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연 작가 <불편한 편의점>

편의점은 단순히 24시간 식료품과 간단한 생활용품을 살 수 있는 공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의 의미를 찾고 응원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서울역 옆 ‘청파동’에 위치한 가상의 ‘불편한 편의점’은 ‘독고’라는 인물을 매개로 하루를 위로받는 이들의 서사가 담겼다.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지음, 나무옆의자, 2021년 4월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지음, 나무옆의자, 2021년 4월
지하철역에서 10분 남짓 걷다 보면 편의점이 자주 눈에 띈다. 브랜드별로 5개 정도? 겨울에는 호빵이, 여름에는 맥주가 나를 편의점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일주일, 4캔에 1만 원으로 일이 끝난 후의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편의점’에서 ‘편의’는 전부 제공한 셈이다.

이 행사가 끝났을 때의 아쉬움은 말로 다 못한다. 이제는 단골이 돼 주인이 먼저 알아보고 어떤 행사를 하는지 알려준다. 주인과 나의 관계처럼 편의점 내부의 희로애락을 말하는 소설이 있다. 불편하다고 해서 사람의 발길이 드문 편의점이 한 사람으로 인해 북적거리는 편의점으로 바뀌는 과정을 그린 소설 <불편한 편의점>이다.

김호연 작가는 2013년 <망원동 브라더스>를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글을 써 왔다. ‘망원동’이라는 공간 속에서 유쾌와 재미를 보여준 <망원동 브라더스>는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책 속 곳곳에 작가의 유머가 묻어나 다음 작품들도 어렵지 않게, 소소한 유머를 찾는 재미까지 더해졌다. <불편한 편의점>도 서울역 옆 ‘청파동’이라는 공간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이 생생함은 등장인물들까지 살아 움직이게 한다.

주인공 독고는 서울역 노숙자다. 알코올성 치매 노숙자로 말도 굼뜨고 행동도 느릿느릿하지만, 3명까지는 자신이 어떻게 해볼 수 있다고 한 그가 퇴직한 역사 교사 ‘염 여사’의 지갑을 찾아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배가 고프면 언제든 와서 먹으라는 염 여사의 따뜻한 한 마디로 독고는 편의점 야간을 지키는 야간 아르바이트생이 돼 사람다운 모습을 갖춰 가며 과거의 기억을 되찾는다.

김 작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로만 채우지 않는다. 20대 취업준비생이자 아르바이트생인 시현, 매일 밤 편의점 테이블에서 소주와 김밥으로 하루를 달래는 영업직 경만, 절필을 바라보는 30대 희곡작가 인경, 편의점을 호시탐탐 노리는 염 여사의 아들 민식, 염 여사가 다니는 교회에서 알게 된 아르바이트생 선숙 등 각자의 시선으로 독고와 대화를 하며 오해와 갈등을 공감과 이해의 과정으로 풀어낸다.

역사 담당 교사였던 염 여사가 편의점을 맡게 된 건 순전히 남편 때문이었다. 연금으로도 그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염 여사가 민식에게 편의점을 넘겨주지 못하는 건 자신이 책임져야 할 시현과 선숙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책임의식으로 ‘불편한 편의점’이 근근이 장사가 됐다. 이런 곳에 느리고 굼뜬 독고가 나타났다. 말줄임표가 너무 많아서 읽으면서도 답답했다. 성격을 너무 생생하게 그려낸 김 작가의 노력일 것이다.

그런 그가 ‘새벽’ 편의점을 지킨다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이것이 갈등의 시작이다. 함께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은 행동이 너무 굼뜨다며, 말을 더듬기에 결제는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묻기도 했다. 하지만 독고는 빠르게 업무를 익혔고, 느린 자신만의 속도로 정확하게 일을 했으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큰 덩치로 인해 무섭다는 인상을 받지만, ‘불편한 편의점’에 없어서는 안 될 든든한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으로 자리 잡았다.

“내가 말이 너무 많았죠? 너무 힘들어서……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독고 씨가 들어줘서 좀 풀린 거 같아요. 고마워요.” (108쪽)

게임만 하는 아들 때문에 불만이 많은 선숙의 이야기를 들으며, 게임할 때 먹기 좋다는 삼각김밥과 이야기를 들어주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선숙은 독고 덕분에 아들과의 관계가 개선된다. 듣기의 효과는 여기서 멈추는 게 아니다. 절필을 선언하기 직전인 인경에게 ‘서울역 노숙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불편한 편의점’ 대본을 쓰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편의점이 ‘불편한 편의점’이라니, ‘힐링 편의점’이라고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독고 씨에게도 힘든 게 있다면 ‘술’이다. 알코올성 치매가 올 정도로 알코올에 의존했던 독고 씨가 ‘술’을 판매하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게 아니었을까. 독고는 이를 ‘옥수수수염차’로 해결한다. 술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책 덕분에 ‘옥수수수염차’를 자주 마시게 된 효과도 있다. 이를 위스키로 오해하는 고객도 있지만, 독고가 자신의 이름을 찾는 과정은 마음 따뜻해지는 위로의 편의점이다.

빨리 종식될 것만 같았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2년을 지나 3년이 돼 가면서 곳곳이 고통의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 누구도 “그래도 살 만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만큼 다들 지쳐 있고 힘들다. 최근 지인이 나에게 책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를 선물해주었다. 나 역시 ‘기분 나쁨’을 온몸으로 표현했나 보다. 누구나 힘들다는 것만 알면 그렇게 날카롭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다. 그렇게 나도 독고 씨에게 하고 싶은 말을 써보게 된다.

“오늘은 배송 예정일에 맞춰서 오지 않았다고 정신적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혹은 “원하는 제품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있었어요”라고 운을 떼면, 어떤 말이 돌아올까 생각도 해봤다. 그래서 내가 통쾌하게 읽었던 부분이 JS(진상)를 대하는 독고 씨의 태도였다. “저거”(담배)를 말하고 봉투를 요구하는 JS에게 봉투가 없다며, 에코백을 털어서 담아주는 독고 씨의 행동은 통쾌하다 못해 따라 하고 싶어진다. 그렇다면 독고는 왜 알코올성 치매에 서울역 노숙자가 됐을까? 궁금하다면, 11월 독고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러 <불편한 편의점> 1페이지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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