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에 도착한 후 가장 먼저 찾아간 윤선도 유적지 녹우당은 보수공사 중이었다. 첫걸음이 허탕이었기에 다소 김이 빠졌다. 하지만 여정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해남이라 다행이다.
글 사진 김민수 여행작가
[김민수 여행작가]옛이야기 넘쳐나는 땅끝여행 '해남'

유네스코 세계유산 대흥사
녹우당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찾은 곳은 윤선도 유적지에서 10km 떨어진 대흥사다. 대흥사는 해남을 대표하는 사찰이며 양산시 통도사, 영주시 부석사, 안동시 봉정사, 보은군 법주사, 공주시 마곡사, 순천시 선암사를 포함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산지승원’ 7곳 중 하나다.

두륜산의 품 안에 옴폭 안겨 있는 대흥사는 수려한 풍광에 고즈넉한 산사의 정취가 물씬하다. 일찍이 서산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일으켜 이곳에 총본영을 두었고 ‘만 년 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이라 칭송해 의발(불교 수행자의 의복과 식기 등 생활소품)을 보관하라고 유언하기도 했다.

또한 추사 김정희의 평생지기로 알려진 초의대사는 이곳 일지암에 머물며 차를 재배하고 새로운 종자를 개발했다. <동다송>, <다신전> 등 차에 관한 책을 저술한 그의 자취로 인해 다례인들은 대흥사를 차 문화의 성지로 꼽기도 한다.

입구 주차장에서 본원까지는 계곡과 나란히 큰길이 나 있다. 쭉 뻗어난 길을 따라 편안하게 걸어도 좋지만 두륜산 물소리길을 따라 이어진 1.5km의 산책로를 이용하면 동백숲, 편백나무 군락지 등 다채로운 생태를 만나볼 수 있다. 특히 가을 이맘때는 빨간 꽃무릇(석산)이 군락을 이뤄 눈이 더욱 즐겁다.

위치 전남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
[김민수 여행작가]옛이야기 넘쳐나는 땅끝여행 '해남'
미황사는 천일의 휴식 중
해남 군민들은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달마산의 미황사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대흥사가 위엄과 웅장함을 갖추고 있다면 미황사는 한 마디로 아름다운 절이다.

신라 경덕왕 때 창건된 미황사의 대웅전은 보물 947호로 지정돼 있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후 2번의 중창을 거쳤으며 우리가 봐왔던 현재의 모습은 영조 대의 것이라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아뿔싸, 그런 대웅전이 해체복원공사 중이다. 올해 1월 22일 ‘대웅보전, 천일의 휴식이’란 이름으로 고불식을 가졌단다.

미황사 경내의 모습은 흐트러짐이 없이 사찰의 정숙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커다란 가림막 속의 대웅전은 곁눈질로도 들여다볼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봉쇄됐다. 3년 후를 기약해야 하는 헛걸음. 하지만 이것도 여행이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도솔암이 있으니.

위치 전남 해남군 송지면 미황사길 164 미황사
[김민수 여행작가]옛이야기 넘쳐나는 땅끝여행 '해남'
해남 1경 도솔암
여정이 땅 끝으로 치달아 갈 즈음이면 험난한 암봉이 마치 공룡의 지느러미처럼 하얗게 솟아있는 산줄기를 목격하게 된다. 바로 달마산이다. 높이는 489m에 지나지 않지만 마치 섬 속에 있는 산처럼 우뚝하다.

달마고도는 미황사를 기점으로 달마산 능선을 따라 조성된 17.74km의 둘레길이며 4개로 나누어진 구간을 따라 꾸준히 걷고 나면 원점으로 회귀하게 된다.

도솔암은 달마산 정상부, 아찔한 바위틈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암자다. 미황사에서 달마고도 4코스를 거슬러 오르거나, 송촌마을을 들머리로 하는 달마산 종주 코스를 선택해도 다녀올 수 있다. 그리고 임도 끝점에 있는 도솔암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700m만 더 걸으면 별다른 수고 없이 그 신비한 경취에 합류하게 된다.

