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대상 확실히 알아야
먼저 규제의 주요 대상층이 누구였는지 살펴보자. 주택 소유자를 구분하는 방식은 1주택자, 2주택자, 3주택 이상을 소유한 다주택자 등이다. 통계청에서 각각의 소유 비율을 살펴보면 1주택자가 약 90%, 2주택자가 약 2~3%, 3주택 이상 다주택자가 약 7~8% 비중을 차지한다. 정부는 이 중 다주택자에 해당하는 10% 사람들이 주택을 불필요하게 더 소유하기 때문에 가격이 상승했다고 나름의(?) 확신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주택 시장은 9할의 비중을 차지하는 1주택자와 소수의 다주택자가 섞이면서 가격 움직임과 방향성이 달라지는 곳이다. 1주택자라고 해서 투기적 성향이 없다고 확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른바 똘똘한 한 채의 반란이자 이율배반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일부 1인이나 1가구 혹은 1법인이 수백, 수천 채의 주택을 소유한 부분이 특정 물건과 시장을 교란하는 요인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전월세(임차) 시장, 매매 시장이 각각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면 다주택 소유자에 의한 주택 소유가 자산이 부족해 당장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서민들의 전월세 물량을 공급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투기적인 성격을 가졌다고 확언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노후 생활자금 확보를 위해 임대사업을 하는 다주택자가 반드시 투기적이라 볼 수 없으며(자본주의에서 일반적인 임대사업), 직계존속으로부터 상속을 통해 다수의 주택을 소유한 사람도 있으며(보유 기간이 장기인 다주택자), 강남의 집 한 채(30억~40억 원) 자산에도 미치지 못하는 다세대 혹은 다가구 주택을 소유한 사람(주택 개수가 아닌 전체 자산 여력)도 있다. 또한 정부가 출산을 장려하듯이 2~3자녀 이상의 다자녀 가구가 자녀를 위해 주택을 2~3채 이상 보유한 경우(같은 정부에서 각각 다른 정책 추진의 이해 충돌)도 있다.
규제 대상인 2주택자라 해도 개인 사정에 따라 하나는 본인이 또 하나는 직계존비속이 거주하는 경우도 있다. 즉, 다주택자라고 해서 반드시 투기적인 성향으로 삼는 부분에서 불합리한 사례들이 다수 발견된다. 이 때문에 정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추구하며 부의 편중을 정부가 사회적으로 나쁜 사람으로 몰아세우기보다는, 전체 사회 구성원들을 위해 세금을 많이 내는 핵심 국민층의 하나로 정당하게 인정하는 것이 상호간에 이롭다는 의미다. 부자들은 이미 확보된 현금보다는, 사회적 명예를 더 우선하는 경향도 있다.
투기와 투자, 실수요자 구분 명확해야
투기와 투자, 실수요자의 명확한 구분은 칼로 무를 썰듯이 쉽게 구분될까. 필자가 15년가량을 부동산 시장 전문가로 활동했지만 아직도 이 세 가지 주체의 명확한 구분을 결론내기 어렵다.
왜냐하면 실수요자를 빙자한 투자자 혹은 투자자를 빙자한 투기자, 투자자 같지만 알고 보니 실수요자인 사람들이 마구 뒤섞이면서 종이 한 장 차이처럼 명확하게 구분이 어렵기 때문이다.
동물처럼 움직이는 ‘미스터 마켓’이 진짜 우리의 현실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영화 <식스센스>의 대사처럼 자기가 실수요자인지, 투기자인지, 투기자인지 본인도 헷갈리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실수요자와 투기자, 투자자의 명확한 구분이 어렵기 때문에 대출과 세금을 통한 규제가 시작되면 정부가 투기 혹은 투자자로 생각했던 사람들이(예를 들면 임대사업자) 예상과 달리 서민들로 둔갑하며(실제 서민이었을 가능성도 존재) 과도한 규제에 따른 부당한 피해를 호소한다.
이처럼 현실에서는 규제 대상의 명확한 구분이 어렵다 보니 정부의 대출 규제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앞서 2017년 8·2대책에서 발표됐던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 비규제지역 구분은 2018년 9·13대책과 2019년 12·16대책, 2020년 6·17대책 등을 거치면서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의 중복 성격으로 인해 현재는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 비규제지역 등 세 가지로 단순화 됐다. 초강력 금융 규제 시행…수요자도 진화
문제는 지난 6·17대책 이후 전 국토의 절반 이상이 조정대상지역 이상의 규제지역에 편입되면서 초기의 핀셋 규제가 현재는 광역적인 지역 규제로 변했고 투기과열지구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40%, 조정대상지역은 LTV·DTI 50% 수준에서만 주택담보대출이 가능하다.
