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도 중소기업이 시장에서 사업을 펼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법적 규제도 많고 조금만 창의적인 기술이 나오면 금방 카피 제품이 우후죽순 나와 시장을 훼손하기 일쑤다. 특히 자금력이 부족하고 브랜드 이미지가 약한 중소기업엔 더욱 치명적이다.
제조뿐만 아니라 핀테크 영역에서도 이 같은 폐해로 빛 한 번 보지 못하고 기업이 도산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폐해를 막기 위해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를 시행했다. 특히 핀테크 부문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시행한 지 2년이 흘렀다. 108개의 리틀 유니콘이 사업화에 성공하거나 준비를 앞뒀다. 금융규제 샌드박스, 절반의 성공
샌드박스(sandbox)는 아이들이 플라스틱 공간에 모래를 담아 놀 수 있게 한 공간을 뜻한다. 게임의 한 장르로도 불린다. 게임개발자 등이 게임 안에서 전체 맵 등을 파괴할 수도 있고 새로 제작할 수도 있다. 쉽게 말하면 엄격한 금융규제 환경을 한시적으로 풀어 혁신 아이디어와 기술이 시장에서 사업화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로 통한다.
금융규제 샌드박스 시행 2년, 108건에 달하는 혁신금융서비스가 시장에서 빛을 보게 됐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되면 최대 4년간 각종 인가나 영업행위 관련 규제 적용을 유예 또는 면제받는다.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엔 일종의 사업전용권을 주는 셈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만 보유하고 있으면 큰 자금이 없어도 사업화를 조속히 할 수 있다.
앞서 이를 위해 정부는 ‘금융혁신지원특별법’을 개정해 혁신금융사업자가 규제 개선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가 규제 개선을 결정하면 특례 기간을 1년 6개월 추가 연장할 수 있다. 현재까지 139건의 혁신금융서비스가 지정을 받아 이 중 78건이 시장에서 빛을 봤다. 올해 상반기(누적 기준) 총 108건의 서비스가 출시를 앞뒀다.
금융서비스뿐만이 아니다. 전 산업 분야에 걸쳐 샌드박스 제도는 점차 확산 일로다. 지정된 서비스 건수만 산업통상자원부 116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90건, 중소벤처기업부 65건, 국토교통부 23건에 달한다. 전통 금융을 파괴하는 혁신
지정된 금융혁신서비스의 공통점은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기술로 종전 시장 기득권 서비스를 파괴하는 데 있다. 파괴의 혁신이란 말이 어울린다. 대표적인 서비스로 소수점 주식 투자가 있다.
해외 글로벌 기업 주식은 한 주를 사더라도 최소한 몇 십만 원을 호가한다. 사회초년생 등이 주식을 사고 싶어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결국 정부는 소수 단위(0.05주 등)로도 주식을 살 수 있는 소수점 주식 투자 서비스를 지정했다. 신한금융투자와 한국투자증권이 이미 서비스를 시작했고 카카오 등이 소수점 서비스를 하반기에 선보일 예정이다.
신분증 없이도 은행 등을 방문해 금융서비스를 받는 간편 실명확인 서비스, 신용카드나 휴대전화 없이도 기계가 얼굴을 인식해 결제할 수 있는 안면인식 서비스도 이름을 올렸다.
신한카드는 3차원(3D), 적외선 카메라로 추출한 디지털 얼굴 정보를 신한카드 가상카드 정보인 토큰과 연동해 결제를 승인하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외에도 해외 출장이 잦은 소비자가 최초 보험에 한 번만 가입하면 이후 보험 가입은 원스톱으로 진행할 수 있는 온·오프(on-off) 보험 간편 서비스도 등장했다.
이들은 기존 서비스의 고질적인 불편함을 개선하는 공통점이 있다. 이를 통해 57개의 핀테크 기업이 혁신금융서비스를 통해 송금과 결제, 인증, 인슈어테크, 자본시장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는 기회를 얻었다.
규제 샌드박스, 포용금융으로 확대
규제 샌드박스 서비스의 중장기 목표는 포용금융이다. 청년층 일자리 창출은 물론 사회적 약자에게 보다 많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양분으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하면 젊고 유능한 인재를 위한 일자리가 창출된다.
현재 혁신금융서비스를 추진하기 위해 약 562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된 것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또 혁신금융서비스 출시로 소기 성과를 달성하면 신규 투자 유치와 해외 진출로 이어진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받은 29개 핀테크 스타트업이 6000억 원에 가까운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미국, 영국, 베트남 등 10개국으로 해외 사업을 모색 중이다.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디지털 전환의 파이프라인으로, 포용금융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다양한 미래 기술을 활용해 금융 산업뿐 아니라 한국 여러 미래 산업에 디지털을 입히는 작업에 나선다.
이처럼 규제 샌드박스 제도는 기업의 사업 동반 성장뿐 아니라 포용금융의 파이프라인으로 기능과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최근 정부는 지정된 서비스가 원할하게 시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사후 컨설팅과 테스트베드 비용도 지원하기로 했다.
초기 핀테크 스타트업이 혁신적 아이디어의 사업성과 실현 가능성을 미리 실험할 수 있는 환경 구축에도 나섰다. 일각에서는 금융규제 샌드박스가 활성화되면서 유사 서비스 중복 신청도 늘고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다른 사업자가 시장에 공개된 혁신금융서비스를 카피캣(모방 제품)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범정부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법적 제도화를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
글 길재식 전자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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