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섭 박사의 바로 이 작가 - 변웅필

자신의 삶을 반추(反芻)해본 적이 있는가. 나를 제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쉽지 않다. 매일 들여다보는 거울마저 나의 반대 모습만 비춰준다. 진심이 묻어난 내 표정은 상대방만이 제대로 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변웅필의 그림에선 마치 본심을 위장하듯 감정선이 최대한 절제돼 있다. 오로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생을 반추하는 법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나의 자화상이고, 동시에 누군가의 내면적 초상이 된다.
'SOMEONE', 캔버스에 유채, 117×91cm, 2021년
'SOMEONE', 캔버스에 유채, 117×91cm, 2021년
'SOMEONE', 캔버스에 유채, 53×41cm, 2021년
'SOMEONE', 캔버스에 유채, 53×41cm, 2021년
변웅필의 그림은 작가로서 창작하는 태도가 워낙 성실하고 꼼꼼해 그 결과가 작품에 그대로 묻어난다. 그림에 사용할 재료마다 본연의 성질을 깊이 이해하고, 작품의 보존성을 염두에 둔 제작 방식을 고수한다.

매체의 특성에 집중해서 기초부터 마무리까지 ‘작가적 시선’에 어긋남이 없도록 집중력도 잃지 않는다. 특히 작품의 시각적인 소재 역시 자극적이거나 직접적 혹은 비판적 표현은 삼가고, 감상하는 과정을 통해 서서히 전달되도록 ‘스며듦의 미감’을 추구한다.

지난 20여 년이 넘는 작가 활동 기간 동안 가장 오래도록 작품의 소재로 삼은 것은 인물이었다. 일정한 편견이나 선입견을 벗은 단순미의 조화로움, 섬세한 선의 미감과 엄격한 배색의 조율이 변웅필 조형 어법의 매력으로 여겨진다. 여기에 극도의 단순함, 형과 면과 공간을 시각적인 충돌이 없도록 배려한 화면의 구성미까지 가미됐다. 결국 그가 추구하는 작품 세계는 지극히 평면적이면서도 최소한의 입체감을 잃지 않는 독창적인 작업방식, 처음부터 마무리까지 한 치의 흔들림 없는 균형적 붓 터치의 힘 조절은 그만의 방식을 완성하는 핵심이다.

“평소에 도상이 떠오르면 바로 아이디어 스케치를 해둡니다. 과정은 그림틀부터 철저히 살피고 최상의 재료를 사용해 유성 그라운드로 밑칠을 하고, 스케치 후 유화로 시야에 거슬림 없이 가로 방향 붓질만으로 꼼꼼히 제작합니다. 건조된 후 눈에 거슬리는 부분을 수정하고, 다시 완전히 건조한 후 매트바니시(코팅 재료)로 마감 처리를 합니다. 마지막으로 미송(북아메리카 소나무종)으로 졸대를 씌우면 출품 준비가 끝납니다. 전시에 선보인 작품에 대해 ‘집에 걸어두고 매일 보고 싶다’는 감상평을 듣는 순간 가장 행복합니다. 그래서 ‘한평생 원하는 그림을 그려 많은 장소에 작품을 남기고 행복하게 살다 간 작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SOMEONE', 캔버스에 유채, 41×32cm, 2021년
'SOMEONE', 캔버스에 유채, 41×32cm, 2021년
'SOMEONE', 캔버스에 유채, 90×146cm, 2021년
'SOMEONE', 캔버스에 유채, 90×146cm, 2021년
변웅필 작가는 작품의 저변에 분명한 메시지는 담되, 그것의 드러남은 최대한 절제하는 화법을 구사한다. 내재된 메시지는 감상자의 보는 시각에 따라 자유롭게 해석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변 작가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잠재적 메시지보다는 시각적 조형미라고 볼 수 있겠다.

화면 위에 등장하는 사람의 형체와 이목구비를 최소한의 선으로만 표현했다. 눈과 입의 선들로 만든 표정으로 인물의 기분과 성별 정도는 짐작이 가능하다. 혼자 혹은 2명의 사람이 머리를 만지거나 고개를 돌리는 등의 동작을 취하고 있다. 그렇지만 과연 그들이 어떤 사람이고, 무슨 상황을 연출하는지는 상상력에 의존해야만 한다.

미술인문학자 이동섭은 “변웅필의 누군가는 아무도 아니니, 모두가 될 수 있다. 최소한을 표현해 최대한을 품는다. 그렇다면 이것은 추상화인가? 초상적 추상화인가? 추상적 초상화인가? 아니다. 이것은 정물화다. 과거의 정물화가 화병과 꽃, 과일과 식물 등을 통해 자연을 묘사하거나 도덕적 메시지를 은유했다면, 변웅필은 사람을 소재로 빛과 색의 본질적인 감각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에게 인물은 색을 칠할 수 있는 공간과 면적이고, 그곳을 작가가 직접 조합해낸 독창적인 색들을 아주 섬세한 붓질로 채워 그만의 세련된 감각을 구축해낸다”고평했다.

