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이다. 그리스 최고의 지략가로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는 전쟁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사이렌이 사는 바다를 지나게 된다. 사이렌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요정이다. 그들의 노래는 아름답다 못해 치명적이다. 수많은 뱃사람들이 사이렌의 노랫가락에 홀려 바다로 뛰어내려 수장됐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유혹을 이겨냈다.
오디세우스도 아름다운 사이렌의 노래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냥 사이렌의 노래를 들었다가는 그와 부하들은 모두 바다에 수장될 게 뻔했다. 사이렌의 노래를 듣고 죽음은 피할 묘책은 없을까.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으라고 했다. 사이렌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바다에 몸을 던지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부하들은 전부 귀를 막으라고 했다. 이로써 부하들은 사이렌의 노래뿐 아니라 돛대에서 풀어달라고 외치는 오디세우스의 외침도 듣지 못하게 됐다. 이렇게 해서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노래를 들으며 죽음의 바다를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오디세우스처럼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눈앞의 유혹을 물리쳐야 할 때가 있다. 연금도 마찬가지다. 노후에 평안한 삶을 원한다면 당장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저축을 지속해야 한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래서 장기간 저축을 강제할 장치가 필요하다. 오디세우스가 사이렌의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 돛대에 몸을 묶었던 것처럼.
서구 사회에서는 연금에 가입하는 것을 ‘오디세우스 약정’이라고 한다. 대다수 연금이 각종 세제 혜택을 제공하면서 가입을 유도하는 동시에 중도에 해지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강제하거나 중도에 해지하면 커다란 불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금에 가입할 때는 세제 혜택만 살필 것이 아니라 장기간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그러면 지금부터 연금 종류별로 중도해지를 방지하기 위해 어떤 장치를 갖추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국민연금, 이민 가면 돌려받을 수 있나
국민연금부터 살펴보자. 국민연금은 오디세우스 계약의 형태 중 가장 강력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가입은 강제하고 빠져나갈 길은 거의 열려 있지 않다. 만 18세 이상 60세 미만으로 국내에 거주하는 국민은 국민연금에 의무적으로 가입한다. 공무원연금 등 다른 공적연금에 가입하고 있거나 소득이 없는 전업주부 또는 27세가 안 된 군인이나 학생이 아니면 국민연금에 의무가적으로 가입해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중도에 탈퇴할 수는 없을까. 가입자가 국적을 상실하거나, 해외로 이주하거나, 사망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해외이주 또는 국적을 상실할 때에는 가입자가 청구하면 그동안 납부한 보험료에 이자를 더해 일시금으로 수령하게 되는데, 이를 ‘반환일시금’이라고 한다. 가입자가 사망하면 그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던 자에게 유족연금을 지급하고, 유족연금 대상이 아닌 경우에는 반환일시금을 지급한다.
국민연금 가입 중에 실직을 하면 어떻게 될까. 이때도 가입자격을 유지하며 보험료를 계속 내야 할까. 그렇다. 1999년 이전에는 가입자가 사업장에서 퇴직하고 1년 경과한 다음 반환일시금을 청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안 된다. 별다른 소득이 없어 보험료를 낼 형편이 안 되면 국민연금공단에 납부예외신청을 하면 다시 소득 활동을 재개할 때까지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동안 납부한 보험료와 이자를 돌려받을 수는 없다.
보험료와 이자를 돌려받으려면 일단 60세가 될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일단 60세가 되면 그동안 가입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살핀다. 가입 기간이 10년 넘는 가입자는 무조건 적립금을 노령연금으로 수령해야 한다. 가입 기간이 10년이 안 되는 가입자는 그동안 납부한 보험료에 이자를 더해 반환일시금을 수령할 수 있다.
