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추싱 사태, 미·중 데이터 전쟁 신호탄 되나
미·중 기술패권 전쟁의 새로운 무대가 데이터로 옮겨가고 있다. 개인정보 등 민감한 자국의 정보가 상대국으로 흘러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의 쟁쟁한 테크 기업들의 미국 증시 상장이 당분간 힘들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디디추싱(滴滴出行)은 중국 최대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다. ‘중국판 우버’라고 불리는 이 업체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차량 공유와 택시 호출, 화물차량 호출, 자전거 공유, 택배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모빌리티 플랫폼이다.

중국에서만 연간 이용자가 3억7700만 명에 달한다. 중국에서 시장점유율이 90%나 된다. 이 업체는 또 싱가포르를 비롯해 15개국 4000여 개 도시에 진출했다. 이에 따라 전체 이용자는 4억9300만 명, 등록 운전기사는 중국의 1300만 명을 포함해 모두 1500만 명이나 된다. 지난해 매출액은 1417억 위안(24조 원)에 달한다.

이 업체는 2012년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회사인 알리바바의 영업사원 출신인 청웨이(程维, 38)가 설립했다. 그는 2005년 알리바바에 입사해 말단 직원으로 일하면서 뛰어난 영업 실적을 기록한 덕에 2011년에는 알리바바 온라인 결제 시스템인 알리페이의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부문에서 부총경리(부사장)로 승진했다. 그는 중국의 낙후한 교통 시스템 때문에 차량 공유 플랫폼 사업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해 알리바바에 사표를 쓰고 10만 위안(1800만 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2016년 세계 최대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인 미국 우버의 중국 사업부(우버차이나)를 인수하면서 중국 시장을 석권했다.

그의 꿈은 디디추싱을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원스톱 교통 플랫폼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텐센트, 알리바바, 레노버 등 중국의 쟁쟁한 테크 기업들은 물론 일본 소프트뱅크와 미국 애플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해 왔다.

특히 그는 세계를 무대로 삼기 위해 6월 10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디디추싱의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을 신청했다. SEC의 허가에 따라 디디추싱은 6월 30일 뉴욕 증시에서 기업공개(IPO)를 통해 2억8800만 주를 매각해 44억 달러(5조 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당시 디디추싱의 IPO는 2014년 250억 달러(28조 원)를 조달한 알리바바 이후 중국 기업으로는 최대 규모였다. 상장 후 디디추싱의 최대주주는 일본 소프트뱅크(20%), 2대 주주는 미국 우버(12%)가 됐다. 청 최고경영자(CEO)는 지분 6.5%를, 텐센트는 지분 6.4%를 각각 보유하게 됐다.

하지만 디디추싱은 상장 일주일도 채 안 돼 회사의 존폐까지 걱정할 만큼 난관에 봉착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디디추싱이 지난 4월 뉴욕 증시 상장을 포기하라는 중국 정부의 권고(?)를 거부하고 뉴욕행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 인민은행과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 증권감독관리위원회, 국가외환국 등은 디디추싱을 상대로 공동 웨탄(約談)을 진행했다. 예약 면담이라고도 불리는 웨탄은 정부 기관이 감독 대상 기관의 관계자들이나 개인을 불러 질책하고 요구 사항을 전달하는 데 주로 쓰여 악명이 높다. 알리바바 산하 핀테크 계열사 앤트그룹은 지난해 말 중국 정부의 웨탄 이후 홍콩·상하이 증시 상장을 무기한 연기한 바 있다. 미·중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중국 정부는 자국의 유망한 대형 테크 기업들이 확실한 통제권에 있는 홍콩이나 상하이 증시에 상장하기를 요구해 왔다.

