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소통과 위로에도 ‘적정한 거리 두기’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능한 한 다가가는 게 따뜻한 것 아닐까. 공감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타인과 세상을 보살피는 따뜻한 힘이지만, 과도하면 어깨가 무겁게 눌려 자신과 타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소통과 위로에도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은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착한 마음을 일컫는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로 바꿔본다면 ‘공감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공감은 경험과 훈련에 의해서도 강화되지만 타고난 인간의 특징이기도 하다. 공감 능력은 인류 생존의 중요한 역할을 해 왔고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중요시된 지 오래다.

좋은 리더십에 있어 공감 소통 능력은 핵심 자질로 여겨진다. 특히나 타인의 고통을 느끼고 함께하는 것은 마음 입장에선 상당한 에너지를 쓰는 과정이다.

타인의 신체적 통증을 공감할 때 공감자의 뇌 속 통증 센터도 함께 활성화된다는 연구도 있다. 제대로 공감하면 ‘아픈가 보다’ 하는 수준이 아니라 진짜 자신의 통증처럼 아프게 느껴지는 것이다. 공감 능력이 좋은 이들이 의외로 많이 하는 질문이 “어떻게 하면 타인을 더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을까”다. 공감 능력을 타고난 이들이 오히려 자기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

즐거울 때 떠오르는 친구와 지쳤을 때 떠오르는 친구에 차이가 있는 경우가 있다. 내가 상태가 좋을 땐 공감보다는 유머 있고 흥겨운 사람을 만나고 싶지만, 지쳤을 때는 간혹 나도 모르게 답답하다고 느꼈던 친구가 떠오른다. 삶의 통증이 공감 레이더를 작동해 공감 능력이 좋은 친구를 자동으로 찾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공감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타인과 세상을 보살피는 따뜻한 힘이지만 과도하게 짊어지면 어깨가 무겁게 눌려 번아웃이 찾아올 수도 있고, 합리적 결정과 조언이 흔들려 타인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두 그룹을 나누어 아픈 환아의 음성 녹음을 들려주었다. 한 그룹에게는 정서 이입을 하게 했고, 다른 한 그룹에게는 최대한 감정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듣게 했다. 이후 의사가 권하는 치료의 우선순위 리스트를 줬을 때 감정적으로 들을 그룹은 3명 중 2명이 의사 의견에 반하는 의견을 냈다. 이에 비해 객관적인 그룹은 3명 중 1명만이 의사에 반하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진한 공감이 오히려 타인에 대해 좋지 않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연구 내용이다.

리더를 위한 퍼포먼스 코칭에 있어 공감을 연민으로 확장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에서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떠나 공감과 연민의 차이를 이렇게 둔다. ‘공감’은 타인에 대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라면, ‘연민’은 공감에 타인을 돕기 위한 행동적 의지도 함께 포함된 것으로 설명한다.

잘 돕기 위한 공감이라 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먼저 정서적 거리를 한 발짝 두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상대방을 돕기 위한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그리고 통증을 나누는 것을 넘어 무엇을 원하는지 질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공감해서 돕기를 원하는 내용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감하다 보니 급하게 자신이 생각한 도움을 상대방에게 주고자 할 수 있는데, 그 전에 묵묵히 행동 없이 듣는 것이 더 상대방을 돕고 위로하는 행동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 연민하기 위해서는 나부터 마음관리를 잘해야 한다. 내가 에너지가 없고 번아웃이 됐는데 타인을 도울 수 없다.
소통과 위로에도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외로울 때 뒷걸음치는 행동은 무엇 때문일까
외로우면 오히려 ‘뒷걸음치기(stepping back)’를 하는 경우가 있다. 즉, 방어를 위해 적정 거리를 두려는 심리적 경향이 존재한다. 다가갔다가 상처를 받은 경험 때문에 자존감도 떨어지다 보면 외로워도 누군가 다가올 때 ‘내 곁에 오지 말라’며 마음에서 방어적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 상황에서 급속한 디지털 사회로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고 동시에 외로움도 증가한 상황이다. 외로움은 직장인 번아웃의 주요 원인이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 할까. 동료는 많지만 정서적으로는 외로울 수 있고, 그 외로움은 마음의 에너지를 순식간에 고갈시킬 수 있다. 외로움을 사회적 외로움과 정서적 외로움으로 나누기도 한다. 실제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외로움은 쉽게 이해가 된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네트워킹이 돼 있어도 정서적 외로움은 존재할 수 있다. 외로움은 혼자 있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누가 와도 뒷걸음질 치게 되는 상황이라면 정서적 외로움에 다가서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외로움은 건강에도 좋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치매 위험도를 높인다. 또 외로움은 사회 변화에 부정적 에너지로도 작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현대인의 외로움을 사회·정치 영역에서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 현상의 한 원인으로 바라보는 주장도 있다. 외롭기에, 통합과 신뢰의 프레임보다는 극단적인 포퓰리즘 공약, 즉 우리가 아닌 나만을 위한 스토리텔링에 더 끌린다는 설명이다.

자녀들에 대한 외로움을 호소하는 부모가 많다. 자녀들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도 부모를 뵈러 가는 것이 효인지 고민이 크다. 어르신들도 그리움이 한계치에 이르렀다고 호소하지만, 또 실제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존재한다. 외로움과 만남의 두려움이 함께 증가한 상황이다.

외로움이 커진 만큼 ‘연결’이 중요한 힐링 단어로 뜨고 있다. 우리는 타인과 연결될 때 지친 마음도 위로받고 몸도 건강해지도록 설계돼 있다. 직접 만나면 좋겠지만 상황이 어렵다면 비대면 소통으로도 마음과 마음은 연결될 수 있다.

마음 연결에 효과적인 소통 팁을 하나 소개해본다. 열린 소통이 잔소리 형태의 닫힌 소통보다 좋다. 예를 들어 “결혼 안 하니”는 닫힌 소통이고 “요즘 결혼에 대한 너의 생각은 어때”가 열린 소통이다. 이런 질문 형태의 열린 소통은 상대방에게 나의 관심이 진실하다고 느끼게 해 상대방의 마음을 열어준다.

서로의 마음이 오픈되면 마음은 쉽게 연결된다. 열린 질문에 뒤를 이어 폴로업(follow-up) 질문이 좋다. 상대방의 대답을 잘 경청하고 있다고 반응해주는 것이다. “결혼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 현실적인 고민들이 존재한다고? 그렇겠구나. 좀 더 이야기를 들고 싶네”라는 태도가 한 예다.

글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