연금이나 반환일시금을 수령할 때 세금을 얼마나 내야 할까. 유족연금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노령연금은 다른 소득과 합산해서 종합과세를 한다. 하지만 반환일시금은 다른 소득과 합산하지 않고 따로 분류해서 퇴직소득세를 부과한다. 노령연금과 반환일시금 수령액 전체에 세금을 부과하지는 않는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2002년부터 소득공제를 해주기 시작했기 때문에 노령연금과 반환일시금 수령액 중에서 2002년 이후 납부한 보험료에서 발생한 소득에 해당하는 부분에만 세금을 부과한다. 퇴직금, 재직 중 중간 정산 할 수 있나
한 직장에서 1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는 퇴직할 때 퇴직급여를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재직 중에 퇴직급여를 찾아 쓸 수는 없을까. 퇴직급여 근로자의 노후생활비 재원이기 때문에 법에서 정한 사유가 아니면 중도에 찾아 쓸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러면 어떨 때 퇴직급여를 찾아 쓸 수 있는지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퇴직급여 제도로 퇴직금과 퇴직연금을 모두 인정하고 있는데, 퇴직급여의 종류에 따라 중간정산 가능 여부와 조건이 다르다. 먼저 퇴직금 제도에서 근로자는 법에서 정한 사유에 해당하면 퇴직금 중간정산을 해서 수령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떨 때 중간정산을 할 수 있을까.
먼저 무주택자인 근로자가 본인 명의로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중간정산을 할 수 있다. 무주택자가 주거를 목적으로 전세보증금을 부담해야 할 때도 중간정산을 할 수 있는데, 전세보증금 마련을 위한 중간정산은 한 사업장에서 한 번만 가능하다.
본인과 배우자, 부양가족이 질병이나 부상으로 6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한 때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경우에도 중간정산을 할 수 있다. 다만 본인 연간 임금총액의 12.5%를 초과해서 의료비를 부담하는 경우에만 중간정산이 가능하다.
이 밖에 사용자가 기존의 정년을 연장하거나 조건으로 임금피크 제도를 시행하는 경우, 사용자가 근로시간을 단축해 3개월 이상 계속 근로하기로 하는 경우, 근로자가 최근 5년 이내 파산선고를 받거나 개인회생절차 결정을 받은 경우, 천재지변과 사회적 재난으로 피해를 입은 경우에도 퇴직금 중간정산을 할 수 있다.
퇴직연금, DB에서 DC형으로
전환 시 중도인출 할 수 있나
이번에는 퇴직연금에 가입한 근로자를 살펴보자. 퇴직연금 가입자가 퇴직하기 전에 퇴직급여를 찾아 쓸 수 있을까. 대답은 근로자가 가입하고 있는 퇴직연금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퇴직연금은 크게 사용자가 적립금을 운용하는 확정급여(DB)형과 근로자가 자신의 퇴직급여 적립금을 운용하는 확정기여(DC)형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DC형 가입자는 법에서 정한 사유에 한해 퇴직연금 적립금을 중도인출 할 수 있다. 중도인출이 가능한 법정 사유는 퇴직금 중간정산이 가능한 사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임금피크 도입과 근로시간 단축을 이유로 퇴직연금 적립금을 중도인출 할 수 없다는 것은 퇴직금 중간정산 때와 다른 점이다.
DC형과 달리 DB형 가입자는 중도인출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일부 DB형 퇴직연금을 도입한 회사에서는 DC형을 추가로 도입하고, 근로자가 희망하면 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DB형에서는 중도인출이 안 되지만, DC형으로 전환하면 중도인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퇴직금을 중간에 정산하거나 퇴직연금을 중도에 인출할 때는 퇴직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소득세법’에서는 중간정산이나 중도인출을 하는 경우 퇴직급여를 지급받는 날에 퇴직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연금저축과 IRP, 적립금을
일부만 인출할 수 있나
노후를 대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연금저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은 ‘머스트 해브 아이템(must have item)’으로 통한다. 둘을 합쳐 ‘연금계좌’라고 하는데, 연금계좌 가입자는 저축금액을 세액공제 받는 대신 55세 이후에 연금으로 수령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 연금계좌는 퇴직자들 사이에도 인기가 많다. 퇴직금을 연금계좌에 이체하고 55세 이후에 연금으로 수령하면 퇴직소득세를 30~40%가량 경감받을 수 있다.
그러면 연금계좌 적립금을 중도에 찾아 쓸 수 있을까. 먼저 연금저축 가입자는 필요하면 언제든 중도인출이 가능하다. 하지만 IRP 가입자는 법에서 정한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적립금 중 일부를 중도에 인출할 수 있고, 그 밖의 경우에는 일부 인출이 안 되기 때문에 자금이 필요하면 계좌 자체를 해지해야 한다. 중도에 부분 인출이 가능한 사유는 앞서 DC형 퇴직연금 적립금을 중도인출 할 수 있는 사유와 같다.
