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기부란, 기부자가 ‘자신의 사후(死後)에 남겨질 재산’인 유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유언자의 상속인이 아닌 공익단체 등 제3자에게 기부하는 것을 말한다. 불우한 이웃이나 친척 등에게 유산을 남기는 것도 유산을 기부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러한 경우에는 기부금에 대해 상속세가 면제되는 세제 혜택을 받을수 없기 때문에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소중한 내 유산, 기부로 나눈다
IMF 외환위기 이후 부의 양극화는 지속되고 있고 2025년에는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중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복지 수요가 급격히 확대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재정 압박 요인들은 정부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자선단체, 공익법인 등 민간단체들과 그 수요을 지원해야 할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의 자산지원재단(CAF)이 최근 발표한 ‘2018 세계기부지수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146개국 중 60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에서는 21위에 불과하며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부금 비중은 2007년 0.84%에서 2017년에는 0.75%로 줄어드는 추세다. 특히, 전체 기부금 중 유산기부의 비율은 0.5%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흔히 기부 하면 생전에 기부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유산을 기부하는 것은 생전재산을 기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고 기부재산이 생전재산이냐 유산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생전기부라면 “00 부동산을 기부한다”와 같이 정해 본인이 기부를 실행하지만, 유산기부라면 상속인이 기부를 이행해야 할 것이고 형식도 “00재산의 10%를 기부한다”는 방식으로 기부하게 되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유산기부는 대체로 유언에 의해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나 우리 법은 유언의 방식을 자필증서,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 녹음에 의한 다섯 가지 방식만을 인정하고 있고 각각의 법적 요건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기부 의사가 명확한 경우라도 유산기부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일반적인 유언에 의해 유산기부를 진행하는 방법 이외에도 보험에 의한 유산기부나 유언대용신탁을 통해 유산기부를 생각해볼 수 있다.

보험에 의한 유산기부는 생명보험에 의한 유산기부를 하는 방법인데 수익자를 원하는 단체로 지정해 가입하거나 이미 가입돼 있는 종신보험 수익자를 기부단체로 변경해 기부를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유언대용신탁의 경우 유언장과 달리 세대 간 연속상속 설계가 가능하고 생전에는 맡겨놓은 신탁재산에서 수익은 내가 갖고 사후에는 내 뜻대로 신탁 회사가 기부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유산을 기부하고 싶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준비해야 할 것인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아파트를 유산기부하고, 제가 사망할 때까지 해당 아파트에 살고 싶어요.” 이제 80이 넘은 홍이숙 씨는 지난해에 남편과 사별을 했다. 남편은 생전에 우리나라가 어려웠을 때 도와주었던 해외 원조를 잊지 않았다. 해외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위한 기부를 늘 실천해 왔고 남편 명의의 작은 아파트를 유고가 발생하면 자선단체에 유산기부를 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자녀들과 부부의 생각은 달랐다. 가족들의 반대로 홍 씨는 남편 명의의 아파트에 대한 기부를 진행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홍 씨는 결국 남편 명의의 아파트를 자녀들과 공동상속을 하고 말았다. 홍 씨가 상속을 받은 주택을 기부하려 해도 공동상속인인 자녀들이 처분을 원할 리 없다. 홍 씨는 남편 사별 후 상속에 대한 생각을 다시 정리해야 했다.

이미 남편 몫의 재산은 정리가 됐고 자신의 재산만큼은 부부가 평소 생각했던 해외 구호 활동에 도움이 되도록 기부하고 싶었다. 지금 거주 중인 아파트는 홍 씨의 소유이며 금전재산도 존재한다. 남편보다 재산이 더 많은 홍 씨는 남편이 사망했으므로 상속공제가 크지 않아 상속세는 남편 유고 시보다 증가하게 된다.

자신의 재산을 자녀들에게 상속하면 상속세도 많이 내게 되니 평소 남편과 실천하려 했던 유산기부 활동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금전은 홍 씨의 노후자금으로 쓰이게 하다가 남으면 자녀들에게 상속하고 거주 중인 아파트를 기부단체에 주고 싶다. 홍 씨의 마음은 어떻게 실천하면 좋을까. 실현 가능한 플랜을 찾고 싶다.

신탁을 활용한 아파트 유산기부는
대부분 기부 하면 생전에 기부하는 것을 생각하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사람들의 마음은 죽음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는 것 같다. 최근 5060세대도 상담을 요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새로운 인식의 전환인 것 같다. 물론 아직은 상대적으로 70~80세 이후가 설계에 적극적이기는 한 상태다.

홍 씨의 경우 아파트를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남은 여생은 거주 중인 아파트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기 때문에 생전에 기부는 불가능해 보인다. 이럴 때 유언이나 신탁을 활용하기를 권한다.

유산기부는 대체로 유언의 방식에 따라 진행되는데 우리나라 법은 유언의 방식을 직접 손으로 쓴 경우(자필증서), 공증인 앞에서 진술한 경우(공정증서), 비밀로 작성한 경우(비밀증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받아 적게 하고 유언을 한 경우(구수증서), 녹음한 경우(녹음 유언) 등 다섯 가지 방식만을 인정하고 각각의 방식이 갖춰야 할 조건들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기부 의사가 명확한 경우라도 유산기부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신탁을 활용하는 방법은 조금 더 확실한 방법으로 유산기부를 실천할 수 있다. 바로 유언대용신탁을 이용하는 것이다.

유언대용신탁의 경우 유언장과 달리 세대 간 연속적인 상속 설계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면 남편이 유언대용신탁을 하면서 배우자를 거쳐 자선단체에 기부를 실천하는 연속상속을 설계할 수 있다. 유언대용신탁은 유언의 집행에 있어 수탁자인 금융기관이 직접 신탁재산을 집행 처리함으로써 피상속인의 유지가 객관적으로 집행된다.

홍 씨는 유언대용신탁을 설정한다면 본인의 거주권을 보장하는 동시에 자녀들의 동의 없이 유산기부를 실천할 수 있게 구성하는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신탁이란 나만의 재단을 설립하고 신탁한 재산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설계하는 것과 같다. 홍 씨는 거주 아파트를 신탁에 맡겨 남편 생전에 함께 원했던 대로 기부를 실천하기 위한 자신만의 재단을 꾸릴 것을 추천한다.

신탁은 홍 씨 생전에는 주변의 유해요소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플랜으로 역할을 다하게 될 것이다. 최근 상담을 통해 신탁 설정을 원하는 분들은 본인을 위한 보호 플랜으로 신탁을 설정하는 경우도 많다. 노후에는 재산 관리를 위한 여러 고민이 생기게 되는데, 특히 주변에 많은 유해요소를 차단하기 위한 플랫폼이 필요하다면 그 해답은 신탁이 될 수 있다.

평생을 노력해 모아놓은 소중한 내 유산을 어떻게 나누면 좋을까. 먼저 배우자를 위해, 그리고 자녀들을 위해 유산을 남겨주고, 고마운 누군가 있다면 또 남기고, 마지막엔 더불어 살아갈 또 다른 이웃을 위해 남겨줄 수 있는 방안으로 유산기부를 선택해 남기는 유산기부를 실천해보는 것도 바람직해 보인다.

글 박현정 하나은행 100년 리빙트러스트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