감각 이상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정신을 잃고 쓰러지면서 전신이나 팔다리가 뻣뻣해지고,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입술과 몸에 청색증이 나타날 수 있다.

눈이 돌아가거나 거품을 문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입안에 다량의 분비물이 발생하기도 하며, 멍해지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발작 후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다가 전과 다름없이 멀쩡해진다.

일단 뇌전증 발작이 발생하면 당황하지 말고 환자를 안전한 곳에 눕힌 후 몸을 조이는 벨트나 넥타이 등을 느슨하게 해야 한다. 특히 숨을 잘 쉴 수 있도록 기도를 유지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입에 이물질이 있는 경우 반드시 단단한 기구를 사용해 빼내야 한다. 손가락을 이용하면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발작이 발생했을 때 바로 응급실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몇 분 이내에 자연적으로 회복된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차례 이상 발작이 반복되거나 의식의 회복 없이 30분 이상 지속되면 ‘뇌전증지속증’이라는 위급한 상황이 되므로 즉시 응급실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환자가 발작이 재발하는 확률은 2~3년 이내에 23~80%로 다양하다. 하지만 재발 후 세 번째 발작이 발생할 가능성은 79~90%로 매우 높다. 발작이 두 차례 이상 재발하면 뇌전증으로 진단하게 된다.

비유발 발작이 한 차례인 경우라도 뇌파나 뇌 영상에 이상이 있거나 재발 가능성이 높은 뇌전증 증후군이 의심될 때는 뇌전증으로 진단한다. 이 경우에는 약물 치료를 바로 시작한다.
뇌전증 진단은 발작에 대한 병력 청취로 시작된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발작에 대한 진술이 중요하다. 환자는 기억이 어려우므로 주변인의 진술과 동영상 촬영이 도움이 된다.

이와 동반된 질환이나 가족력, 신경학적 진찰을 통해 신경 결손을 확인한다. 이후 뇌파 검사, 자기공명영상(MRI), 양전자단층촬영(PET) 등 신경영상 검사를 통해 뇌전증이 발생 되는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게 된다. 최근에는 다양한 진단적 기법으로 원인을 찾아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해지고 있다.

약물 치료로 70% 일상생활 지장 없어
뇌전증 치료의 기본은 항뇌전증 약물 치료다. 발작의 재발 가능성을 낮추고 발작과 관련된 위험 요소, 사망, 신체 손상, 교통사고, 뇌 손상 등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뇌전증으로 진단되면 항뇌전증 약물 치료를 받게 된다. 환자의 약 70%는 2년 이상 발작이 없는 발작 관해 상태에 이른다. 이 상태를 유지하면 약물을 중단할 수 있다.

약물 중단을 결정하기 전에 각 환자에게서의 재발 위험성, 환자의 직업 등 개인 및 사회적 문제점을 고려한다. 약물 중단 방법은 급격히 중단할 때 금단 발작의 위험이 있어 6개월 이상 경과를 보면서 서서히 감량해 중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약물 중단 환자의 약 20%에서 재발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뇌전증 전문의와의 긴밀한 상담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

뇌전증 환자의 약 30% 정도는 약물 치료로도 발작이 줄어들지 않는다. 이를 ‘난치성 뇌전증’으로 진단하는데, 이때는 수술적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 최근에는 뇌전증에 대한 수술 기법이 발달하고 수술 성적이 향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난치성 뇌전증이 아니더라도 수술 후 뇌전증의 조절률이 높은 일부 질환에 대해서는 조기에 수술을 할 수 있다. 이는 뇌종양이나 동정맥 기형 등 뇌전증의 원인이 되는 병소가 뚜렷이 있는 경우에 해당된다. 수술 치료로는 미주신경자극술, 뇌심부자극술, 반응성뇌자극술 등이 있다.

■ 뇌전증 환자의 생활수칙
 복용하는 항경련제는 규칙적으로 복용해야 한다. 경련 재발의 가장 큰 이유는 약을 복용하지 않거나 거르는 것이다. 복용해야 할 시간을 놓쳤다면, 바로 약을 복용해야 한다.
 규칙적인 수면을 유지해야 한다. 불규칙한 수면이나 수면 부족은 경련 발작을 유발할 수 있다.
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 술은 경련을 유발할 수 있다.
 심한 스트레스는 경련 발작을 유발할 수 있다. 과도한 스트레스와 긴장을 피해야 한다.
 수영이나 등산, 과격한 운동 위험한 상황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피하도록 한다.
 경련 발작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운전해서는 절대 안 된다.
 뇌전증 환자도 임신할 수 있다. 임신 계획 전에 임신 여부와 복용 약물의 조정을 위해서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

정명진 파이낸셜뉴스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