일련의 사건이나 에피소드는 최대한 배제한 채, 인물의 단순한 색과 형태로만 완성해낸 ‘변웅필식 조형미’를 설명한 것이다. 그래서 변 작가의 그림은 보는 사람들의 직관적 감성으로 매번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그 어떤 미술사적 유행을 좇거나 동경하기를 거부하고, 오로지 자기 내면 보기에 집중한 결과다. 인물의 ‘내면적 초상’ 시리즈를 시작한 계기는 이방인으로서 지내야만 했던 긴 유학생활이었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 겉돌았던 현실적 삶의 벽, 아무리 몸을 비벼도 마음까진 섞이지 못했다. 그런 환경에서 본인 자신마저 낯설게 느껴졌던 감성적 결핍이 오늘의 그림까지 이어지고 있다.

변 작가는 당시를 “독일 유학생활의 기억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예술가적 인성과 습성이 형성된 시기임과 동시에 이방인으로서 온갖 편견과 터부에 맞서고 버텨야만 했던 치열함의 시간이었다”고 기억한다.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 장(長)4', 캔버스에 유채, 100×300cm, 2004년(뮌스터미술대학 마이스터과정 졸업 작품)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 장(長)4', 캔버스에 유채, 100×300cm, 2004년(뮌스터미술대학 마이스터과정 졸업 작품)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 밴드 ll>, 캔버스에 유채, 120×100cm, 2017년(전남도립미술관 소장)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 밴드 ll>, 캔버스에 유채, 120×100cm, 2017년(전남도립미술관 소장)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까지 11년간 독일에서 지냈다. 이 기간은 개인적인 제2의 인생기 중 ‘감성적으로 가장 날 선 시기’였을 것이다. 전혀 익숙하지 않은 낯선 풍경과 풍습, 교감하기 쉽지 않은 낯선 이들과의 어울림을 홀로 극복해내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변 작가의 초창기 그림 속의 무표정한 인물에선 왠지 모를 처연함이 묻어난다. 얼굴이 일그러지거나 일부가 가려진 형상 또는 손이나 사물 간의 조화를 화면에 적절하게 풀어낸 일련의 인물 시리즈가 그렇다.

최근 작품의 제목들은 대개 ‘SOMEONE’으로 표기된다. 말 그대로 별다른 뜻 없이 ‘누군가’ 혹은 ‘어떤 사람’을 표현했다. 초창기 자신의 자화상을 모티브로 삼았을 때, 불필요한 감정 표현을 최대한 배제한 작업 방식이 변모한 연장선이다. 여전히 작품의 메시지는 ‘개성을 배제한 인물의 모습으로 일반적인 선입견과 차별에 대한 문제점을 객관적 시선으로 제시하는 것’인 셈이다. 작업 방식은 좀 더 가벼워진 드로잉 기법처럼 보이지만, 재료와 제작 과정은 동일하다. 흥미로운 것은 인물을 표현한 선묘들은 그린 것이 아니라 밑색이 보이도록 남겨진 결과라는 점이다. 여백의 선으로 형상의 단순미를 찾아냈다.

또 하나 변웅필 그림의 특징은 인물의 중성성이다. 남성도 여성도 어른도 아이도 아닌 ‘경계의 존재감’을 새롭게 창조해냈다. 이는 초기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 시리즈보다 신작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간혹 둘이나 소규모 인원이 함께 등장하더라도 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까닭이기도 하다. 주인공들의 성(젠더) 구별 또는 특정한 성격을 규정하지 않은 중성적 느낌 자체가 변웅필의 메시지를 대변하는 것이다. 다만 그 인물들의 속내는 철저하게 함구에 붙여 보는 이의 자유로운 감상을 배려한다. 이제 그 작품을 바라보며 나 자신의 자화상을 발견하면 된다. 변 작가의 작품은 같은 크기라도 작가의 선호도에 따라 가격이 다르게 책정된다. 전시 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10호(53×45.5cm) 크기가 대략 250만~300만 원 선이다.
[Artist]자화상, 동시에 누군가의 내면적 초상
변웅필 작가는…
1970년생. 동국대 미술학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독일 뮌스터미술대학에서 순수미술 전공으로 석사와 마이스터과정을 졸업했다. 그동안 ‘SOMEONE’(서울 호리아트스페이스, 2021년/ 부산 아리랑갤러리, 2018년), ‘小說의 변, 웅필-가로 본능의 초상’(서울 갤러리조은, 2014년), ‘옥림리 23-1’(서울 UNC갤러리, 2014년), ‘한 사람’(서울 갤러리현대 윈도우, 2013년), ‘한 사람’(부산 아리랑갤러리, 2012년),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 1 & 1/4’(서울 갤러리현대, 2009년) 외 10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또한 100여 회의 기획 단체전에 참여했다. 또한 뮌스터미술대학 대상, DAAD외국인학생 장학금, 쿤스트아스텍프 미술상, 2005 아도 미술대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주요 작품 소장처로는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OCI미술관, 인천 문화재단, 독일의 MARTA현대미술관,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 행정대법원 등이 있다. 더불어 지학사 중학교 미술교과서, 천재교육 고등학교 미술교과서, 미진사 고등학교 미술교과서 등 국내 6종의 중고등학교 미술교과서에 작품이 수록됐다. <그림명상>, <느낌의 미술관> 등의 표지를 비롯해 여러 단행본에 작품이 소개됐다. 현재는 인천 강화도 작업실에서 전업작가로 활동 중이다.

글·사진 김윤섭 아이프 아트매니지먼트 대표(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