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이 해외에서의 비즈니스나 결혼, 이민 등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더 이상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글로벌 자산관리. 이를 위해서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글로벌 자산관리, 신탁으로 설계한다면
2022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제2의 <미나리>가 될지 주목받았다.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세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영화를 만든 안소니 심 감독은 재외동포다.

2021년 4월 오스카를 빛낸 영화 <미나리>에서 이민자 가족의 가장이자 아버지 역으로 주연을 맡았던 배우 스티븐 연과 연출을 맡은 정이삭 감독도 재외동포다. 최근 재외동포들의 문화예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재외동포들의 삶이 서로에게 깊은 교감을 나누는 것 같다. 2021년 기준 외교부의 재외동포 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전 세계 재외동포 수는 약 732만 명(2020년 기준)이다. 실로 글로벌 시대라 할 수 있다.

이제 한국도 가족 중 재외동포가 있는 것은 흔한 일이 돼 버렸다. 한국은 세계사에서 유례가 거의 없을 정도로 짧은 시기에 경제적 발전과 사회적 변화를 이룬 나라로 꼽힌다. 이런 변화의 요인 중 재외동포의 활약도 적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처럼 발전을 거듭해 온 한국에도 고령화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숙제가 됐다. 글로벌 고령화 속도가 한국은 발전 속도만큼 빠르다. 재외동포들의 고령화도 빠질 수 없다. 더 늦지 않게 글로벌 자산관리에 심혈을 기울여 재단 및 설계를 해야 하는 이유다.

어느 재외동포의 글로벌 자산관리 설계
60대 후반의 박영석 씨는 미국에서 거주하는 재외동포다. 사업상 한국에서도 꽤 많은 사업을 병행하면서 이리저리 평생을 바쁘게 살았다. 박 씨의 하나밖에 없는 딸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딸은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해서 현재는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을 생각은 없는 상황이다. 박 씨는 부인과 사별한 이후 줄곧 혼자 살았는데, 한국의 지인 소개로 지금은 동반자가 생겼다.

한국에 있을 때 함께 지내고, 종종 미국에도 함께 가곤 한다. 재혼한 아내도 자녀가 있기 때문에 상속 관계는 얽히지 않았으면 하는 서로의 합의가 있다 보니, 법적으로 배우자 등록은 하지 않고 있다.

어느 날 박 씨의 친한 친구가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전 부인도 일찍 세상을 뜬 지라 박 씨에게 친구의 죽음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평생 일궈 온 재산도 많아 걱정도 많다. 박 씨는 미국과 한국에 있는 재산을 이전해줄 것을 생각해 보았다. 글로벌 자산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에 미국에 입국하면 미국에서 유언장을 작성해 상속 설계를 준비할 예정이다. 지금의 아내와는 법률적 배우자가 아니므로 상속인이 아니니 필요한 조치다. 한국에서 함께 거주하는 집의 전세금과 가지고 있는 금전은 지금의 아내에게 이전하고 싶다.

미국에 있는 재산과 한국에서 경영 중인 회사는 딸에게 이전하고 싶다. 박 씨가 사망한다면 아내에게는 주거에 대한 보장을 해줘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함께 연을 이어온 아내에게 주거만큼은 보장해주고 싶은 것이다. 또한 아내는 미국에서 살아온 딸과 연이 닿아 있지는 않아 상속 처리 시 매우 곤란을 겪을 것이 분명하다. 아내가 받을 재산의 규모에 따른 상속세가 부과될 텐데 상속세만큼도 함께 보장해주고 싶어 금전을 함께 주고 싶은 것이다.

박 씨는 한국에서 유언장을 작성해 아내에게 한국 재산 중 일부를 주고 싶다. 아내가 딸과 함께 상속 처리를 하던 중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 그 고민도 해결하고 싶다. 한국의 회사를 관리해주고 있는 회계사에게 이 문제를 논의했다. 회계사 사무실로부터 유언장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면 유언대용신탁을 설정하는 방법에 대해 권유받았다.

박 씨는 이를 위해 거래 중이던 은행에 신탁 설계를 의뢰했다. 신탁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박 씨는 맡겨 놓은 금전에서 박 씨가 치매가 걸린다면 케어를 받을 수 있는 기능도 추가했다. 박 씨가 아프게 되면 마음 놓고 간병을 해줄 수 있게 보전 조치를 한 것이다. 박 씨는 추가로 2차 상속인을 박 씨의 딸로 지정해 만약 박 씨보다 아내가 먼저 사망할 경우도 대비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아내에게도 자녀가 있기 때문에 아내의 자녀보다는 박 씨의 딸에게 이전하게 하고 싶은 것이다.
글로벌 자산관리, 신탁으로 설계한다면
신탁 설계를 위한 과정을 겪으면서 박씨는 이제 편안히 맘을 놓을 수 있었다. 노후를 함께 지내는 아내의 거주권을 보장해주는 동시에 박 씨의 노후 케어까지 보장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유언장보다는 1·2차의 상속인을 지정하는 기능이 있어 생각지 못했던 고민까지 해결해줄 수 있는 점이 무엇보다 좋았다. 또한 박 씨가 아플 때를 대비한 플랜을 해 놓았으니 더욱 맘이 놓이게 됐다. 몇 해 전에 일어났던 롯데그룹의 총수였던 고(故) 신격호 회장의 사례에서 알게 된 ‘후견인’이라는 것도 고민했었는데 이제는 신탁을 통해 재산 관리만큼은 후견인보다 완벽한 설계일 것 같은 플랜을 설정해 마음이 매우 안심됐다.

이번에 미국을 다녀오면 한국의 나머지 재산에 대해서도 신탁 설계를 추가할 예정이다. 신탁 설계를 통해 박 씨의 마음을 전달할 뿐 아니라 딸이 한국 사정에 어두워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탁에서 주도적으로 딸을 위해 상속 신고 및 재산 관리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해주는 유산 정리 기능을 부가해 신탁을 통해 상속 신고 및 이전을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였다. 한국에 오랫동안 체류하기 어려운 딸을 위해 무엇보다 간편히 상속을 처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한국의 글로벌화는 이제 상식이 됐다. 하지만 국내에서 증여와 상속을 통해 받은 재산을 관리하는 문제와 앞으로 상속을 받을 준비는 미진한 편이며 정보에 대해서도 익숙지 않다. 글로벌 자산관리에 있어 상속 설계를 바로 준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또한 해외 거주와 한국 거주를 동시에 진행하는 많은 이중거주자들은 신탁으로 상속 설계를 지원한다면 현명한 솔루션을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글 박현정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