혹자는 도솔암을 해남 1경이라 한다. 스치는 바람조차 컬컬한 암릉 꼭대기의 한 점 암자가 하늘과 땅을 아우르는 담대한 공간과 어우러져 압도적 절경을 이뤄내기 때문이다. 3.3㎡ 남짓한 암자 도솔암 앞마당에 서면 땅끝마을을 포함한 해남의 남부 전역은 물론 햇살에 반짝이는 다도해의 찬란한 바다까지 두루 내려다보인다.

위치 전남 해남군 송지면 마봉리 산87-1

▶ 달마고도

1코스: 출가의 길(2.71km), 미황사~큰바람재

2코스: 수행의 길(4.73km), 큰바람재~노지랑골

3코스: 고행의 길(5.63km), 노지랑골~물고리재

4코스: 해탈의 길(5.03km), 몰고리재~인길~미황사
[김민수 여행작가]옛이야기 넘쳐나는 땅끝여행 '해남'
지나칠 수 없는 막걸리 방앗간 해창주조장
목이 컬컬해졌다. 막걸리 맛이 좋아 해남을 오갈 때 거르지 않고 방문하는 곳이 해창주조장(전라도 지역에서는 양조장 대신 주조장이란 명칭을 많이 쓴다)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선정한 대한민국 찾아가는 양조장 50곳 중 하나다. 해창막걸리의 시작은 1961년이지만 양조장 건물은 1927년 일본인에 의해 지어진 적산가옥이다. 주조장 건너편에 있는 맞배지붕의 창고 또한 당시의 것이다.

연못이 있는 오래된 정원에는 수령 600년의 배롱나무를 필두로 50여 종의 꽃과 나무들이 식재돼 있다. 크지는 않지만 계절마다 색을 달리하는 해창주조장의 정원은 막걸리를 사기 전 한 바퀴를 돌아보게 되는 필수 코스다.

해창막걸리는 쌀(햅쌀50%, 찹쌀 50%)과 누룩에 물을 섞어 만든다. 감미료를 첨가하지 않아 걸쭉하면서 담백하고 막걸리 본연의 깊은 풍미가 살아 있다. 택배로 주문해서 마실 수 있는 해창막걸리는 9도, 12도, 15도, 18도 4종류다.

위치 전남 해남군 화산면 해창길 1
[김민수 여행작가]옛이야기 넘쳐나는 땅끝여행 '해남'
국토 최남단 여행의 아이콘 땅끝전망대
북위 34도 17분에 위치한 땅끝마을은 말 그대로 도서지방을 제외한 한반도 최남단 지역이다. 토말 혹은 갈두라 부르기도 한다. 해발 156m 갈두산 사자봉 정상에 세워진 땅끝전망대는 땅끝탑과 더불어 해안과 바다를 넘나드는 국토 최남단 여행의 아이콘과 같은 곳이다.

전망대는 지상 9층 38m 높이의 건축물로 외관은 횃불을 상징한다. 9층 전망대에서는 갈두항으로 여객선이 드나드는 모습은 물론 어룡도, 흑일도, 백일도 등 해남의 섬들과 넙도, 노화도, 보길도 등 완도의 섬들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청명한 날씨에는 제주도까지 시야에 들어온단다.

송지면 엄남리 해안에서 땅끝마을을 거쳐 사구미해변까지 이어지는 길은 해안과 맞닿아 있다. 해남을 방문했다면 일부러라도 드라이빙을 해야 할 ‘한국의 아름다운 길’ 가운데 하나다. 운이 좋다면 바닷길이 길게 드러난 대죽리 죽도를 만날 수도 있다.

위치 전남 해남군 송지면 땅끝마을길 100

해남은 여행자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다채로운 인프라를 갖춘 고장이다. 가을에는 이순신장군의 업적을 기념하는 명량대첩 축제, 농, 수산, 축산물 등 해남산 식재료를 기반으로 하는 미남축제도 열린다. 고천암 생태공원에서 가창오리의 근무도 봐야 하고 마산면 드넓은 벌판에 펼쳐진 해바라기 꽃들도 만나야 한다. 비록 녹우당과 미황사 대웅전은 공사 중이지만 여전히 해남은 멋찌구리한 여행지다.



글·사진 김민수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