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경제협력기금, 'ESG 허브' 되나
개발도상국의 산업 발전과 경제 안정을 지원하고 한국 경제의 교류를 증진시켜 대외 경제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운용되는 공적기금 ‘대외경제협력기금(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Fund, EDCF)’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허브 플랫폼으로 부상했다.

1987년 출범 후 총 57개국 465개 사업에 22조 원이 투입된 EDCF는 개도국에는 더 나은 삶의 질 향상을, 기업에는 글로벌 시장 진입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 정부는 EDCF를 ESG 허브로 육성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 방안을 마련했다.

코로나19 여파, EDCF도 체질 개선

정부는 국제 개발협력 분야 최근 동향과 현장 수요를 반영한 EDCF 전 단계별 내실화를 추진키로 했다. 그간 EDCF 사업을 벌이면서 급변한 환경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개발 재원 공급과 수요 간 불균형이 발생한 데 따른 것이다.

특히 선진 공여국의 전략적 공적개발원조(ODA) 추진으로 개발협력 시장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일본, 독일 등이 공격적인 차관 공여에 나서면서 개도국의 대형 사업 수주 기회 선점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사회 인프라와 ESG 등 개발 수요가 다양화되는 만큼 글로벌 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하겠다며 EDCF 지원 방식 등을 전면 고도화했다. 우선 사업 발굴과 실행, 완료 단계별로 제도를 개선하고 사업 전 단계에 걸쳐 대내외 협력 강화를 통한 외연 확대를 꾀할 예정이다. 또 그린 EDCF를 추진한다. 세계는 기후변화 대응을 통한 지속 가능 성장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추세다. 국제사회에서는 탄소중립이 글로벌 의제로 부상했다. 선진국 중심으로 탈탄소 비전이 선언되고 있다.

한국도 ‘2050 탄소중립 추진 전략’을 발표했다. EDCF 사업도 연계해 녹색회복 의제 중심으로 힘을 싣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국내외 개도국 중심으로 그린 분야 지원이 대폭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그린뉴딜 ODA 비중을 종전 6.4%에서 22.7%로 확대하는 로드맵을 수립 중이다. EDCF 차원의 체계적인 그린 분야 지원 전략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한국 그린 EDCF 목표는 2020년 2억 달러에서 2050년 6억 달러로 비중을 4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세부 추진 방향도 마련했다. 우선 기후변화 대응 내재화다. EDCF 사업에 기후변화 대응 요소를 포함시키고 사업 승인 전 기후변화 위험요소나 경감 방안을 도출하고 설계와 시공 시에도 기후위험 경감 방안을 이행하게 한다. 완공 시 기후변화 대응 기여도를 평가한다.

기후변화 완화 분야 지원 확대와 국제협력 공조도 대폭 강화키로 했다. EDCF 운용사인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 코이카) 간 협력 네트워크를 더욱 공고히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장 중심의 기관 협력 일환으로 현지 사무소 상호 지사화를 꾀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정부 협력 창구로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

사업 전 단계에 걸친 협업 모델을 창출하고 중장기로는 혁신적 금융 협력도 꾀한다. 특히 디지털뉴딜 부문에서 유기적 협력 관계를 대폭 강화할 계획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정보통신산업진흥원, 해외건설협회 등 디지털뉴딜 분야 전문 기관과 섹터별 협력 관계를 구축키로 했다.
대외경제협력기금, 'ESG 허브' 되나
EDCF, 개도국 공공 인프라 현대화 등 성과 이뤄

EDCF는 아시아, 아프리카 등 개도국의 교통, 보건, 수자원·위생 등 공공 인프라를 현대화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 지원 현황을 보면 총 16개국에 13조3000억 원을 지원했다. EDCF 전체 규모 중 1위로 60.8%에 달한다. 뒤이어 아프리카 25.9%, 중남미 9.8% 순이다.
성공적인 EDCF 사업으로 꼽히는 프로젝트는 우즈베키스탄 국가지리정보시스템(NGIS) 구축 사업이다. 우즈벡은 천연자원이 풍부하지만 자원 인프라를 관리하고 활용하는 시스템이 없었다. 한국 정부는 1500만 달러 기금을 투입해 우즈벡에 국가지리정보시스템을 구축했다.

