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와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한 사람)의 부채는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시한폭탄’으로 꼽힌다. 코로나19 위기를 건너오면서 여러 금융기관에서 빚을 진 자영업자는 한계 상황에 직면했고, 빚을 내 투자한 영끌족은 본격적인 금리인상기를 겪으며 진정한 ‘채무 공포’를 맞닥뜨리게 됐다.
[big story] 자영업자·영끌족, 채무 공포 확산…비상구는 있나
#1. 서울 용산구에서 헬스장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최 모(48) 씨는 코로나19 이후 2억5000만 원에 달하는 빚을 졌다. 2020년 초 사업 확장을 목적으로 영업장을 이전하며 1억 원의 금융권 대출을 받았는데, 곧바로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며 매출이 뚝 떨어졌다. 들어오는 돈은 없는 상황에서 월세 등 고정비를 감당해야 하는 기간이 길어졌고, 카드론 등 제2금융권까지 손을 뻗칠 수밖에 없었다. 최 씨는 “그동안 자영업자의 대출 상환유예로 근근이 버텨 왔지만, 본격적으로 원금과 이자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걱정이 커졌다”며 “코로나19 이후 줄어든 고객 수가 회복되지도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버틸지 답이 안 나온다”고 말했다.

#2. 2년 전 ‘영끌’로 아파트를 매매한 오 모(35) 씨는 최근 치솟는 금리 탓에 밤잠을 못 이루고 있다. 당시 오 씨는 주택담보대출 4억 원을 변동금리 2.69%로 받았으나 얼마 전 금리가 4%대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매달 은행에 내던 원리금 상환액은 기존 162만 원에서 최근 200만 원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늘어났다. 앞으로 금리가 더 오르면 월급의 대부분을 빚 갚는 데 써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에 속이 타들어간다. 오 씨는 “집값이라도 상승하는 분위기라면 버티겠는데 최근 이 지역 집값이 조금씩 빠지고 있어 불안하다”며 “정부가 고정금리로 갈아타는 상품을 내놓는다고 들었지만 내 경우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것 같아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big story] 자영업자·영끌족, 채무 공포 확산…비상구는 있나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되는 가계부채 중에서도 자영업자와 영끌족의 부채 문제는 ‘금융 시한폭탄’으로 꼽힌다. 신용과 소득이 낮아 은행권에서 돈을 빌리기 힘든 중·저소득자와 코로나19로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은 자영업자·소상공인은 물론이고, 과도하게 빚을 내 투자한 영끌족의 다중채무(3곳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것)가 과거보다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통상 가계대출은 총량도 중요하지만, 더 큰 위험은 여러 곳에서 돈을 빌리고 빚을 막기 위해 추가 대출을 받는 다중채무에서 나온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다중채무자 증가세에 채무불이행 우려 증가
한국은행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DB)에 등록된 패널 약 100만 명의 신용정보를 분석한 결과 올해 1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자 중 22.4%가 다중채무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말에 비해 0.3%포인트 늘어난 수치로, 한국은행이 해당 집계를 시작한 이후 가장 높은 기록이기도 하다.

특히 이들 다중채무자의 비중 추이를 보면, 위기가 왔을 때 더 강한 충격을 받을 수 있는 ‘약한 고리’가 커지는 추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빚을 갚을 여력이 충분한 차주는 줄어들고, 소득과 자산이 불충분한 차주는 늘어난 모습이다.
[big story] 자영업자·영끌족, 채무 공포 확산…비상구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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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채무자 대출잔액에서 소득 상위 30% 고소득자의 비중은 1분기 말 기준 65.6%로 가장 높지만, 이는 전년 말과 비교하면 0.3%포인트 떨어진 수치다. 반면 취약차주로 분류되는 저소득자뿐만 아니라 중소득자의 다중채무 대출잔액 비중은 오르고 있다. 소득 하위 30% 저소득자는 9.3%에서 9.4%로 많아졌고, 소득 30~70% 중소득자도 24.8%에서 25.0%로 늘었다. 취약계층이 손길을 뻗기 쉬운 저축은행 다중채무 대출잔액은 75.9%에서 1.5%포인트 확대된 76.8%로 집계됐다.

