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체 검사와 분석을 맡은 곳은 바이오 기업 마크로젠. 그동안은 연구자 시장을 타깃으로 한다는 이미지가 강했던 기업이지만, 앞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친숙하게 만들어 소비자 친화적인 비즈니스로 확대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올 2월 마크로젠의 국내 사업 대표이사로 취임한 김창훈 대표는 “그동안 마크로젠은 연구자 시장에 집중한다는 이미지가 강했다”며 “최고경영자(CEO)로 있는 동안 조금 더 소비자 친화적인 비즈니스로 마크로젠 브랜드를 각인시키고 싶다”고 강조한다. 장기적으로는 누구나 자신의 유전체 데이터를 마음대로 갖고 다니며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김 대표의 이야기를 직접 만나 들어봤다.
마크로젠은 어떤 회사인가.
“25년 동안 전 세계 153개국 약 1만8000여 곳의 파트너를 대상으로 유전체 분석 임상진단 서비스를 제공해 온 정밀의학 생명공학 기업이다. 그동안은 주로 연구자 시장을 대상으로 유전체 분석 사업을 진행해 왔는데, 지난해부터는 의료기관을 통한 유전체 검사(ETC)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소비자 직접 의뢰 유전체 검사(DTC)를 기업 간 거래(B2B) 형태로 진행 중이다.”
마크로젠의 향후 핵심 사업으로 개인 유전체 검사 시장을 보고 있는 건가.
“그렇다. 그간 DTC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해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국내 시장은 규제가 있다 보니 제공할 수 있는 항목이 제한적이었다.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과정에서도 한계점이 많았다. 현재는 B2B 파트너와 함께 서비스를 진행하는 방향으로 비즈니스를 추진하고 있다. 파트너사가 음식, 과일을 추천해주거나 건강관리 서비스를 추진하는 경우, 마크로젠이 분석한 유전체 정보에 근거해 추천 결과를 바꾸는 게 가능하다.”
뱅크샐러드를 통한 개인 유전체 검사가 화제다. 협업 계기가 궁금하다.
“뱅크샐러드가 헬스케어 정보를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업)에 포함하는 방향을 생각하던 시점에 마크로젠과 접촉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개인 유전체 검사를 무료로 해주고, 재미있는 결과를 제공해주는 만큼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갖는 것 같다. 하루에 700명을 대상으로 유전체 검사를 진행하는데, ‘1초 서비스’라고 불릴 정도로 경쟁률이 높다. 뱅크샐러드와는 우선 올해 말까지 20만 건의 유전체 분석을 진행하기로 돼 있다. 유전체 데이터의 건수가 많아질수록 그 가치가 높아지는 만큼, 뱅크샐러드와 마크로젠이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앞서 국내 시장의 경우 DTC를 통해 제공할 수 있는 유전체 분석 항목이 제한적이라고 언급했는데. 어떤 규제가 있는 건가.
“질병과 조금이라도 연관됐다고 판단되거나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부분은 DTC 항목에서 모두 빠졌다. 예를 들면 IQ 검사와 같은 항목이다. 과거 황우석 교수 사태 등으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일명 생명윤리법)’이 강해졌고, 유전체 검사 분야에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항목들은 DTC 비즈니스에서 못하도록 막혔다. 당시 유전자 검사는 병원을 통해서만 할 수 있었다. 이후 DTC 검사에 대한 요구가 계속해서 나왔고, 지금은 70여 개 항목까지 허용됐다. 다만 질병과는 상관없는 항목들로 선별됐다. 탈모가 될 가능성이나 비타민 농도를 알려주는 것은 법적으로 허용돼 있다.”
ETC의 경우 그런 규제에서 자유롭나.
“맞다. 마크로젠도 건강검진센터를 통해 ETC를 제공하고 있는데, 의료기관을 통한 유전자 검사이다 보니 규제로부터는 좀 자유롭다. 암 등 각종 질병과 관련된 항목도 검사할 수 있다.”
지난해에는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2차 시범사업’의 유전체 생산기관 용역과제의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는데.
