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산업, 테크핀 시대로 가나
금융 산업이 요동을 치고 있다. 기존 금융업 중심의 핀테크가 아닌 핀테크 중심의 금융업 종속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테크핀 시대’의 금융 생태계가 열리고 있다.

금융사들은 항상 새로운 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혁신 금융 서비스를 도입하는 데 막대한 투자를 한다. 특히 2008년 이후, 다양한 기술을 활용한 금융 산업 혁신을 새롭게 주도하는 스타트업이 대거 등장한다. 금융 시장을 새롭게 개편하는 핀테크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종전 금융 인프라가 취약한 국가부터 핀테크가 대거 등장했다는 점이다.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부터 모바일 기반 금융 상품과 서비스가 급속히 확산했다. 인터넷 인프라가 취약한 국가에서 전통 아날로그 환경에서 바로 디지털 모바일 기반으로 생태계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핀테크 3.5로 정의하기도 한다.

핀테크, 어떻게 확산됐나

핀테크는 크게 3가지 시대로 구분된다. 핀테크 1.0시대(1866~1967년)는 전보라는 기술을 활용한 통신이 막 깔리는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전보 통신망이 깔린 1866년부터 바클레이스에 의해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최초로 등장한 시기다.

핀테크 2.0시대(1967~2008년)는 전통 디지털 금융 서비스가 본격 발전하는 시대를 의미하는데, 이 시대 금융 산업은 정보통신기술(ICT)을 가장 많이 구매하는 산업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즉, 금융의 디지털화와 글로벌화가 본격 진행된 시대로 거대 금융 회사가 흐름을 주도했다.

핀테크 3.0시대(2008년~현재)는 디지털 금융 서비스의 대중화가 이루어지는 시대를 뜻한다. 2008년 금융위기는 특히 개인에게 누가 금융 서비스 자원을 독점하고 이를 제공해야 하는가에 대한 관점 전환을 불러일으켰다. 전통 금융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이로 인해 ICT 기술로 무장한 새로운 시장참여자들이 금융 시장에 대거 진입해 ‘핀테크’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계기가 된 시기로 볼 수 있다.

삼정KPMG는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핀테크 발전 단계로 핀테크 시대를 구분 짓기도 했다. 핀테크 1.0시대를 전통 금융 회사의 정보기술(IT) 벤더가 중심이된, 금융 산업 효율성 증대를 핵심으로 하는 시기, 2.0시대는 디지털화, 언번들링(서비스 세분화) 시기, 3.0시대를 리번들링(서비스 융합) 시기로 구분했다.
금융 산업, 테크핀 시대로 가나
핀테크 산업, 어떤 서비스가 있나

그렇다면 핀테크 산업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서비스가 있을까. 여러 분류 체계가 있지만 영국 정부가 주도한 연구인 ‘영국 트레이드 앤 인베스트(UK Trade &Investment)’ 보고서를 살펴보자.

이 보고서는 은행, 보험, 자산관리, 자본시장 등 금융 산업 영역과 각 영역별 상품 분류, 비즈니스 프로세스 분류, 고객 분류 등 3가지 모형을 선보였다.

핀테크 영역을 크게 지급결제, 데이터 및 분석, 금융 소프트웨어 시장, 플랫폼 등 4개 영역으로 정리했다. 지급결제에는 온라인 페이먼트, 데이터 및 분석에는 인슈어런스, 금융 소프트웨어에는 위험관리, 플랫폼에는 온라인투자연계(P2P) 렌딩 등을 주요 서비스로 꼽았다.

또 다른 연구를 진행한 삼정KPMG는 5개 핀테크 영역과 핀테크를 가능하게 해주는 핀테크에이블러 등 6개로 핀테크 영역을 분류하는 보고서를 냈다. 핀테크 영역을 △수신 △자금 이전, 지급결제 △여신, 자금조달 △자산 매매·중개·보관·관리 △위험관리로 분류했다. 점점 핀테크 상품 영역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뱅킹과 프롭테크, 디지털 자산관리 등이 새로운 핀테크 서비스로 각광받고 있다.

금융 산업과 ICT 기술의 결합…테크핀 시대로

전통 핀테크가 금융사 주도로 기존 금융 서비스 효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면 최근 핀테크 산업은 디지털 혁신 주체가 ICT 기업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스마트폰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기업 비즈니스와 소비자 소비 생태계는 혁신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됐다. 이를 가리켜 기존 금융사의 디지털 기술 활용과 구분해 금융업의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스마트폰 QR 결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한 간편송금, 오프라인 지점 방문이 필요 없는 증권계좌 개설, 보험 상품 온라인 비교 구매 등 종전 금융사가 제공하지 못했던 다양한 금융 서비스들이 신흥 핀테크 기업에 의해 제공되기 시작한 것이다.

