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물전통공예문화촌은 무주군에서 심혈을 기울여 조성한 테마공원이다. 최북미술관과 김환태문학관이 있는 메인 건물 외에 공예공방, 건강체험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최북은 무주 출신으로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 남종화의 대가이며 장승업, 김명국과 더불어 '조선 삼광(三狂)'으로 불렸던 기인이다. 금강산을 여행하던 중 명인은 명산에서 죽어야 한다며 절벽에서 뛰어내려 겨우 목숨을 부지했었고, 그림을 청탁받자 자신의 눈을 찔러 애꾸눈이 됐던 섬찟한 일화의 주인공이다.
최북미술관은 <매조도>, <메추리>, <설경산수도>, <계류도> 등의 영인본 100점과 <괴석도>, <공한>을 포함한 4점의 진본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전두환의 추징금 미납환수품 중에는 조선 후기의 대표 화가 9명의 작품 16폭이 수록된 화첩이 있었다. 대략 경매 추정가는 5억∼6억 원 선으로 알려졌는데 화첩을 분첩해서 경매한 덕에 무주군이 <공한>을 사들일 수 있었단다.
김환태 또한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무주가 낳은 소중한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문학의 순수성, 독립성을 주장했던 문예 평론가로 ‘문예시평‘, ’예술의 순수성‘, ’문학의 성격과 시대‘ 등을 저술했다.
주소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최북로15 소장하고픈 간결한 그릇, 진묵도예
김상곤 작가를 만나기 위해 공예공방 1층에 있는 ’진묵도예‘를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테이블과 선반을 가득 채운 생활 자기들이 시야로 쏟아져 들어왔다. 김 작가는 분청사기의 기법을 이용해 현대적 디자인의 그릇을 만든다. 그의 그릇은 단아하고 간결하다.
체험하는 과정에서도 그는 되도록 잘 만들려는 욕심을 버릴 것을 주문했다. 직접 개발했다는 한쪽 면이 오톨도톨한 흙판은 그저 유약을 발라 구워내기만 해도 멋진 플레이트가 완성될 것 같았다.
또한 김 작가는 높이가 다른 5개의 봉우리(칸불통)를 연결해 폐열을 이용해 소성을 완성해 가는 우리나라 전통의 오름가마를 이용한다. 그가 옛것을 존중하는 방식이다. “불은 분위기죠. 그릇의 무늬는 불의 흐름에 의해 생겨납니다.”
주소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김환태로 16-8 석채화의 명장, 김기철 화백
석채화로 유명한 김기철 화백의 보석화공방도 같은 건물 내에 있다. 빛의 예술이라 불리는 석채화는 인도에서 시작된 화법으로 시간이 흘러도 탈색되지 않는다고 해서 보석화 또는 만년화라 불린다.
2011년부터 이곳 공방에서 활동해 온 김 화백 역시 스스로 자연에서 직접 채취한 돌을 빻아 색을 만들어 사용한다. 아교를 바른 붓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돌가루를 뿌리고 칠해서 그림을 완성한다.
공방을 방문하자 바쁜 일정을 잠시 뒤로 미룬 김 화백이 엽서 크기의 종이에 이름을 풀어 그림 1점을 그려줬다. 물론 석채화다. 방문자 누구에게나 진심인 김 화백은 2020년 한국화 명인으로 선정됐다.
주소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김환태로 16-8 고풍스런 마을의 고풍스런 카페, ’나무와 그릇‘
설천면에는 옛 담장이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지전마을이 있다. 옛 흙과 돌을 쌓아 만든 담장이 길과 골목과 700m 나 이어진다. ‘고풍스럽다’란 표현이 잘 어울리는 마을이다.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남대천 느티나무들조차 수령이 300년이 훌쩍 넘는다. 마을의 형성 초기 범람을 막기 위해 심었던 것들이다. 그런 지전마을의 고풍을 깊고 더욱 진하게 만들어주는 장소가 있으니 바로 카페’ 나무와 그릇‘이다.
카페는 주인 부부가 한옥 폐가를 3년 가까이 리모델링해서 개조해낸 것이다. 예스러운 풍모를 지녔지만, 그것에 머물지 않고 감각과 세련미를 얹었다. 어릴 때부터 수집해온 책과 옛 생활 도구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다. 테이블, 의자, 문짝, 손잡이, 방충망 등 어느 하나 고재가 아닌 것이 없다.