여기에 9억 원 기준 금액을 초과할 경우 투기과열지구는 20%, 조정대상지역은 30% 수준으로 대출 한도가 축소되며 15억 원을 초과하는 고가 아파트는 대출을 전면 금지하는 초강력 금융 규제도 시행 중이다.
다만 금융 규제의 피해가 서민 실수요자에 집중된다는 의견을 정책에 반영해 올해 7월부터 서민 실수요자에 한해 9억 원 이하 주택은 10~20%포인트 완화해 대출 비율을 적용한다.
하지만 이 또한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하다. 최대 한도는 4억 원으로 제한되고 새로운 대출 규제 방식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기존과 동일하게 적용돼 그나마 대출 한도가 잘 나오는 조정대상지역이나 비규제지역에 풍선효과가 유입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규제가 집중된 서울보다는 경기, 인천의 6억 원 이하의 중저가 주택에 실수요자들이 대거 쏠리며 최근 1년 사이 아파트 매매가격이 20~30% 폭등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규제를 통해 금융권 허들을 높이는 부분들이 역대 최저 금리 상황과 광의통화(M2, 현금성 통화량)가 3433조에 이르는 상황, 그리고 국내에만 있는 전세라는 제도에서 유발되는 레버리지효과(갭투자, 전세가율 50~80%를 활용한 투자) 등으로 정부가 원하는 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가 2019년 12·16대책을 통해 15억을 초과하는 고가 아파트에 대한 대출을 전면 금지했음에도 시장이 일시적으로 주춤하는 효과만 있었을 뿐 그 이후에도 고점 경신을 거듭하며 국민 평형으로 불리는 전용면적 84㎡(약 33평)가 강남권에서는 3.3㎡당 1억 원을 넘어서는 것이 당연하다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 규제에 대한 수요층의 내성이 생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규제 변화에 맞춰 수요자도 진화하고 있다. 결국 2017년부터 지난 4년여 동안 진행된 규제 일변의 정책 효과가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누구를 위한 대출 규제인가
고가 아파트에 대한 대출을 전면 차단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대출 규제가 시행되는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가계대출 증가세가 가파르게 나타나면서 새로운 규제 도입이 임박했다. 정부가 은행권 대출 규제 증가 폭을 연간 6% 수준으로 제한하는 총량 규제를 권고하면서 이미 정부 권고 비율을 채운 일부 시중은행은 신규 대출 중단이라는 초유의 상황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 정부는 그동안 불문률로 여기던 전세대출 제도를 손볼 기세이고, 실수요자 시장으로 재편된 분양시장의 수분양자 대상 집단대출도 또 다른 규제 대상으로 저울질하는 중이다.
문제는 이러한 규제의 탑을 쌓으면 쌓을수록 정작 피해를 보는 계층은 정부가 우대 혹은 배려 대상으로 삼던 서민 실수요자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집단대출이 전혀 나오지 않은 아파트라고 해도 수억 원의 차익이 예상되는 로또 분양이라면 현금성 자산이 충분한 사람들과 현금성 자산이 풍부한 사람들의 자녀세대가 몇몇 분양단지에 수만 명이 운집하는 현상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정부의 통제 범위 밖에 있는 시중 유동성이 자산 시장 곳곳을 들쑤시고 있는 상황에서 자산과 소득이 부족한 서민 대상의 전세대출 규제와 집단대출, 소득 수준에서의 신용대출 규제 등을 도입할 경우 가계대출 증가세가 둔화하는 총량 규제의 목적 달성은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닐지 정책당국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정책을 통한 인위적인 억눌림은 지속 가능성이 낮고, 잠재된 주택 수요가 일정 시점에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현상들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이미 전세 시장에 상당 기간 머무르면서 전세 재계약을 준비한 분들이나 1~2년 전에 주택을 분양받고 입주를 앞두고 있는 분들의 경우 소급 적용에 따른 불평등의 문제점들이 사회 곳곳에서 촉발될 수 있어 더더욱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글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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