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권태 대한컴퓨터박물관 관장

[한경 머니 = 문혜원 객원기자 | 사진 서범세 기자] 1980년대 금성전자 FC-30부터 1970~1980년대 미국의 IBM, 애플, 코모도어, 아타리 컴퓨터까지. 경기도 구리시 수택동 골목 한 지하 박물관에는 옛 컴퓨터 500여 대가 전시돼 있다. 빈티지 컴퓨터는 김권태 씨의 수집품. 벌써 옛 컴퓨터를 모은 지 14년째인 그는 컴퓨터를 모을수록 지식의 깊이도 더해갔다.
“제 수집품이 곧 컴퓨터 역사 자료죠”
“요즘 아이들이 컴퓨터를 참 좋아하잖아요. 아들과 함께할 수 있는 취미라고 생각해서 컴퓨터를 모았다고 하면 너무 합리성을 부여한 것일까요?”

김권태 대한컴퓨터박물관 관장은 한 일본 TV 프로그램에서 아들과 함께 기차 모형을 모으고 만드는 것을 보고 아들과 함께 컴퓨터 수집을 하고 있다. 컴퓨터에 대한 그의 열정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직 가정에 개인용컴퓨터(PC)가 보급되기 한참 전이었던 1970년대, 그는 어머니를 졸라 8비트 컴퓨터인 금성 FC-30을 구입했다. 가격은 모니터와 카세트 저장장치를 포함해 19만8000원. 당시 대졸자 초임 임금이 25만 원 정도 됐으니 중학생을 위한 선물 치고는 과한 것이었다.

“제가 컴퓨터를 너무 배우고 싶어서 종이로 만들어진 키보드를 가지고 공부하는 것을 보시고는 어머니도 탄복하셨는지 청계천의 한 상가에서 사주셨어요. 그게 저의 첫 컴퓨터였죠.”

당시 FC-30의 기능은 극히 제한됐고 메모리도 1만240자(10Kb)만 저장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는 FC-30으로 간단한 수학 프로그램을 만들어 금성전자가 주최한 경진대회에서 수상하는 등 컴퓨터에 대한 열정을 키워 나갔다. 본격적인 수집을 시작하던 10여 년 전, 그는 자신의 첫 컴퓨터 FC-30을 찾았고 한 수집가로부터 마침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박물관에 수많은 애플 시리즈가 있지만 그래도 제겐 FC-30이 가장 소중한 제품이죠. 물론 국산 컴퓨터는 남아 있는 것이 극히 적기도 하고요.”

컴퓨터는 대량 생산이 되는 탓에 가치가 수공예품만큼 오르기는커녕 감가상각이 크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옛 기기의 기능이 뒤처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빈티지 컴퓨터는 수십만 원대에서 주로 거래된다. 물론 기기에 따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기도 한다. 전 세계 50대만 한정 판매했던 애플1이 바로 그것. 스티브 잡스의 첫 작품인 애플1은 그 희소성과 역사성 때문에 대당 가격이 10억 원을 돌파했다. 현재 국내에는 제주도의 넥슨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그 역시 자신의 박물관을 상징할 제품들을 모으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자신의 형편껏, 소신껏 컴퓨터를 모으는 것.

“몇 년 전 미국에서 1000여만 원을 들여서 슈퍼컴퓨터를 들여왔어요. 현재는 공간이 협소해 경기도 파주의 한 창고에 보관하고 있지만 언젠가 정식으로 박물관을 열게 되면 그 컴퓨터를 전시할 수 있겠죠.”

그는 컴퓨터를 망라한 관련 제품들을 보유하고 있다. 1920년대 계산기를 비롯해 옛날 컴퓨터에 사용됐던 진공관과 IBM, 애플사의 애플2, 애플3, 애플 리사, 매킨토시와 맥 시리즈, 아이맥 등을 연도별·시리즈별로 모았다. 또 전자제품 회사들이 너도나도 컴퓨터를 생산하던 시기인 1980년대 코모도어나 텐디, 아타리 등이 전시돼 있다. 애플이 처음 출시됐던 1970년대부터 1980년, 1990년대의 옛 컴퓨터들의 흥망성쇠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가 특히 의의를 두고 있는 것은 국산 컴퓨터들이다. 금성전자의 FC-30, FC-150, 삼성전자의 SPC-300, SPC-150 등.

“수집을 하다 보면 제가 몰랐던 컴퓨터의 역사를 알 수 있어요. 1980년대 삼성전자도 금성전자와 똑같은 컴퓨터를 출시했던 걸 나중에 알게 된 거죠. 결국 내부는 영국 싱클레어사의 제품으로 같은 제품이었거든요.”

“어렵게 모은 만큼 많은 사람과 함께 향유”
“제 수집품이 곧 컴퓨터 역사 자료죠”
앞으로 그의 수집은 어디까지일까. “수집은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요새는 애플의 아이팟류를 모으고 있어요. 아이팟은 다양한 색상과 모델로 판매됐는데, 이들을 색상과 종류별로, 그리고 사용했던 제품과 뜯지 않은 미개봉 제품으로 나누어 수집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아이폰 1세대 미개봉 제품을 수집했어요. 아무래도 애플사 최초 제품은 역사에 있어 수집품 목록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애플사 제품을 주력으로 모으는 이유는 전체 컴퓨터 시장을 장악한 것은 IBM이지만 컴퓨터의 역사를 주도한 게 애플사이기 때문이다.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컴퓨터에 대한 개발로 PC 시장을 열었다. 애플 역사도 잡스가 경영자로 있을 때와 없을 때로 나뉜다. 잡스가 쫓겨났을 당시에는 기존의 제품을 복제해 만든 혁신이 없는 제품을 만들었던 것. 잡스가 다시 경영자로 복귀하고 나서야 조너선 아이브를 중용해 아이맥, 아이북 등 혁신적인 제품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박물관은 오는 9~10월 경 스티브 잡스의 서거 10주기에 맞춰 박물관 전시를 준비 중이기도 하다.