중, 디디추싱 제재…강력 제재 이유는
중국 정부의 인터넷 감독기구인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산하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CAC)은 7월 2일 ‘국가안전법’과 ‘인터넷안보법’에 따라 국가 데이터 안보 위험 방지, 국가 안보 수호, 공공이익 보호를 위해 디디추싱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특히 CAC는 조사 이틀 만인 7월 4일 디디추싱에 대해 “개인정보 수집과 활용에 심각한 위법 행위가 있었음을 확인했다”면서 초강력 제재 조치를 내렸다. 그 내용을 보면 앱 스토어(장터)를 운영하는 모든 회사에 디디추싱의 앱을 삭제하라는 것이었다. 또 디디추싱에 대해서도 최소 45일간 신규 회원을 가입시키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따라 디디추싱은 이미 앱을 다운로드 받은 기존 고객들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중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디디추싱이 중국이 아닌 뉴욕 증시에 상장하면서 일종의 ‘괘씸죄’에 걸렸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7월 1일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중국을 건드리면 머리가 깨지고 피가 흐를 것(頭破血流)”이라면서 미국을 정면으로 겨냥한 만큼, 이번 조치가 중국 최고지도부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자본시장을 키우기 위해 커촹반(중국판 나스닥)을 개설하는 등 총력을 기울여 왔음에도 디디추싱은 중국 정부의 이런 의도에 정면으로 맞섰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디디추싱은 자칫하면 문을 닫을 수도 있게 됐다. 중국에서 ‘국가안전법’ 위반은 회사 대표자의 형사 처벌과 사업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죄에 해당한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중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미국과 데이터 전쟁을 벌이겠다는 의도 때문이다. 중국 언론 매체들은 디디추싱이 뉴욕 증시 상장을 위해 국가 안보와 관련된 개인정보 데이터들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CAC가 ‘국가안전법’과 ‘인터넷안보법’을 근거로 조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중국 인터넷 매체인 텅쉰왕은 “디디추싱이 보유한 전국의 도로와 국민 이동 데이터가 미국으로 넘어갈 경우 특정 회사의 고위 간부가 주로 어디서 누구와 회동하는지 같은 민감한 정보까지 추측할 수 있게 된다”며 “국가 경제와 관련된 실시간 데이터를 미국 손에 쥐어주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경제 전문 언론매체 차이신도 “중국 정부가 조사에 들어간 것은 디디추싱이 수집한 데이터가 국가의 경제 및 안보와 밀접히 관련됐기 때문”이라면서 “중국 정부가 미국의 회계감독기구인 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 등이나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주들에게 데이터를 넘긴다면 국가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는 일반 도로의 교통량 현황은 물론 상업적으로 운영되는 주유소, 전기자동차 충전소, 버스정거장 위치까지도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중요 정보’로 규정하고 있다. 둥샤오펑 인민대 중앙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중국 기업이 수집한 데이터와 정보를 이용해 중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줘샤오둥 중국정보안보연구원 부원장은 “중국 정부가 디디추싱에 대해 중요 데이터와 국민의 개인정보가 나라 밖으로 빠져나갔는지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영자지 글로벌 타임스는 “디디추싱의 개인정보 수집은 국가 안보와 개인 프라이버시에 위협이 된다”면서 “디디추싱이 미국 상장사이고 대주주 2곳이 외국 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국가 안보와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선 더욱 엄격하게 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는 7월 5일 뉴욕 증시에 상장된 자국의 3개 인터넷 플랫폼 기업들에 대해서도 ‘인터넷 안보 심사’와 함께 제재 조치를 내렸다. CAC의 조사를 받고 있는 3개 기업은 트럭 공유 플랫폼인 윈만만(運滿滿)과 훠처방(貨車幇), 온라인 구인·구직 플랫폼인 보스즈핀(Boss直聘)이다. 이들 플랫폼을 운영하는 모회사는 모두 미국 증시에 상장했다.

