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의 작품에는 동시대 공기가 담기기 마련이다.
경제 위기를 앞서 겪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바라본 불황의 그림자.
그림, 불황을 말하다
Jan Brueghel, , 1640

팬데믹 이후 자산 가치의 상승은 역사상 유례없을 정도였다. 불황의 공포 앞에 각국 정부가 유동성을 지나치게 공급한 탓이다. 주식과 부동산은 물론 코인, 아트, 심지어 리셀 상품까지 노동 임금을 제외한 모든 것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 기간 동안 누군가는 기쁨에 몸부림쳤고, 누군가는 상실감에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규모 재정 확장과 저금리에 기대 성장했던 자산 시장의 거품이 조금씩 걷히는 분위기다.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각국 정부의 금리 인상이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연착륙이 될지 경착륙이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화려한 파티가 끝나면 누군가는 더러운 식기와 잔을 치워야 한다는 것.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래 세계경제는 등락을 반복해왔다. 당장 미국의 대공황, 일본의 버블 경제, 아시아 금융위기, 닷컴 버블, 리먼 브러더스 사태 등 세계경제는 계속 위기를 맞았고, 그 시기 사회 분위기는 어둡게 가라앉았다.
팬데믹의 정점에서 가파르게 올랐던 자산 시장이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게 느껴지는 요즘, 불황의 공포를 앞서 겪은 작가들의 작품을 살펴봤다.

투기 광풍의 시대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경제 버블은 아마도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파동일 것이다. 당시 암스테르담은 새로운 금융 중심지로 떠올랐고, 거대 자금을 확보한 각국의 자본가가 앞다퉈 모여들면서 막대한 유동성이 공급됐다. 넘치는 현금을 활용할 투자 대상을 찾던 대형 자본의 눈에 띈 것이 바로 튤립이었다. 당시만 해도 유럽에 존재하지 않던 튤립은 갑자기 사치품의 자리를 차지한다. 희귀한 종류의 튤립이 (마치 지금의 수입 자동차나 손목시계처럼) 부를 나타내는 척도가 되면서 네덜란드 전역에서 튤립의 구근 가격이 급상승했다. 1630년대 중반 네덜란드에서 튤립 구근의 가격은 개당 약 3000길더.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억 원이 훌쩍 넘을 정도였다. 그런데 약 5년간 치솟던 튤립 가격이 1637년 초에 접어들면서 불과 3개월 만에 시세가 100분의 1로 폭락했다. 투자자들은 본전의 5% 정도만 회수할 수 있었다. 소송과 부도가 연쇄적으로 터지며 네덜란드는 큰 혼란을 겪는다.
튤립 파동의 세태를 적나라하게 풍자한 그림은 플랑드르 화파의 대표적 화가 피터르 브뤼헐의 아들인 얀 브뤼헐(Jan Brueghel)이 1640년에 그린 <튤립 마니아에 대한 풍자(A Satire of Tulip Mania)>다. 튤립 투기 열풍에 빠진 사람들을 원숭이로 묘사한 이 작품은 튤립 파동의 일대기를 그린다. 왼쪽의 원숭이들은 튤립과 돈가방을, 오른쪽의 원숭이들은 쓸모가 없어진 튤립에 소변을 보거나 빚을 갚지 못해 채찍질을 당한다. 저 멀리에는 이 소란에 참가하지 못하고 일상을 영위하던 이들이 원숭이가 아닌 사람으로 그려진다. 이 소동극을 냉소적으로 비웃는 작품이다.
그림, 불황을 말하다
Nicolai Cikovsky, , 1934

하루아침에 신기루가 된 아메리칸드림
1929년 미국 주식시장의 붕괴 이후 1939년까지 약 10년간 계속된 대공황은 근 100년이 지난 지금도 유령처럼 사람들을 괴롭히는 기억이다. 당시 주식시장은 90% 가까이 하락했고, 실업률이 급증했으며, 극심한 디플레이션을 겪었다. 인종차별과 노사 갈등 같은 사회적 이슈가 심화된 것은 당연했다. 도시의 고독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 중 한 명인 미국의 대표적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그가 그린 <뉴욕의 방(Room in New York)>은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2년 작이다. 이 작품의 남녀는 함께 있지만 그 어떤 친밀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남자는 심각한 얼굴로 신문을 보고 있고, 쓸쓸한 여자는 애꿎은 검지손가락으로 피아노 건반을 만진다. 무겁게 내려앉은 시대의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니콜라이 시코브스키(Nicolai Cikovsky)의 1934년 작품 <이스트 강에서(On the East River)>와 블랜시 그램스(Blanche Grambs)의 1935년 작품 <무직(No Work)>은 시대의 분위기를 좀 더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불황으로 인해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가난과 허기에 시달려야 했던 시대상이 아프게 다가온다.
그림, 불황을 말하다

Tetsuya Ishida, <Recalled>, 1998


일본의 버블 경제와 이시다 데쓰야
대공황을 극복한 미국이 전 세계 패권국으로 올라서는 동안 미국의 대항마로 떠오른 나라가 바로 일본이었다. 1960년대 이후 일본은 20년 이상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고, 전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떠오르며 미국을 위협하는 수준이 됐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이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일본의 환율을 폭등시키자 수출에 타격을 입은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아이디어를 낸다. 금리를 인하해 내수 경기를 띄운 것이다. 저금리로 인해 일본의 주식과 부동산은 빠른 속도로 상승했고, 이로 인해 엄청난 버블이 끼기 시작한다. ‘도쿄 부동산을 다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말이 등장하던 시기다. 하지만 이 버블은 결국 1990년에 터지고 만다. 우리가 익히 아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대량 실업이 발생했고, 사회 분위기는 꽁꽁 얼어붙었다. 버블이 꺼진 뒤 암울해진 일본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작가가 이시다 데쓰야(Tetsuya Ishida)다. 이시다 데쓰야는 1973년생으로 사회에 진출하던 시기에 버블 경제의 붕괴를 겪었다.
그의 그림에는 당시 일본의 젊은이들을 덮친 절망과 고립, 단절과 공허의 정서가 선명하고 섬뜩하게 그려져 있다. 당시 일본의 분위기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작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뷔 이후 약 10여 년간 180점의 작품을 남긴 그는 지난 2005년 32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글 이기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