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장기 투자, ‘달러’에 답 있다
통화량 증가 속도가 임금 상승률을 압도하는 시대로 진입하면서 재테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버렸다. 부동산 시장은 정부의 규제 일변도에도 장기적인 상승세를 이어갔고, 많은 사람들이 자산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재테크에 대한 관심은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기점으로 주식시장으로 확대됐다.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동학개미에 이어 해외 주식시장에 참여하는 ‘서학개미’라는 용어가 등장할 만큼 어느 때보다 개인투자자의 해외 자산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국민들이 재테크 시장에 열광하는 만큼, 많은 정보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환율에 대한 관심은 중요성에 비해 그다지 크지 않다. 진정한 의미의 자산관리는 원·달러 환율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가능하다. 미국 달러가 한국 투자자들에게 주는 의미와 그 활용법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면 개인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가 조금 더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투자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 달러는 전통적으로 안전자산으로 인식된다. 그 배경을 살펴보기 위해선 미국의 소비와 세계 경제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미국은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70%에 이르고, 전 세계 가계 지출 규모의 약 30%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이자 수입국이다.
안정적인 장기 투자, ‘달러’에 답 있다
미국 소비시장, 전 세계 30% 차지…글로벌 경제 주춧돌
미국 경제가 좋아지면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가계 소득이 증가한다는 의미다. 이로 인해 미국 소비자들의 지출이 늘어나고 소매 업체들은 재고를 더 많이 쌓기 위해 생산 업체들에 더 많은 상품을 주문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공장 가동률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서 공급을 맡고 있는 중국, 한국, 대만 등의 공장 가동률도 올라가게 된다.

상품 생산 과정이 고도화되고 분업화될수록 미국이 자체적으로 자국의 수요를 충족시킬 만큼 모든 재료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의 소비 증가는 한국, 대만 등 제조업 기반이 튼튼한 국가의 수출 증가로 이어진다.
안정적인 장기 투자, ‘달러’에 답 있다
이때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 기업들의 매출이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해 달러를 매도하고 원화를 매수해 한국에 대한 투자 비중을 늘린다. 수출이 증가하게 되면 더 많은 달러가 국내로 공급된다는 의미다. 미국 경제가 좋을 때 원화는 평가절상된다. 다시 말해 원·달러 환율이 하락한다. 그러나 미국 경제가 나빠지는 정반대의 상황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상승한다. 미국 소비가 둔화되면 대표적인 생산 기지인 한국에 대한 투자 매력도가 떨어지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자산을 매도해 달러로 교환해 나가기 때문이다.

상품 거래에서 수출국의 위치는 왠지 ‘을’의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산관리 관점에서는 이를 역으로 활용할 수 있다. 원·달러 환율과 한국 주식시장의 ‘역의 상관관계’를 활용하면 위험을 회피하고 달러 자산을 확보해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을 낮출 수 있다. 즉, 국내 증시의 밸류에이션이 높고 원·달러 환율이 역사적 평균을 하회할 때 달러 자산의 비중을 늘리는 것은 원화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을 낮출 수 있는 가장 쉬운 투자 방법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미 달러를 보유한다는 것은 세계 경제 성장에 참여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세계은행(WB)에서 발표한 2019년 전 세계 명목 GDP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87%에 불과하다. 한국 시장에만 투자하고 있다면 98%의 투자 기회를 놓치는 셈이다.

특히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전세계 지수의 국가별 비중에서 미국은 무려 57.5%를 차지한다. 물론 2%의 한국 시장에서 세계 경제 성장을 주도할 혁신 기업을 찾아 소위 ‘대박’을 노릴 수 있겠지만 이는 일반 투자자 입장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전 세계에서 57%를 차지하는 미국 시장에서 투자 종목을 골라 포트폴리오를 운용하는 공모펀드나 미국의 대표 우량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지수 추종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는 것이 더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안정적인 장기 투자, ‘달러’에 답 있다
투자 성향·자금 목적에 따라 달러 활용 방법 다양
미 달러를 활용하는 방법은 각자의 투자 성향이나 자금 목적에 따라 다양하다. 장기적으로 자금을 모아 위험에 대비하겠다는 안정적인 성향의 투자자라면 기본적으로 외화예금, 약간의 이자수익을 얻을 수 있는 환매조건부채권(RP), 발행어음과 같은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

자금 계획 시기에 따른 가격 변동의 위험을 고려해 미 국채에 직접 투자하거나 관련 ETF, 펀드에 투자하는 것도 방법이다. 일정 수준의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투자자라면 글로벌 우량 채권 투자를 통해 국내 회사채보다 더 높은 현금흐름을 발생시키는 자산들에 투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달러 자산을 활용해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이는 부동산 임대수익을 노리는 것과 마찬가지의 투자 방법이다. 원화로 표시된 국내 자산의 경우 투자 규모 대비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수준이 크지 않지만, 달러 자산으로 눈을 돌리면 생각보다 다양한 옵션을 활용해 투자 기회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하이일드 채권, 주택저당증권(MBS), 구조화 채권, 미 달러 표시 신흥시장(EM) 국공채 등의 고수익 채권이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자산의 경우 연 4~6%의 이자수익을 제공하는 동시에 자본 이득도 추구할 수 있다.
안정적인 장기 투자, ‘달러’에 답 있다
일반 투자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자산일 수 있지만 이와 같은 자산에 투자하는 펀드들을 국내에서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를 투자할 때 역외펀드나 환노출형(UH) 클래스를 활용할 경우 달러 자산에 투자하는 효과를 충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흔히 포트폴리오를 투자 성향 등에 따라 단순히 현금, 주식, 채권 등에 대한 투자 비율과 이와 관련한 금융상품 종류를 매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달러를 활용할 경우 경기 시나리오별로 다양한 대응이 가능하다.

시장 변화에 따라 통화를 어떤 비율로 가져갈지, 통화 변경이 필요한 경우 통화의 비율은 어느 정도로 가져갈지, 관련 자산군의 변화는 어떻게 조정할지도 함께 고려한다면 개인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도 기관의 포트폴리오처럼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글 정다정 SC제일은행 투자전략상품부 차장/사진 셔터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