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초라한 행색으로 돌아오는 둘째를 발견한 아버지는 한걸음에 달려가 둘째 아들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면서 따뜻하게 맞아줬다. 그리고 둘째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운 후, 살찐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었다.
한편 큰아들은 그날도 평소와 같이 밭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돌아와, 집 안에 펼쳐진 잔치와 춤판을 보고 영문 몰라 하고 있었는데, 아무 일 없었던 듯 돌아와 있는 동생의 모습과 그에 대한 아버지의 극진한 태도를 보고는 결국 아버지에게 화를 냈다. 그러자 아버지는 남은 자신의 재산은 결국 큰아들이 다 가지게 될 것이니 그리 화내지 말고, 동생이 살아 돌아온 것을 함께 즐거워하자고 큰아들을 타이른다.
이것은 ‘돌아온 탕자’ 또는 ‘탕자의 귀향’이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많은 문학과 미술 작품의 모티브가 된 성경 속 이야기다. 약 2000년 전 중동 지역을 배경으로 한 것이고, 예수님이 이 비유를 통해 말씀하려던 주제는 상속이나 유산 분배에 관한 법률 문제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둘째 아들의 패륜에 가까운 요청과 유산 탕진, 성실한 큰아들의 불만과 분노, 가산의 이전 시기와 분배 방법에 대한 고민과 다툼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에게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돌아온 탕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상속 이슈는 무엇이고,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때 이른 자녀의 상속 요구, 합당한가
먼저 자녀에게 부모 생전에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할 권리가 있을지에 대해서부터 보자.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관습이나 율법에 따르면, 아들이 아버지 생전에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둘째 아들의 요구는 무리한 것이었고, 더구나 분배 요구를 넘어 그 재산을 실제로 처분해 탕진한 것은 아버지에게 큰 충격이자 불효가 됐을 것이다.
당연히 우리 민법에서도 자녀가 부모 생전에 상속 또는 증여를 요구할 권리는 없다. 상속은 피상속인(유산을 물려줄 사람)이 사망했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라서 생전 상속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다만 피상속인의 생전 증여를 통해 미래에 있을 상속의 목적을 앞당겨서 달성할 수는 있다.
만일 아버지가 둘째 아들에게 재산을 주면서 사창가 등에서 탕진하지 말 것, 범죄행위를 하지 말 것, 아버지에게 배은망덕한 행동을 하지 말 것 등을 조건으로 했다면(부담부증여), 아버지가 둘째 아들의 행실을 문제 삼아 이미 준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증여를 받는 사람이 부담부증여 계약에서 정해진 행동을 하지 않는 경우, 증여를 한 사람은 그 계약이 서면으로 작성됐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계약을 해제할 수 있고, 이미 이행이 완료된 부분까지 모두 돌려받을 수 있게 된다.
우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이른바 ‘불효자 방지법안’ 또는 ‘불효자 먹튀 방지법’은 대체로, 증여를 받은 사람이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거나 부모 등에 대해서 학대와 같은 패륜적 범죄행위를 한 경우에는 ‘부담부증여’와 같은 효도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이미 등기를 넘기는 등 이행을 완료했더라도, 원래대로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다음으로 둘째 아들이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 아버지가 사망한 경우, 상속 문제는 어떻게 될 것인지 보자. 아버지가 자신의 상속재산에 관해 아무런 유언 없이 사망했다면, 공동상속인인 두 아들은 서로 협의해서 상속재산을 나누어 가지면 된다. 비난 받아 마땅한 둘째 아들로서는, 아버지의 남은 유산에 욕심을 부리지 말고 형님인 큰아들이 남은 재산을 모두 상속하는 것으로 협의하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
그러나 둘째 아들에게 나누어준 재산이 실제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자신이 받을 수 있었을 몫의 전부가 아니었거나, 둘째 아들이 집으로 돌아온 후 아버지의 재산이 급격히 늘어나서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를 기준으로 한 유산 계산의 분모(分母)가 달라졌다면, 둘째 아들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더구나 중심을 잡고 둘 사이를 적절히 중재해줄 아버지도 세상에 없고, 자신의 부인과 자녀들의 생계까지 생각하면 둘째 아들로서는 윤리적, 도의적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일단 남겨진 유산에 대해서 권리를 주장하고 볼 가능성이 다분하다.
