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기업, 환율 리스크에 근심 커졌다
최근 11호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할퀸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가운데, 환율 리스크가 수출입 기업들을 강타하면서 대한민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역대급 태풍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의 금리 인상, 중국의 제로 코로나 봉쇄, 주요국의 원자재 수출 규제 등 국제 정세 불확실성이 증가하면서 원자재 가격과 원화 환율은 2008년 금융위기 시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변동 폭이 확대되고 있다. 2021년 평균 대비 에너지 가격은 올해 7월 기준 큰 폭으로 상승한 반면 금속 가격은 전체적으로 하락했고, 곡물 가격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300원대를 돌파하면서 큰 폭으로 상승해 9월 현재 1400원 선을 넘어섰다.

국제 원자재 가격의 변동요인은 품목별로 다양하지만, 원자재 전반에 대해 영향을 미치고 가격
상승을 주도하는 요인으로는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러·우 전쟁으로 원자재 공급이 감소하면서 가격 상승 유발 △세계 경제 둔화 △중국의 제로 코로나 봉쇄조치에 따른 원자재 수요
감소 등이다.

원화 환율의 변동 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상승
했고, 세계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면서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됨에 따라 원화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 또한 최근 우리나라 국제수지 적자가 확대되면서 원화 가치의 하락을 가속화하고 있다.
[big story]기업, 환율 리스크에 근심 커졌다
국내 기업, 국제유가와 환율 영향 크게 받아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 경기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국제유가와 원·달러 환율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업별로는 미국, 유로존, 중국 등 각국의 교역 정책 변화에 따라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과 전기차를 생산하는 현대자동차 등의 기업의 사업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국제유가의 상승은 기업의 생산비 증가를 초래해 수출입 단가를 상승시킴과 동시에 단가 상승에 따른 수출입 물량 감소로 연결되는 악영향을 끼친다. 반면 원·달러 환율의 상승은 원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달러표시 수출품의 가격 하락에 따른 수출 물량 증가, 상대적 수입 가격의 상승에 따른 수입물량 감소로 연결된다.

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수출 단가(원화)가 국제유가와 상대국의 수출가격, 원·달러 환율 등의 영향을 받는다고 가정해 수출 단가 함수를 추정한 결과, 국제유가와 원·달러 환율 각각의 10% 상승은 수출 단가를 0.04%(국제유가로 0.23% 상승, 원·달러로 0.19% 하락) 상승시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물량으로 따져보면 국내 수출 물량이 상대국의 실질소득, 국내 수출 단가 및 상대국의 수입 가격, 원화의 실질실효환율 등의 영향을 받는다고 가정해 수출 물량 함수를 추정한 결과, 국내 수출 단가 10% 상승 시 수출 물량이 2.5% 감소한다.
금액으로는 국제유가와 원·달러 환율 각각의 10% 상승은 수출 단가 0.04% 상승, 수출 물량 0.01% 감소로 이어져 수출 금액은 0.03% 증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수입에 대한 영향도 진단했다. 국내 수입 단가가 국제유가와 상대국의 수입 가격, 원·달러 환율 등의 영향을 받는다고 가정해 수입 가격 함수를 추정한 결과, 국제유가와 원·달러 환율 각각의 10% 상승은 수입 단가를 4.9%(국제유가로 1.2% 상승, 원·달러로 3.7% 상승) 상승시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조사를 분석하면 결국 국제유가와 환율 상승은 수출 단가보다 수입 단가를 더 많이 상승하게 해 무역 흑자보다 적자에 더 많이 기여함을 알 수 있다.
[big story]기업, 환율 리스크에 근심 커졌다
강달러에 웃고 울고...반도체·조선 '喜' vs 항공·철강 '悲'
달러 강세에 따라 우리나라 주요 기업들도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 판매 대금을 달러로 지급받는 자동차, 반도체, 조선 업계는 표정 관리에 힘쓰고 있다. 달러가 강세일수록 벌어들이는 수입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차가 최근 발표한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매출에서 내수보다 수출 비중이 더 커졌다.
삼성전자, 하이닉스가 세계 시장을 제패하고 있는 대표 수출 업종 반도체도 주로 달러로 거래가 이뤄져 환율 상승에 따른 이익 증가가 기대된다. 다만, 미국이 자국 중심의 반도체와 전기차·배터리 공급망 구축을 선언한 이후 국제 정세에 따라 수출이 일부 차질을 빚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로지역 역시 각 산업에 대한 보조금 규제를 강화하고 있어 정부 지원을 받는 수출 품목은 민관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야할 것으로 보인다.
오랜 침체에 신음하던 조선 업계도 고환율을 반기는 기색이 엿보인다. 국내 조선 업계는 수출 비중이 거의 전부라고 할 정도로 대표적인 수출 효자 산업이다. 해외 선주사들로부터 계약금을 모두 달러로 받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이 올라갈수록 이익이 커지는 구조다.
하지만 항공, 철강 등 업종은 울상이다. 항공유와 항공기 임대료를 달러로 결제해야 하는 항공업계는 코로나19 규제 완화로 인한 여행 특수가 아직까지는 살아나지 않고 있어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최근 태풍 ‘힌남노’로 고로 가동이 멈춤에 따라 막대한 피해를 입은 포스코를 비롯한 철강 업계 역시 원가 부담이 반갑지 않은 눈치다. 철광석 등 원료를 해외에서 수입해 오기 때문이다. 다만 정유화학 업계는 회사 사정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원자재를 달러로 사오기는 하나 국제 유가가 소폭 하락함에 따라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화학 업계 관계자는 “화학 업계의 경우 원자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국제유가가 하락하면 늘 반사이익을 누렸으나 환율 상승으로 효과가 반감되는 것 같다”며 “다만 원유를 가공해 다시 수출을 하는 비중도 상당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환율 상승에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big story]기업, 환율 리스크에 근심 커졌다
"올 하반기도 원화 가치 약세...기업, 생산비용 상승"