공공 분야는 물론 기업 활동, 일상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공간정보 기술까지 보급하는 데 성공했다. 기술 설계와 표준화 작업, 국가위성측지망 구축, 수치 지도 제작, 국가 지적·부동산 등록 시스템 개발, 자동화 워크스테이션 구축, 통신장비 공급 등 전 분야에 걸쳐 한국 기술을 보급했다. 이로 인해 한국 기업에도 큰 사업 기회요인이 되며 나비효과를 촉발했다.

세계 공간정보 산업 규모는 측량과 GIS 부문만 합산해도 44억 달러, 응용기술 산업 등을 포함하면 4000억 달러가 넘는다. 베트남 하노이~하이퐁 고속도로 건설 사업도 EDCF의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하노이와 하이퐁 간 연결도로를 건설하는 사업으로 ‘베트남 경인고속도로’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 건설 사업으로 역내 투자가 촉진되는 효과를 거둬들였다. LG전자는 2023년 약 10억 달러를 투입해 현지 산업단지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박닌성, 타이응우옌성 생산기지 투자를 대폭 강화했다. 인근 공단 약 53개 협력업체가 동반 진출해 이 지역 생산기지 수출 규모는 베트남 총 수출액의 약 10%를 차지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우리 기업의 후속 해외 진출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GS건설이 하노이~하이퐁 고속도로 7구간, 남광토건이 10구간 구축 사업을 수주해 동반상생 사업도 활기를 띠고 있다.

그 외에 도미니카공화국 관세청 전산화 사업도 있다. 한국 기술로 수출입통관 및 화물관리 자동화 시스템을 개발한 사례다. 도미니카는 이 전산 시스템 도입으로 물류 경쟁력이 크게 강화됐다. 수출입물류 처리 시간이 종전 2일에서 40분으로 단축되는 효과를 얻었다. 전산화를 통한 관세업무 투명성을 확보해 관세 징수율이 약 25% 증가하는 등 세수 확대 효과를 톡톡히 봤다.
대외경제협력기금, 'ESG 허브' 되나
포스트 코로나, EDCF 외연 넓힌다

정부와 EDCF 운영사 수출입은행은 코로나19에 따른 개도국 지원 체계 개편을 위해 포스트 코로나 전략을 최근 수립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경제위기 및 보건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EDCF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 정부는 코로나19 대응 EDCF 사업과 관련해 총 9개국에 4억8000만 달러를 투입했다.

우선 의료 기자재 지원과 K-방역 시스템을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 보다 신속한 지원을 위해 EDCF 차관 지원 절차를 간소화하고, 보건 분야 전문 기관과 기술 협력을 강화했다. 저소득 국가를 대상으로 채무상환도 유예했다. 27개국, 5900만 달러 규모다.

정부는 ‘EDCF 포스트 코로나’ 전략을 수립해 크게 네 가지 전략을 세웠다. 우선 ESG의 핵심 축인 그린·디지털 EDCF 사업 강화다. △스마트시티 해외 진출 활성화 △EDCF 그린 지표 개발과 시범 적용 △환경 등 세이프가드 기준 강화 △한국형 디지털 정부 확산 촉진을 꾀한다.
대외경제협력기금, 'ESG 허브' 되나
보건 분야 EDCF도 외연을 넓힌다. 보건 분야의 지원 규모를 확대하고 종합 패키지 지원 사업 모델을 수립 중이다. 사업유형별 맞춤형 지원인 ‘PPP 사업’을 확대하고 EDCF를 통한 혼합재원 패키지 사업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또 국제기구와 협력을 확대해 협조 융자 채널을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추진 체계도 모두 정비한다. 코로나19에 대응한 비대면 업무 시스템을 구축하고 EDCF 현지 사무소 기능도 대폭 강화할 계획이다. 아울러 중점협력국 위주의 기본약정(F/A) 대형화를 추진한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약 4조5000억 원 재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EDCF 지역별 재원도 효율적으로 배분키로 했다. 특히 신남방국인 미얀마, 캄보디아 등 기술 수요가 높은 최빈국 중심으로 지원을 대폭 확대한다. 신북방국은 기존 몽골, 우즈벡 외에도 추가 대상국을 발굴할 계획이다. 아프리카는 사업 수요가 많은 지역별 거점 국가를 중심으로 재원을 집중하고, 중남미는 신탁기금 사업-KSP 간 유기적 연계로 우리 기업의 진출을 지원한다.

글 길재식 전자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