김 관장은 이렇게 모은 수집품들을 예약한 관람객을 대상으로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어렵게 모은 수집품에 박물관 월세와 전기요금 등 매달 들어가는 유지비용도 상당할 터. 지하 창고이다 보니 습도를 잡기 위해 제습기와 에어컨, 공기청정기를 끊임없이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또 기계가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이른바 ‘전기밥’을 넣어주는 작업도 정기적으로 해줘야 한다. 이렇게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인데도 여기에 박물관에 오는 손님을 위해 매주 금·토·일요일의 시간까지 따로 할애한다.

“제가 어렵게 모은 만큼 창고 같은 형태나마 전시하고 있는 것들을 많은 사람과 함께 향유하는 일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 공간이 좁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규모를 좀 더 키워서 시내 도심에 한 반 학생을 한꺼번에 초대해도 될 정도의 공간으로 키우고 싶어요. 아무래도 제 전시품이 학습적으로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더욱 장기적인 목표는 건축공부를 하고 있는 아들이 건축한 건물에 박물관을 만드는 거죠.”

그는 소박한 자신의 박물관을 찾는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아버지 세대에서는 30~40년 전,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이런 조악한 컴퓨터로 현재의 세상을 만들었는데, 학생 여러분들은 과연 훗날 어떤 모습의 세상을 자식세대에 물려줄 수 있겠느냐고.

“마음속에 그런 질문을 품고 삶을 살아간다면 더욱 의미 있지 않을까요. 제 박물관이 단순히 옛 컴퓨터를 전시하는 것을 떠나 학생들에게 이런 화두를 던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에게 평소처럼 컴퓨터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렸다. 그는 기자 하나뿐인 관람객 앞에서 그의 수집품을 이용해 컴퓨터의 역사를 풀어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이 끄덕여질 만큼 산교육의 현장이었다.

<김권태 관장이 소장한 애플 컬렉션>

애플 제품은 김 관장이 소장한 빈티지 컴퓨터 중 단연 가장 많은 수를 자랑한다. 그중 대표적인 애플 컬렉션을 꼽아봤다.

애플1
복제품 스티브 잡스가 애플1을 출시할 당시의 모델을 그대로 구현한 제품이다. 당시 애플1은 현재의 컴퓨터 모습이 아닌 구매자가 DIY로 컴퓨터를 조립하고 꾸밀 수 있게 만들어졌다. PC가 보급되기 이전 소수의 컴퓨터 향유자만을 위한 제품이기도 했다.

애플2
1977년 출시된 제품으로 애플1과는 다르게 메인보드, 컴퓨터 키보드, 전원장치가 하나로 합쳐진 일체형이다. 가정용 TV에 연결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편의성을 높여 PC의 붐을 가져온 모델이다. 비지칼크, d베이스(dBase), 워드스타와 같은 사무용 프로그램과 다양한 게임, 교육용 소프트웨어들이 출시됐다.

애플 리사(Lisa)2
1984년에 출시된, 그래픽사용자인테페이스(GUI)를 채택한 세계 최초의 상용 컴퓨터인 리사의 후속 모델이다. 리사에 탑재된 GUI는 미국 제록스사에서 개발 중이던 알토(ALTO) 컴퓨터에 탑재됐던 GUI를 라이선스한 것으로 당시 텍스트 기반의 운영체제(OS)인 MS-도스(MS-DOS)가 탑재된 IBM의 PC에 비해 사용하기 편리했지만, 호환성 문제와 1만 달러나 되는 비싼 가격으로 실패한 애플 컴퓨터로 남게 된다.

애플 매킨토시(Macintosh)
1984년 출시된 리사와 같은 GUI를 채용한 PC로서 모니터와 컴퓨터 본체가 일체화된 형태다. 매킨토시는 데스크톱퍼블리싱(DTP) 같은 새로운 시장을 만든 혁신적인 제품이었으며 디자인적으로는 현재 판매되고 있는 아이맥(iMac)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아이맥(iMac)
1997년 애플로 복귀한 잡스가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의 책상 서랍에 썩고 있던 디자인을 채용해 만든 애플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 제품이다. 매킨토시의 일체형 디자인 유산을 그대로 계승하고 반투명 플라스틱 케이스를 사용해 컬러(color)와 컴퓨터를 접목한 새로운 디자인 콘셉트를 제시했으며 이 콘셉트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넥스트 큐브(Next Cube)
1990년에 출시된 하이엔드 워크스테이션. 정육면체의 마그네슘 케이스 디자인에 광드라이브 등 당시 최고의 스펙을 구현했다. OS로는 현재의 애플 컴퓨터에 사용되는 OS X의 전신인 넥스트스텝(NextSTEP)이 사용된다.

20주년 기념 맥
애플사가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1997년 발매한 컴퓨터. 4인치의 두께에 스테레오 스피커, 서브 우퍼 등이 포함돼 음악 감상과 영화 감상에 최적인 컴퓨터다. 숫자 키가 없는 키보드와 트랙 패드를 사용한다. 맥 OS 8과 맥 OS 9가 기본으로 내장돼 있다. 총 1만2000대가 생산됐으며 399대는 스페어로 남기고 1만1601대가 팔렸다.

파워 맥 G4 큐브(Power Mac G4 Cube)
2000년 출시된 하이엔드 워크스테이션. 넥스트 큐브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으로 아이브가 디자인한 제품이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전시될 만큼 디자인적으로 뛰어난 제품이다. 특히 CD가 토스터기처럼 위로 배출되는 게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