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면역 시스템이라 하면 몸 안에서 일어나는 생물학적 반응을 이야기한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우선 일반적인 대응을 하고, 백신을 맞으면 더 효과적인 공격을 할 수 있게끔 생물학적 면역 시스템이 작동한다. 그런데 행동적 면역 시스템도 함께 존재한다. 예를 들어 신선도가 떨어져 보이는 음식 재료에는 손이 가지 않는 것은 몸에 해가 될 느낌에 따라 회피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상한 음식 색깔을 입힌 접시에 음식을 담아 식욕을 떨어트려 다이어트에 활용하는 것도 일종의 행동적 면역 시스템을 활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생체 에너지를 상당히 사용해야 하는 생물학적 면역 시스템에 비해 행동적 면역 시스템이 더 효율적이라는 긍정적 해석도 있다. 그런데 현재 팬데믹 상황에서 일어나는 ‘아시안 혐오’ 같은 비정상적 분노 현상을 과도한 행동적 면역 반응으로 해석하는 주장이 있다. 자신의 생물학적 생존에 위협을 줄 것 같은 부정적인 감정 자극에 ‘회피’라는 수동적 거리 두기 반응이 일어나고, 이것이 강화되면 ‘배제’라는 적극적 거리 두기 현상이 일어날 수 있고, 심하면 ‘증오’라는 공격적 거리 두기에 이르게 된다는 설명이다.
요즘 타인에 대한 짜증, 분노를 호소하는 이가 늘어났다. 세상이 긴 시간 비정상적으로 작동되다 보니 우리 마음 안에 위기관리 시스템도 과열돼 중요한 정보와 필터로 걸러버릴 정보를 잘 나누지 못하고 분노 같은 비상 사이렌을 지나치게 울리는 상황인 것이다. 분노, 혐오, 짜증 같은 내 마음의 감정 신호에 대해 조금은 한발 물러나 객관화해 바라보는 여유가 필요한 상황이다. 마음의 신호, 긍정적으로 재평가하기
코로나19 팬데믹 스트레스에 매우 장시간 온 인류가 노출되면서 다양한 정신의학적 문제가 증가하는 것에 대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불안과 우울장애를 포함한 다양한 정신병리현상 발생 위험도 증가, 사회적 연결과 관련된 기능 저하, 알코올 및 물질 남용 증가, 수면장애 및 비정상적 식이 행동의 증가, 공격 행동 및 가정 폭력 증가, 학습 및 업무 능력 저하, 그리고 비즈니스 결정장애 등 사회심리적 영역 전반에서 세계인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류가 동시에 마음에 스트레스 펀치를 연속적으로 맞고 있는 상황인데 마음의 맷집이 튼튼해 상대적으로 마음 건강을 잘 유지하는 그룹도 있다. 그래서 마음의 맷집이라 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resilience) 관련 연구가 큰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다. 전 세계인 모두가 고통을 당하다 보니 역설적으로 인종과 국가를 넘어서는 회복탄력성의 핵심 요소, 즉 한 방 맞아도 버티는 데 있어 제일 효과적인 심리적 방어 요인이 무엇이고 그 방어 요인을 키우는 데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에 대한 글로벌 차원의 대규모 연구가 가능해진 상황이다.
‘부정적인 정서 반응은 증가하고 긍정적인 감정 반응은 감소하는 것’이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을 더 증폭시켜 여러 사회심리적 문제를 야기하는 주요한 요인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런 부정적 반응을 막아주는 회복탄력성 관련 요인으론 현재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긍정적 평가 스타일(Positive Appraisal Style, PAF)’의 중요성이 보고되고 있다. 긍정적 평가는 긍정적 감정 반응을 증가시키고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탄력성도 증가시킨다.
87개국 2만164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PAF를 강화할 수 있는 간단한 인지 기법을 훈련한 그룹에서 부정적 감정 반응은 줄고 긍정적 반응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더해서 현 코로나19 상황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사회적 거리 두기 등 예방적 건강 활동의 실천을 약화시키는 면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 연구에서 사용한 기법은 현 상황에 대한 인식에 변화를 주는 재평가(reappraisal) 기법이다. 예를 들어 ‘사람도 못 만나고 운이 나빠 이런 시기를 보낸다’는 부정적 평가를 ‘손 씻기, 사회적 거리 두기 등은 나와 내 사랑하는 이들을 바이러스로부터 지킬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이고, 인간의 역사를 볼 때 우리는 이 어려운 시기를 잘 견뎌낼 것이다’라는 긍정적 시각으로 재평가하는 것이다.
미래의 변화에 집중하는 재평가 기법도 있다. 예를 들면 ‘이번 코로나19 위기는 사회적 연결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누가 나에게 소중한지를 느끼게 해주었으며 이런 상황에 대한 의료 시스템의 대처 능력도 증가해 미래에 보다 진보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는 것처럼 ‘인지 재평가를 통한 관점 전환’을 해볼 수 있다. 관점 전환은 긍정적인 감정을 강화해 같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회복탄력성을 증가시키고 몸과 마음에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바이러스 위기가 아닌 정치적 갈등에도 인지 재평가는 도움이 된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과 관련된 사진 등 분노 유발 콘텐츠를 이스라엘 참여자에게 보여주었을 때, 감정적 대응이 아닌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태도로 재평가하도록 인지적 관점 변화를 연습하면 분노 감정이 줄고 미사일 공격 같은 공격적 정책보다 평화적인 해결 정책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인 ‘관점 전환’은 스트레스 관리는 물론 리더십에서도 핵심 요소이고 그렇게 어렵게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상당한 동기를 가지고 노력해야 하는 면이 존재해 실제 적용에는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긍정적 관점은 무조건 좋게 생각하자는 것과는 다르다. 내 생각과 감정을 과학자처럼 하나의 데이터로서 냉정하게 바라보자는 것이다. 이는 과도한 염려나 불안 또는 왜곡된 인지 프레임에서 한발 벗어나 정확한 현실 인식과 자기 인식을 하고 그 안에서 위기 후 성장을 가능케 한다. 우리 내면의 용기와 긍정성을 이끌어내는 과정이다.
글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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