화물기사와 화물주들을 연결하는 윈만만, 훠처방을 운영하는 모회사 만방그룹(滿幇集團)은 6월 22일 뉴욕 증시에서, 보스즈핀 운영사인 칸준(看准)은 6월 11일 뉴욕 나스닥에서 IPO를 통해 각각 16억 달러와 9억 달러를 조달했다. CAC는 디디추싱과 똑같은 이유로 이들 3개사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조사 기간 중 신규 회원 모집을 중단하라는 조치를 내렸다. 윈만만과 훠처방은 화물 업계 디디추싱으로 불린다. 중국 대형 및 중형 트럭 운전기사의 20%(280만 명)가 이 플랫폼을 이용한다. 보스즈핀은 지난해 인증 구직자만 8580만 명에 달한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더욱 주목할 점은 중국이 앞으로 자국 기업들의 해외 증시 상장을 엄격하게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2000년대 후반부터 ‘자본시장 국제화’를 추진하면서 자국 기업의 해외 증시 상장을 독려해 왔다. 금융정보 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지금까지 중국 기업들이 미국 증시 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은 무려 750억 달러나 됐다. 지난 5월 기준, 미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은 248개에 달한다. 시가총액은 2조1000억 달러(2385조 원)나 된다.

문제는 중국 공산당이 이처럼 테크 기업들을 중심으로 자국 기업들이 대거 미국 등 해외로 나갈 경우 통제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 공산당은 미국과 신냉전을 벌이는 와중에 수억 명에 달하는 중국 고객의 개인정보와 지리 정보 등 민감한 데이터를 가진 대형 테크 기업이 경영 현황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미국 증권감독당국에 제출하는 것은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 테크 기업의 해외 상장, 사실상 허가제로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판공청과 국무원 판공청은 7월 6일 ‘증권 위법 활동을 엄격히 타격하는 데 관한 의견(지침)’을 발표했다. 공산당 중앙위원회 판공청과 국무원 판공청은 우리나라로 치면 청와대 비서실과 국무조정실에 해당하는 핵심 권력 기관이다.

중국 관영 매체 펑파이신문은 “금융당국이 아닌 두 판공청 명의로 자본시장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나오는 것은 사상 처음”이라며 “그 파급력이 거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두 판공청은 지침에서 자국 기업들이 해외 상장 등 ‘자본시장법’을 위반할 때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기로 했다면서 향후 해외 상장에 대한 특별 규정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두 판공청이 이런 지침을 내린 것은 자국 기업들의 해외 증시 상장을 당과 국가 차원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이 지침은 “비밀 유지와 관리, 데이터 안보, 국경을 넘는 데이터 유통 등 관련 규정을 속히 완비해 상장 회사가 책임을 지도록 규제를 강화한다”고 적시했다. 말 그대로 ‘데이터 안보’를 최우선 과제로 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의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6월 10일 ‘데이터보안법’을 제정했다. 오는 9월부터 시행될 ‘데이터보안법’은 중국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외국 정부에 제출하려면 중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의 적용 대상은 교통 이외에도 산업, 통신, 금융, 보건, 교육 등 각 분야가 망라돼 있다. 앞으로 ‘데이터보안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데이터와 관련된 중국 테크 기업들의 미국 증시 상장은 사실상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중국의 의료 데이터 서비스 업체인 링크 닥(Link Doc)은 7월 8일 뉴욕 증시에서 IPO를 하려던 계획을 보류했다. 이런 가운데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은 7월 10일 회원 100만 명 이상의 자국 인터넷 기업이 해외에 상장하려면 반드시 사전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인터넷안보심사규정 개정안을 7월 25일까지 의견 수렴을 거쳐 확정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중국 테크 기업의 해외 상장은 사실상 허가제로 바뀌게 됐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중 기술패권 전쟁의 새로운 무대는 데이터로 옮겨갈 것이 분명하다. 데이터는 미래의 핵심 산업으로 분류되는 자율주행과 인공지능(AI) 등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연료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은 개인정보를 포함한 자국의 민감한 정보를 담은 데이터가 상대방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를 계속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글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