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부호들은 돈을 모으는 데만 관심을 두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돈을 더 가치 있게 잘 쓸 수 있는지도 깊게 고민하죠. 그들은 현재의 행복을 미래에 유예하지 않습니다. 그 점이 과거의 자산가들과 가장 큰 차별점 같습니다.” (은행권 간부)
“시대가 급변하면서 상속·증여는 물론, 가업승계를 둘러싼 분쟁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패밀리오피스의 역할이 부상하는 이유도 이러한 문제들을 나날이 해결하기 더욱 어렵고, 복잡해지기 때문입니다.” (로펌의 한 변호사)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부의 이전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 6월 14일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발간한 ‘대규모 부의 이전에 따른 WM 시장 트렌드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등지를 중심으로 역대 최대 규모의 부의 이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에서 베이비붐 세대(1946~1964년생)와 70세 이상 고령층들의 부의 이동이 시작되며 미국 역사상 최대 부의 이전(greatest wealth transfer)이 전망된다. 특히, 미국 내 상속·증여 규제 및 세금 부담 완화(2018년 감세법안 통과로 상속·증여세 면제 한도가 개인 기준 500만 달러, 부부 기준 1000만 달러에서 각각 1000만 달러, 2000만 달러로 상향)로 부모 세대에서 자녀 세대인 X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로의 대규모 부의 이동이 촉진되는 것으로 보고서는 분석했다.
이에 따라 향후 2045년까지 약 84조 달러 규모의 거대한 부의 이동이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되며 그중 87%인 72.6조 달러는 상속·증여를 통해 이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러한 세대 간 부의 이전은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금융 자산군 내 자산 이전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40세 이하 영리치(young rich)는 현재 자산관리 회사에 대한 만족도 및 의존도가 낮은 편이고, 직접투자, 창업, 부동산 구입, 자선단체 지원 등 WM 시장 내 새로운 트렌드 변화의 바람에 따라 국내 금융 회사들도 부의 이전에 발 빠르게 대응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그 격전의 중심에 패밀리오피스가 뜨겁게 주목받고 있다.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통한 단기적인 수익 창출은 어렵지만 종합자산관리 서비스 제공을 통해 미래 잠재고객 유입 및 고객 충성도 제고 등 장기적 관점에서 유리하다는 것이 금융권의 중론이다.
패밀리오피스는 가족의 신탁 자산에 대한 설계와 투자를 통해 재산을 보호·증식하면서 자녀에게 원활한 방식으로 자산을 이전하기 위한 법무 및 세무 솔루션 등을 제공한다.
아울러 기부와 재단 설립 및 지역사회 활동 지원, 사업 승계를 위한 업무, 자녀세대 교육, 가족 모임과 여행 준비에 이르기까지 가족의 다양한 요구 사항을 수행하기도 한다. 최소 1000억 원 이상의 규모를 운용하며 자산운용사, 헤지펀드, 자선재단 등의 형태를 가진다. 특히 자산관리뿐만 아니라 사회공헌 활동에 참여하는 등 가문의 전통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자산관리만 하는 프라이빗뱅킹(PB)과는 구별된다.
더욱이 나날이 자산관리 시장이 한 개인 또는 한 기업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통섭의 솔루션이 필요해지면서 패밀리오피스의 니즈가 커지는 양상이다.
삼성증권은 지난 2020년 100억 원 이상의 자산가를 위한 ‘멀티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도입했고, 올 초 신한은행은 ‘신한 PMW 패밀리오피스 센터’를, 하나은행은 지난 5월 자산 300억 원 이상 고객을 위한 ‘하나 패밀리오피스&트러스트’를 출범하는 등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하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아직까진 국내에서 패밀리오피스 사업에 따른 단기적 수익성 확대는 기대하기 어렵다”면서도 “영리치의 등장, 고령화 시대 상속 분쟁 등 새로운 WM 시장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만큼 ‘낙수효과’와 같은 시너지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로펌도 줄줄이 ‘패밀리오피스’ 경쟁
패밀리오피스의 격전은 비단 금융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로펌들 역시 상속·가업승계 관련 법률 및 자산관리 서비스를 통합해 제공하는 전담 조직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로펌에 상속·후견 관련 법률 자문은 물론 금융자산 관리까지 맡기려는 고액자산가들의 수요가 늘고, 자산 가치의 상승과 고령화 가속, 상속 문화 변화 등 사회·경제적 변화가 맞물리면서 패밀리오피스에 도전장을 내밀고 나섰다.
주요 로펌들은 자산관리 전담 조직을 만들고, 가사 분야에 힘을 싣고, 금융권이 사실상 독점하던 개인 자산관리·운용 서비스를 도입, 토털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법무법인 율촌이 지난 5월 프리미엄 패밀리오피스 형태의 ‘개인자산관리센터’를 출범시켰고, 법무법인 세종도 동월 ‘상속·자산관리팀’을 선보였다.
조세 전문 로펌인 법무법인 가온도 지난 5월 13일 상속·증여, 신탁, 가업승계, 후견 및 가족 간 분쟁 예방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패밀리오피스 센터’를 신설했다. 법무법인 원 역시 지난해 미래에셋, 한국투자증권 등 금융사와 업무협약을 맺고 패밀리오피스와 자산 승계 관련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로펌들과 금융권 간 패밀리오피스 합종연횡의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져 귀추가 주목된다.
글 김수정 기자
김수정 기자 hoho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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