둘 사이에 협의에 의한 분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원칙적으로 민법이 정하고 있는 일응의 기준인 ‘법정상속분’에 의해 법원이 나누어준다. 고대 유대 지역에서는 딸들에게 상속권이 없었고, 이른바 ‘장자권(長子權)’을 이어받는 장남이 다른 아들의 2배를 상속받았으며, 우리도 예전에는 호주 승계를 하는 장남이 다른 상속인들보다 더 많이 상속받는 제도가 있었으나, 오늘날 우리의 법정상속분은 자녀들 사이에서 균등하다.
피상속인이 사망할 때 남아 있는 재산을 상속인들에게 일률적으로 균등하게 나누게 되면, 실질적으로는 불공평해지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피상속인으로부터 생전에 받은 것(특별수익)이 많은 자녀도 있을 것이고, 다른 자녀들과 달리 피상속인을 특별히 더 부양했거나 상속재산의 유지나 증가에 특별히 기여(기여분)한 자녀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민법은 특별수익이 있는 자녀는 원래 받을 상속분보다 적게 받도록 하고, 기여분이 인정된 자녀는 법정상속분보다 더 많이 받게 함으로써 상속인들 사이의 실질적 공평을 이루고자 한다.
이에 따르면 둘째 아들처럼 생전에 이미 아버지 재산을 많이 받아간 경우에는 상속분이 줄어들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피상속인 사망 시 남아 있는 상속재산 중에서는 아예 받아갈 몫이 없을 수도 있다(초과특별수익).
반면에 둘째 아들이 방탕하게 아버지의 재산을 축내고 있을 때, 묵묵히 아버지를 부양하고 그 집안일을 도우면서 상속재산의 유지나 증가에 기여한 첫째 아들은 그 상속재산에 대해 기여분을 주장하면서 원래 받을 몫보다 더 받도록 하는 것이 형평에 맞을 것이다.
만일 아버지가 자신의 사후에 둘째 아들이 첫째 아들에게 유산과 관련해 부당한 주장을 할 때를 대비해 자신의 사망 시점에 남아 있는 모든 재산은 큰아들에게 준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해 둔다거나, 둘째 아들로 하여금 미리 상속재산에 대해서는 일절 권리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하는 각서를 써 놓게 하면 어떨까.
자식에게 값진 유산 남기려면…
먼저 상속포기각서에 대해서 보면 상속이 개시되기 전, 즉 피상속인이 사망하기 전에 하는 상속포기는 효력이 없다. 따라서 둘째 아들이 아버지 생전에 아버지와 사이에, 또는 첫째 아들과 사이에 상속을 포기하기로 약정하더라도 그것은 효력이 없다. 둘째 아들이 각서를 써놓고 나중에 상속이 계속되자 말을 바꾸어 상속권을 주장하는 것도 금지되지 않는다.
유언의 경우에는 유언 당시 아버지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고(유언 능력), 법률이 정하는 형식을 갖추었다면(유언 방식), 구체적인 재산 내역을 밝히지 않고 남은 재산 모두를 첫째 아들에게 준다는 내용의 유언이라도 완전히 유효하다.
그런데 앞서 가정해본 것처럼 아버지의 재산이 둘째 아들에 대한 분여 후에 대폭 증가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서, 오히려 큰아들에게 유산이 몰림으로써 결과적으로 둘째에게 지나치게 불공평한 결과가 된다면, 둘째 아들에게 ‘유류분 청구권’ 이 인정될 수도 있다. 반대로 아버지가 뜻밖에도 둘째 아들에게 남은 재산마저 모두 남긴다는 유언을 한 경우에는, 당연히 첫째 아들에게 유류분이 인정될 것이다.
우리 주위에도 현대판 ‘돌아온 탕자’, 부모의 아픈 손가락이 많다. 성실하고 말을 잘 듣기는 했지만, 둘째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나 재산 분배에 불만을 가지고 아버지 사후에 상속 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오히려 더 높은 큰아들도 존재한다.
자녀가 조른다고 해서 탕자의 아버지처럼 막무가내로 생전 증여를 하는 것은 오히려 자녀를 망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고, 절세나 가업승계라는 달콤한 유혹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재산을 물려주는 부모는 거의 없는 듯하다. 유산 상속을 위해서는, 재산의 대물림에 앞서 건강한 정신의 승계가 전제돼 있는지, 유산을 받을 사람에게 그것을 담을 그릇이 잘 준비돼 있는지를 잘 살펴서, 그 시기와 방법을 잘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글 김성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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