“미국의 금리 인상 및 세계 경제성장률 둔화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심리 강화, 무역수지 적자 지속, 외국인의 주식 순매도, 원화 동조화를 보이는 위안화 약세 등 환율 상승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하반기까지 이어질 수 있어 원화 가치 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의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 수석연구원은 하반기 원·달러 환율 전망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조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은 9월 들어 1380원을 상회하는 등 올해 초 대비 크게 올랐다”며 “하반기에도 환율 상승 요인이 상존하고 있어 원화 가치는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최근 원·달러 환율 상승은 미국의 금리 인상 지속과 관련이 깊다”면서도“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지난 6월과 7월에 금리를 각각 0.75%포인트(자이언트 스텝) 인상하며 환율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조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상승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수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다”며 “수출 경쟁국인 일본, 중국의 통화 가치도 원화와 함께 동반 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엔화는 1998년 이후 처음으로 대미 달러 환율이 140엔을 돌파했으며 위안화는 중국 경제 성장 둔화 및 청두 지역 봉쇄 발표 등에 영향을 받아 약세가 지속 중이다.
그는 “수입 측면에서는 환율 상승이 기업의 생산비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우리나라 제조기업은 원자재 조달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결제통화별 수입 비중은 달러가 80%를 상회한다. 따라서 원·달러 환율 상승은 기업의 수입 가격 상승으로 직결된다”고 말했다.

또한 조 연구원은 “최근 러·우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 상승에 따른 공급망 교란이 심화되면서 원자재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는데 환율에 의한 수입 가격 상승까지 겹치게 되며 기업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특히 석유화학 제품 등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산업군에서 생산비용 상승 폭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환율 안정을 위해 주요국과의 통화스와프를 확대하고 환율 상승으로 원자재 수입 부담이 큰 중소기업을 위한 운전자금 지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며 “중소기업의 환율 변동 대응 능력을 제고하기 위해 환변동보험(환율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수출 기업, 특히 중소 수출 기업의 손실은 보상해주고 이익은 환수해 환율 변화로 인한 수익 변동성을 파할 수 있도록 한 보험제도)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정유진 기자 jin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