금융 산업과 ICT 기술 결합은 산업 간 장벽을 허물어뜨렸고, 이에 따라 금융업 중심의 핀테크가 아닌 핀테크 중심의 금융업 종속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를 일컬어 ‘테크핀 시대’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테크핀 시대에는 일반 기업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핀테크 기업 간 거래(B2B)가 출현한다. 마이크로 금융을 포함한 기업 대출,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고 수익을 최적화하도록 도와주는 기관투자 회사, 금융 인프라와 결제 인프라를 지원하는 회사, 중소기업 회계를 돕는 기업이 다수 등장한다.
금융 산업, 테크핀 시대로 가나
빅테크와 금융, 요동치는 금융 생태계

이처럼 핀테크 발달로 전통 금융사가 아닌 다양한 기업이 새로운 금융 시장 생태계에 등장하면서 치열한 격전이 펼쳐지고 있다. 긍정적인 부분만 있는 게 아니다. 핀테크의 발달로 유동성 과잉 문제가 골치칫거리로 떠올랐다.

ICT 발전은 개발도상국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편리하게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 이른바 핀테크의 발달로 포용금융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국제기구와 연구자들에 의해 핀테크의 대표적인 기능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핀테크의 개념이 긍정적이고 혁신적인 ‘개념’으로만 평가받는 결과를 낳았다.

핀테크 기반 디지털 금융기술 발전으로 기업들이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과열 마케팅, 규제 사각지대 활용과 같은 부정적인 면도 상존한다. 특히 대출 서비스 확대는 금융 유동성 과잉 문제를 야기해 금융 시스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증가했다.

이로 인해 중소 금융사 수익성 악화를 초래하기도 했다. 금융 산업은 본질적으로 차입자와 금융사 간 정보 비대칭성 문제로 인해 거래비용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새롭게 등장한 ICT 기반 핀테크사들은 데이터 처리비용 절감과 빅데이터, 모바일 네트워크, 클라우드 등 신기술을 금융업에 적용해 기존 금융사의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2010년 후반 빅테크 플랫폼의 금융 시장 진출이 가속화되면서 금융사들의 전반적인 수익성 악화로 금융 시스템 리스크 문제가 선결과제로 떠올랐다.

전통 금융사의 수익성 악화는 앞서 언급한 유동성 과잉이라는 금융 환경 변화뿐 아니라 고객 영업 기반이 약화된 중소 금융사에는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부상했다. 일각에서는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도 제기되기도 했다. 결국 많은 중소 금융사들은 갈등과 대립 관계보다는 빅테크 플랫폼과의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고 수익을 공유하는 비즈니스 전략을 꺼내든다.

이러한 협력 관계가 결과적으로는 빅테크 플랫폼의 금융업에 대한 지배력을 급속히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고 최근 ‘전자금융거래법’ 개정 등 핀테크 사업 리스크를 보다 강하게 관리하려는 정책도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K-핀테크 육성하려면

경제 전문가들은 이 같은 핀테크 시장에서 국내 금융 산업을 보다 성장시키기 위해서 3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우선, 금산분리 완화다. 금산분리는 한마디로 ‘금융의 대기업 사금고화’를 막겠다는 취지의 법이다. 물론 대기업 부실로 은행 시스템 붕괴와 IMF 외환위기를 겪은 우리로서 그 취지는 십분 공감한다. 하지만 지금은 불투명한 아날로그 시대가 아니라 디지털 시대다. 필요하면 지분 한도와 관계사 거래 제한 등 규제장치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결국 금산분리 여파로 금융이 다른 산업과 융합하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했다.

테크핀 시대에 산업·비즈니스 모델·기술 융합이 핵심이고, 여기엔 금융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실물경제와 금융은 동전의 양면일 뿐만 아니라 금융 데이터 가운데 특히 결제 데이터는 모든 산업, 모든 기업 제품의 소비자 행동을 분석할 수 있는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 플랫폼을 통해 금융과 여타 산업 융합을 촉진할 경우 금융의 양적·질적 성장 잠재력은 물론 여타 산업의 경쟁력도 제고할 수 있다.

둘째, 혁신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대형 금융사·빅테크와 함께 벤처 성격인 핀테크 육성이 필요하다. 올해 들어 세계적인 금리 상승과 금융 긴축으로 벤처투자는 얼어붙었다.

시장 실패 또는 취약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초기 투자 펀드를 만들거나 자금 수요가 많은 예비 유니콘들의 성장 단계별 지원 프로그램을 정부 차원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예컨대 투자와 함께 기술인력 지원을 위한 벤처 스톡옵션이나 병역특례제도 활용 등을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자산 등 신산업 분야에서 투자자 보호와 신산업 육성의 2가지 균형 있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최근 테라, 루나 등 가상화폐 사태로 투자자 보호가 워낙 중요해진 데다 가상자산의 펀더멘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확대되고 있다.

가상자산의 진화 과정에서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이라는 펀더멘털이 있고, 희소 가치가 있는 새로운 디지털 자산이 출현한 데다 유럽(MICA법 제정)에 이어 미국도 조 바이든 대통령의 ‘가상자산 관련 행정명령’ 등 디지털 자산 제도 정비를 서두르고 있다. 우리나라도 미래 먹거리로서의 디지털 자산 신산업에 대한 선제적 육성 정책을 적극 고려해야 할 때다.

글 길재식 전자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