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 작가 <고독사 워크숍>

고독사 워크숍, 박지영 지음, 민음사, 2022년 6월
고독사 워크숍, 박지영 지음, 민음사, 2022년 6월
[한경 머니 기고 = 윤서윤 독서활동가] ‘오늘부터 고독사를 시작하겠습니까?’ 심야 코인 세탁소로부터 도착한 쪽지는 나의 과거와 미래를 오가게 만든다. 어쩌다가 ‘고독사’까지 선택하게 된 걸까.

박지영 작가는 요양원에 갈 때 가지고 갈 단 세 권의 책 중 이 책이 포함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2013년에 장편소설 <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로 조선일보 판타지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7년 만의 신작이다.

옴니버스 형태로 진행되는 소설은 개인이 남에게 하지 못하는 내밀함을 보여주면서도 일상을 유지하는 이들의 모습을 그린다. 이에 대해 박 작가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고독사 워크숍에 흥미를 가질 법한 타깃층은 경제적, 육체적으로 절대적인 고독사 위험군인 70~80대 독거노인이 아닙니다. 고독사에 대한 불안을 안은 채 구체적인 대안도 없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긍정 혹은 자기 부정의 상태에 있는 30~40대 남녀들입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고독사라면 일찌감치 자신의 고독에 안무를 묻고 친밀해지는 연습을 하며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대상인 거죠. 내 죽음이 누구에게도 슬픔이나 죄가 되지 않는, 얼룩 없는 클린한 고독사가 되도록 말입니다.”(25쪽)

고독사에 참여하는 이들은 워크숍 동안 자신이 무언가가 돼야 한다고,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 사회이기 때문에 타인의 고독사를 학습하고 모방하며 자신의 고독사를 좀 더 높은 수준에서 완성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고독사 앞에서도 모든 무용에 이르는 실수를 죄책감 없이 하루하루 해내도 된다는 안도감을 배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노력이라는 걸 하는 거였다. 고독사 워크숍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었다. 미니멀 라이프랄까.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기를 선택하는 것,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두는 것이 중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널 1부터 89까지 매일 다른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의자를 뛰어넘기도 하고, 서툰 솜씨로 피아노를 치는 이도 있었고, 매일 3분씩 개그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개그인지는 모르겠으나, 본인이 개그라고 하니 ‘개그’인가 보다 하는 거였다. 검은 상자 안에 달팽이를 담는 채널도 있었다. 고독사 워크숍을 본 이수연은 “누구에게도 침해받지 않은 고독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코어를 단련해야 한다”(235쪽)는 걸 깨닫게 된다.

운동을 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반복된 훈련을 통해 알게 되는 건 어설픈 자세라도 꾸준한 연습을 통해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수연은 고독이란 단순히 마음이나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균형과 근력의 문제라고 진단한다. 혼자 버티면서 산다는 건 얼마나 고독한 일인지, 이수연 역시 반복된 훈련을 통해 알게 됐다. 우리의 고독은 대체로 단련될 수 있다는 것을. 그렇다. 결국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일이다.

“어른이 되면서 중요한 건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것보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거였다. 평정심에서 나오는 상냥한 태도, 사려 깊은 경멸과 친절로 가장한 경계심, 그것이 알렉스를 직업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사람들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낙오되지 않도록 지켜주었다.”(133~134쪽)

참가자들이 매일 3분씩 개그를 하고, 피아노를 치거나 하는 영상을 올리는 건 평정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무언가가 되려고 애쓰는 마음을 지우는 것, 취미를 쓸모로 바꾸어 유용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는 게 바로 아마추어 되기의 핵심”(113쪽)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무언가 완벽하게 해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실패를 허용하지 않고, 실패 속에서도 무언가 깨닫는 걸 요구한다. 실패했다는 마음이 들고 그것을 누군가와 공유하는 순간, 언젠가 그것이 나에게 비난이 돼 돌아올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렇기에 늘 출발선에 서 있는 아마추어답게, 할 수 있는 한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어쩌라고의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소설을 읽기 전에는 죽음을 떠올렸다. 그런데 읽을수록 ‘삶’의 형태를 생각하게 된다. “형편없지. 근데 세상도 형편없어. 아주 엉망이야. 똥 같아. 그니까 네 맘대로 더 형편없이 굴어도 돼”라고 하는 오대리의 할머니 말처럼, 세상은 완벽하지 않다. 매일 뉴스를 묵도하다 보면 욕이 저절로 나오기도 한다. 이런 형편없는 세상에서 버티려면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굳은살이 필요하다. 딱딱해져서 누구도 건드리기 어려운 살들. 매일의 나를 지켜주는 살들은 화려한 자극도 아닌 그저 일상에서 소소하게 마주하는 행복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고독사 워크숍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나의 과거를 통해 천천히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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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서윤 독서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