2030세대의 다중채무가 늘어난 점도 눈에 띈다. 은행에서 대출받은 다중채무자의 연령대를 보면 30대 이하가 26.8%를 차지했는데, 지난해 말에 비해 0.6%포인트 늘었다. 다중채무 비중이 가장 높은 40대가 지난해 말보다 1.1%포인트 떨어진 32.6%로 집계된 것과는 대비되는 결과다. 암호화폐와 주식 투자에 열을 올리던 젊은 세대가 올 들어 하락장을 맞으며 빚을 내는 경우가 늘어난 것도 일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남주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과거에도 항상 문제가 됐는데 코로나19로 인해 더 악화된 측면이 있다”면서 “특히 부동산 투자에 진입하지 못한 영끌족이 암호화폐 등 리스크가 큰 자산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돈을 빌리며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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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에 몰린 자영업자의 다중채무 실태도 심각한 수준이다. 팬데믹 직전인 2019년 말과 비교하면 그 심각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금융위원회 취약부채 현황 조사 결과 자영업자 중 다중채무자는 2019년 말 8만 명에서 올 1분기 30만 명으로 4배 늘었다. 같은 기간 취약 자영업자의 대출은 68조 원에서 88조8000억 원으로 30.6% 급증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영업자나 영끌족 중에서도 자금 상환 능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위험 소지가 커 보인다”며 “상대적으로 장사가 잘되는 자영업자 등 소득이 있는 사람들은 문제가 덜하지만, 자산과 소득이 충분하지 않은 차주가 차환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앞으로 계속해서 금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기준금리를 높이지 않는다고 해도 시장금리가 높아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다중채무가) 위험요인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소득의 90%가 원리금으로…과다채무의 늪
연소득의 70% 이상을 빚 갚는 데 쓰는 과다채무자도 가계부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제다. 치솟는 집값과 아파트 투자 열풍으로 패닉 바잉이 극에 달했던 시기, 무리해서 집을 산 영끌족이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감독원은 향후 가계대출 평균 금리가 3%포인트 상승했을 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70%를 넘는 이들이 190만 명에 달할 것으로 봤다. DSR이 90%를 넘는 차주도 기존 90만 명에서 120만 명으로 확대될 것으로 추정했다. 향후 대출금리가 연 7%까지 오르면 생활비를 아무리 조여도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하는 차주가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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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단기간에 1~2%포인트 이상 금리를 인상한다면 원리금 상환 부담이 크게 늘어나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급증할 수밖에 없다”며 “고정금리 대출 비중, 원리금 상환 대출 비중이 금융 안정의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전체 부채의 40%를 차지하는 DSR 70% 이상 고위험 차주의 부실화 심화가 금융 안정의 중요한 변수가 된다”며 “계층별로 보면 신용대출, 전세자금대출 등을 이용해 무리해서 갭투자를 한 2030 영끌세대와 상가, 토지 등 수익형 부동산에 무리해 투자한 5060세대”라고 분석했다.

더욱이 장기 고정금리보다는 단기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채무 성격상 금리 인상이 가팔라질수록 채무불이행의 가능성이 심각하게 높아진다. 키움증권 리서치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은행과 비은행의 대출은 단기 대출인 신용대출, 집단대출, 개인사업자대출, 전세대출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자영업자들도 막다른 길에 봉착했다. 코로나19 이후 시행된 자영업자 대출 원리금 상환유예가 9월 말 종료되면 부채 폭탄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영업자 전체 대출 규모는 올 1분기 말 960조7000억 원까지 늘었다. 이는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말과 비교했을 때 40.3% 급증한 규모다.

커지는 금융 부실 우려…부채 리스크 연착륙 가능할까
정부가 자영업자와 영끌족을 대상으로 각종 금융 지원을 준비하고 있는 것도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다. 부실 채무 리스크를 그대로 놔뒀다가는 우리 금융과 경제 전반에 연쇄적 충격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새출발기금’은 여력이 없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채무 감면을 지원하는 일종의 ‘배드뱅크’다. 이미 부실화됐거나 부실 가능성이 있는 자영업자 채권을 매입해 일정 부분 채무를 감면해주는 지원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고금리 대출을 받았던 자영업자가 6%대 이하의 대출로 갈아탈 수 있는 대환 프로그램도 9월 출시될 예정이다.