“상당히 중요한 사업이다. 시범사업 2년 이후 본사업을 하게 되는데, 2023년부터 2028년까지 약 6년 동안 1조 원을 투자해 총 100만 명의 유전체 정보를 확보한다는 내용이다. 100만 명의 유전체 정보와 생활 기록을 모니터링하면 질병 발생을 예측하는 데이터를 만들 수 있다. 미국에서도 100만 명을 타깃으로 하는 ‘올 오브 어스(All of Us)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영국의 유전체 사업 ‘UK 바이오뱅크 프로젝트’도 같은 맥락이다. 각 나라별로 이런 사업을 통해 바이오 산업이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도 비슷한 플랜으로 빅데이터 구축사업을 하고 있는데, 시범사업에서는 희귀질환을 가진 2만 명의 유전체 정보를 목표로 한다. 1차에 이어 2차 시범사업에도 마크로젠이 들어가게 됐는데, 본사업 또한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
올해 설립 25년을 맞았다. 설립 이후 가장 핵심적인 유전체 분석 관련 성과는 무엇이라고 평가하나.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비즈니스 활성화 관점에서는 2016년 10월에 발표한 네이처 논문을 꼽을 수 있다. 한국인의 유전체를 완전하게 밝혀 네이처에 게재한 것인데, ‘한국인 표준유전체’로 불린다. 지금은 마크로젠이 이미지를 변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어쨌든 그 전까지 주력했던 분야는 연구자 시장이었다. 따라서 연구자들이 선망하는 분야를 우리 연구진의 노력으로 달성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당시 한국인에 대해 좀 더 정밀한 레퍼런스 지놈(genome)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메인으로 존재했던 레퍼런스 지놈과 비교했을 때 우리가 만든 아시아 레퍼런스 지놈이 굉장한 정확도를 가졌다고 평가를 받았다. 여러 곳에서 인정을 받으니 뿌듯한 경험이었다.”
앞으로 헬스케어 분야의 디지털 전환을 본격화할 계획이라고 들었는데. 어떤 계획인가.
“건강 정보와 유전자 정보를 결합해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질병 예측, 건강관리를 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시스템을 구축하고, 유전 상담까지 가능한 방향을 생각하고 있다. 데이터 시스템이 갖춰지면 다른 B2B 파트너의 서비스와 결합할 수도 있다. AI를 활용하려는 또 다른 이유는 유전체 검사가 대중화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려면 많은 사람들이 유전자 검사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그런 방향을 고려한 플랫폼 비즈니스를 계획하고 있다.” 현시점에 유전체 분석 기술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여러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희귀질환인 경우 유전자 변이에 의해 질환이 바로 나타난다고 해도, 케이스가 드문 탓에 의사들이 잘 모를 수 있다. 이때 유전자 검사를 먼저 진행하면 훨씬 더 쉽게 질병을 파악할 수 있다. 또 유전자에 따라 약의 효과가 다르게 작동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임상실험 과정에서 특별히 약이 잘 듣는다거나, 잘 안 듣는 케이스를 따로 골라 분석해본 결과, 특정 유전자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따라서 약을 먹는 사람 입장에서도 ‘어떤 유전형이기 때문에 이 약은 먹으면 안 된다’거나, ‘양을 조절해서 먹어야 된다’는 정보를 미리 알 수 있다. 제약 회사 입장에서는 신약 허가 여부가 중요한데, 많은 투자를 해서 임상 단계까지 왔는데 떨어져 버리면 엄청난 비용이 낭비된다. 그런데 이때 해당 약에 특정하게 반응이 잘 되는 그룹이 소수 나타난다고 하면 그 부문으로 좁혀서 허가를 받을 수도 있다. 여러 진단, 치료 과정에서 유전체 정보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이 밖에도 유전체 분석 기술이 어떤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을까.
“사람의 혈액을 뽑아서 검사하는 액체생검을 꼽을 수 있다. 보통 인체에서 조직을 떼어내 유전체 검사를 하는데,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데도 단순 예방 차원에서 조직검사를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혈액은 우리 인체 내에 돌아다니지 않는 곳이 없다. 혈액을 통해 암세포가 떨어져 나오기도 하고, DNA가 깨져 나오기도 한다. 이런 암세포나 DNA를 잘 분석해 어느 조직에서 떨어져 나온 것인지 추론할 수 있다. 앞으로 액체생검과 연계한 유전체 검사가 ‘건강 스크린’이라는 관점에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시장 전망은.
“유전체 분석 서비스의 가격이 점점 내려오고 있는 상황이라, 앞으로 대중화가 많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유전체 분석 시장 규모는 2020년 약 81억3400만 달러(10조3000억 원)에서 매년 연평균 22.2%씩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유전체 시장 규모도 4594억 원 정도로 추산되는데, 유전체 시장 규모가 계속해서 커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마크로젠 국내 사업 CEO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그동안 마크로젠은 연구자 시장에 집중한다는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 이런 브랜드 이미지가 오히려 제약이 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CEO로 있는 동안 조금 더 소비자 친화적인 비즈니스로 마크로젠 브랜드를 각인시키고 싶다. 현재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차원에서 추진하는 사업들이 있고, ETC 및 DTC 유전체 분석 서비스도 더 적극적으로 하려고 한다. 장기적으로는 누구나 자신의 유전체 데이터를 마음대로 들고 다닐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지금은 병원에 있는 자신의 유전체 정보를 다른 병원에 갖고 갈 수 없는 상황이다. 시스템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유전체 정보를 필요한 곳에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앞서 플랫폼 비즈니스를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는데, 이 사업이 성공한다면 그런 세상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ㅣ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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