적립금을 중도인출 할 때는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데, 인출 사유에 따라 세목과 세율이 다르게 적용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장기요양 의료비, 개인회생 또는 파산선고, 천재지변, 가입자의 사망과 해외이주 등을 이유로 적립금을 중도인출 하는 때에는 연금소득으로 보고 과세한다. 이때 인출금 재원이 자기부담금과 운용수익이면 3.3~5.5%의 세율로 과세하고, 퇴직급여를 인출하는 경우에는 퇴직소득세율의 70%에 해당하는 세율로 과세한다.
무주택자가 본인 명의로 주택을 구입하거나 주거를 목적으로 전세보증금을 부담하는 경우, 코로나19와 같은 사회적 재난 등을 이유로 적립금을 중도인출 하는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세 부담이 커진다. 인출금 재원이 자기부담금과 운용수익이면 기타소득으로 보고 16.5% 세율로 과세하고, 퇴직급여를 인출하는 경우에는 퇴직소득세율을 그대로 적용해 과세한다. 연금보험, 10년 내 중도인출 해도
비과세 혜택 받나
개인연금 상품에는 연금저축과 IRP 이외에 연금보험도 있다. 연금저축과 IRP에 세액공제 혜택이 있다면, 연금보험 가입자에게는 비과세 혜택이 주어진다. 본래 보험 차익은 이자소득으로 보고 과세한다. 하지만 연금보험과 같은 저축성보험 가입자가 보험 계약을 10년 이상 유지하면 보험 차익에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최근 보험 회사에서 판매되고 연금보험은 계약자가 원하면 적립금을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면 적립금 중 일부를 중도인출 하는 경우에도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 먼저 중도인출 시기를 살펴야 한다. 최초 가입일로부터 10년이 지난 다음에 중도인출을 하면 인출 금액을 비과세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입 후 10년이 경과하지 않은 시점에서 중도인출을 하는 경우에는 몇 가지 따져봐야 할 것이 있다. 먼저 인출금 재원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원금이면 과세하지 않고, 원금을 초과해서 인출하면 이자소득세가 부과된다. 하지만 대다수 연금보험이 납입한 원금의 범위 내에서만 중도인출을 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중도인출금이 과세될 일을 거의 없다.
다만 10년 이내에 중도인출 하는 경우에는 연금보험을 계약한 시점을 살펴야 한다. 2004년 12월 31일 이전 계약에서는 최초 연금보험에 가입한 날부터 만기일, 중도해지일, 최초 원금 인출일까지 기간이 10년이 안 되면 보험 차익에 비과세 혜택을 주지 않았다. 따라서 10년 이내에 중도인출을 하면 나중에 연금을 수령할 때 보험 차익에 대한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없다.
2005년 1월 1일 이후 계약에서는 연금보험 최초 가입일부터 만기일과 중도해지일까지 기간이 10년이 넘으면 보험 차익에 대한 비과세 혜택이 주어진다. 이때부터는 ‘최초 원금 인출일’을 따지지 않기 때문에 보험 계약을 10년 이상 유지하면 중도인출 여부와 무관하게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 각종 연금 상품의 중도인출 요건에 대해 살펴봤다. 어떤 것도 가입자가 필요하다고 아무 때나 적립금을 내어주진 않는다. 법에서 정한 조건을 충족해야 중도인출도 할 수 있고, 이때도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가입자 입장에선 ‘내 돈 내가 찾아 쓰겠다는데 왜 이렇게 성가시게 하는 거야’ 하고 볼멘소리를 할 수 있겠다.
저축도 하루이틀에 끝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오랫동안 저축을 하다 보면 다양한 유혹에 맞닥뜨리기 마련이다. 개인의 의지만으로 유혹을 이겨내기 어렵다면 중도인출이 어려운 상품을 고르는 것도 방법이다. 불편한 만큼 오래 갈 가능성이 크다.
오디세우스를 생각해보자. 그가 자기 몸을 돛대에 묶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사이렌의 사는 바다를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을까. 오디세우스가 위대한 것은 사이렌의 유혹을 이겨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사이렌의 유혹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미리 대비했다는 데 있다.
글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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