영끌족의 이자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모기지도 나온다.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을 고정금리 정책모기지로 전환해주는 안심전환대출이다. 특히 저소득 청년층(만 39세 이하, 소득 6000만 원 이하)에게는 연 3.7%(10년)∼3.9%(30년)의 금리를 적용하는 만큼, 조건만 맞는다면 금리 인상의 소나기를 피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주택가격이 4억 원 이하이고 부부 합산 연소득이 7000만 원 이하인 경우에만 신청할 수 있어 수혜자는 제한적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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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한계 상황에 몰린 차주의 이자를 줄여주는 등 채무를 조정해줄 필요성이 있다는 데는 일단 공감한다. 남 교수는 “한계 차주에 대해서는 단순히 상환유예를 해주는 것보다는 이자를 깎아주는 게 더 도움이 된다. 이들은 소득이 늘지 않는 한 빚을 갚을 수 없는 위험한 상황”이라며 “특히 연체 차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원금까지 감면해줄 필요가 있다. 이런 선제적 조치가 없으면 장기적으로 사회적 비용이 더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자칫 무분별한 빚 탕감으로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앞서 정부가 만 34세 이하를 대상으로 한 채무조정제도를 발표하자, 성실 상환자를 소외시키는 빚 탕감 제도라는 비판을 받은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정부가 ‘빚투’, ‘영끌’을 무리하게 조정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어떤 사람이 얼마의 빚을 갖고 있는지도 중요한데, 흔히 말하는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지원 대상의 선별 기준을 명확하게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가) 도와주는 것이 더 큰 문제를 만들 수도 있다”고 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채무 부실 문제가 커지면 개인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에 미치는 파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정부가 채무 재조정 등으로 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주는 것”이라면서도 “다만 이를 위해서는 국가 재정 자원이 투입돼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 국가채무가 1000조 원을 넘어서는 위험한 상황에서 재정을 투입하게 되면 또 다른 파장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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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뇌관과 맞닿은 부채 리스크 4경제 전문가들은 부채 리스크로 인해 금융 및 경제 불안정이 생겨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나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비견될 정도로 큰 위기가 찾아오리라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금융 안정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남 교수는 “국가 전체의 위기로 갈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가계부채가 사회 불안정 요인이 될 리스크는 상당히 큰 상황이라고 본다”고 했다.

리스크 1 >>> 자영업자 다중채무
한국 경제는 자영업자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사실상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우리나라 내수 경기를 떠받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소기업 전망 2021’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전체 취업자의 25%다. 다중채무자 중에서도 자영업자의 비중에 주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참여연대 ‘1000조 원 소상공인 부채, 문제점과 개선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대출 연체율이나 폐업률이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올해 9월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가 해제되면 약 140조 원을 상회하는 대출원리금에 대한 상환 압박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참여연대는 “자영업자 대출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상황은 저소득 자영업자의 채무 상환 불능에 따른 경제 위축과 금융 리스크 확대, 회생 불가능한 자영업자의 구조조정 지연 등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리스크 2 >>> 청년층 과다채무
젊은 세대가 빚 때문에 발이 묶이면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에 영향을 줄 여지가 크다. 영끌족이 과도한 빚으로 안정적 소득 구조를 유지하지 못하면 소비심리가 둔화되고, 결국 경기에도 결정적 영향을 준다. 최근 3년간 주택을 구매한 사람 10명 중 3명이 MZ세대(1981∼2002년생)라는 조사 결과는 이같은 우려에 힘을 싣는다. 국토교통부가 김영주 국회부의장(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9∼2021년 주택을 매입한 사람은 총 250만1574명이다. 이 가운데 MZ세대는 72만2775명으로, 전체의 28.89%에 달한다. 김 부의장은 “최근 몇 년간 집을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청년들이 무리하게 대출까지 받아 주택을 사들였다”며 “연말까지 1금융권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9%까지 오를 수도 있다고 예상하는 보고서도 나오는 상황에서, 상환 능력이 부족한 이른바 ‘영끌족’은 한순간에 하우스푸어로 전락할 상황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리스크 3 >>> 금리 인상에 취약한 금융 시스템
국내 은행과 비은행의 대출 구조는 변동금리, 이자 상환 중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움증권이 내놓은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권의 변동금리 대출 비중은 잔액 기준으로 78%, 신규 기준으로 80%에 달한다. 비은행은 80~90% 수준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금리 인상에 매우 취약한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 상업은행의 경우 금융 안정 중심의 정책으로 기준금리 인상의 영향이 제한적이다. 2007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 안정 강화를 위한 규제 정책을 전개한 덕이다. 반면 국내 은행은 금융 효율성 중심의 정책을 지속했고, 그 결과 기준금리 인상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크게 받는 구조로 굳어졌다. 이런 구조에서는 급격한 금리 인상 이후 차주의 연쇄적인 채무불이행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리스크 4 >>> 부동산 경기 침체 우려
부동산 시장과 금융권은 그 어떤 분야보다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금융권은 부동산 호황기가 찾아오면 큰 이자이익을 얻을 수 있다. 반면 부동산 시장 침체기에는 금융기관의 재무 건전성에 위험 신호가 들어온다. 과거에도 우리나라 부동산 경기가 악화되기 시작하면 조금의 시차를 두고 금융기관 부실이 잇따른 사례가 존재했다. 지난 2010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무분별하게 키운 저축은행 30여 곳이 부동산 시장 침체와 함께 파산했던 전례도 있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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