소품으로 놓인 조각과 생활 도기들 또한 카페의 풍모를 닮았다. 마당의 잔디밭, 책이 천장까지 쌓인 사랑채는 찍으면 무조건 인생샷이 되는 포토 스폿이다. 오미자, 구절초, 미숫가루 등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식음료의 재료로 쓴다. 사이드 메뉴 또한 유기농이다.
‘나무와 그릇‘에서는 자리에 앉기 전 30분, 주문하기 전 10분의 시간이 필요하다. 고풍의 진수를 눈에 담고 즐겨야 하는 시간이다.
주소 전북 무주군 설천면 지전길 25-2 덕유산 향적봉에서 마음을 비우고
무주에 왔으니 덕유산 향적봉은 한 번 올라봐야 할 테지만 등반은 애초에 계획조차 없었다. 그래서 남녀노소 누구나 손쉽게 경험할 수 있는 관광 곤돌라를 타기로 했다.
단풍이 좋은 늦가을이나 설경의 겨울에는 이조차 쉽지 않아 대기줄에서 한참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초가을 여행에는 한적함이란 메리트가 있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바로 곤돌라에 올라앉으니 무려 5분 만에 해발 1520m 설천봉에 닿는다. 이곳에서 덕유산 최고봉 향적봉(1614m)까지는 보통 걸음으로 20분, 매우 완만하다.
오랜만에 찾은 향적봉이 호락호락 귀한 자태를 내어줄 리 없었다. 짙게 깔린 안개와 구름 떼가 길목부터 원천 봉쇄에 나섰다. 단풍이나 설경이 아니라서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마이산, 가야산, 지리산, 계룡산, 무등산 등 명산들의 파노라마를 시야에 담는 대신 정상의 느낌으로 ’신비함‘을 마을에 심기로 했다.
마음을 유하게 썼던 탓일까. 설천봉으로 다시 내려오니 구름이 걷히고 하늘과 산야가 파랑, 초록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다시 향적봉으로 올라갈 생각은 없었다. 설천봉도 발아래를 굽어보기에 충분히 높기 때문이다. 마음을 비우면 여행이 편해진다. 한자는 다르지만 무주의 무는 비움을 뜻하는지도.
주소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만선로 185 어슬렁거리는 가을 산책, ’무주 구천동 어사길‘
그래도 가을인데 한 번은 걸어봐야 했다. 마침 전라북도관광마케팅종합지원센터가 주관하는 ’어슬렁 어슬렁 전북 여행길‘의 ’무주 구천동 어사길‘ 걷기 행사에 슬그머니 참여 신청을 해 놓은 덕분이다.
향적봉에서 나제통문까지 이어지는 28㎞의 구천동계곡 중 어사길은 덕유산국립공원 내 들머리를 기점으로 인월담과 사자담, 신양담, 구천폭포를 거쳐 백련사까지 이어지는 약 5km의 탐방로를 말한다. 목교 2개소를 포함해 환경친화형 데크와 계단, 야자 매트 등을 설치해 자연의 훼손을 최소화하고 안전에 무게를 실어 조성한 길이다. 2021년 안심대에서 백련사 입구까지의 1.2km 구간을 복원해 숲과 계곡으로 이어진 어사길의 정취를 비로소 완성했다.
길은 계곡을 따라 상류로 향하지만 걷기에 전혀 부담이 없는 난이도다. 참가자들의 간격도 인위적이지 않다. 천천히 걷다가 계곡물에 손을 담그고 한참을 앉아 숲 향기에 취해봐도 좋다.
한낮을 뜨겁게 비추던 여름의 잔상은 숲 그늘로 들어서는 순간 사라졌다. 걸음이 계속될수록 새 계절의 기운이 차오른다. 붉은 기를 머금은 성질 급한 나뭇잎도 나지막이 흐르는 계곡물의 윤슬도 반갑다.
전라북도관광마케팅종합지원센터와 블로그를 참고하면 전북 각 지역에서 열리는 이벤트, 축제, 행사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카카오톡, 유튜브에서 ’전라북도여행체험1번지‘를 검색해도 된다.
글·사진 김민수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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