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42번가>의 뮤지컬 배우 오소연 인터뷰

뮤지컬 배우 오소연이 돌아온다. 오는 11월 그가 뜨겁게 연마했고, 사랑했으며, 무엇보다 가장 잘하는 역할.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히로인 ‘페기 소여’로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무대 위에서 종횡무진 극에 생생한 숨을 불어넣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소연 "울면서 탭댄스 배웠는데 이젠 사명감 느껴요"
화려한 조명과 현란한 탭댄스 소리가 무대 위를 수놓는다. 극이 절정으로 치닫을 때 무대와 혼연일체가 된 배우의 몸짓과 숨소리, 표정이 굵은 땀방울에 흘러내린다. 2년 전 관람한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속 배우 오소연의 모습은 그야말로 실사판 ‘페기 소여’ 그 자체였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는 뮤지컬의 본고장 브로드웨이를 배경으로 무명의 코러스 걸 페기 소여가 스타가 되는 과정을 일사불란한 탭댄스 군무와 함께 담은 작품이다. 1980년 뉴욕 윈터가든 극장에서 초연한 뒤 브로드웨이에서만 5000회 이상 공연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6년 최초 정식 라이선스 뮤지컬로 시작해 배우들의 화려한 무대와 탭댄스로 뮤지컬의 대중화에 앞장서며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바 있다.

오소연은 2017년 시즌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벌써 네 시즌 연속으로 페기 역할을 맡게 됐다. 그는 특유의 청아한 목소리와 완벽에 가까운 탭댄스, 풋풋한 감성 연기로 매 시즌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혹자는 그의 인생캐(인생 최고의 캐릭터)로 페기를 꼽기도 한다. 오소연이 이토록 매 시즌 절정의 기량으로 페기를 연기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 절실함이 컸다.

2005년 뮤지컬 <찰리 브라운>으로 데뷔한 그는 <오즈의 마법사>, <러브 앤 블러드>, <스프링 어웨이크닝>, <슈사인 보이>, <스트릿 라이프>, <넥스트 투 노멀> 등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혹독한 무명의 시간도 견뎌야 했다고. 그러던 중 2017년 만나게 된 <브로드웨이 42번가>는 그에게 다시 없을 도전이자 기회였다. 그 누구보다 ‘페기 소여’에 진심이었던 그는 스스로 ‘이러다간 정말 다치겠다’ 싶을 정도로 탭댄스를 연마하고 또 연마했다. 결과는 그의 편이었다. 과연 이번 시즌 페기는 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우선 다시 이 작품에 참여하는 소감이 궁금해요.
“새 시즌이 시작할 때마다 1순위로 불러주시니까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실 제가 처음 이 역할을 할 때 너무 힘들게 배웠거든요. 정말 울면서 탭댄스를 배웠어요. 한 번만 하기엔 아까운 배역이었죠. 그리고 이제는 뭐랄까 조금은 사명감도 있어요. 저를 늘 믿고 맡겨주시는 만큼 정말 잘해야겠다는 마음입니다.”

이번 시즌 달라진 점이 있나요.
“라이선스 작품이기도 하고, 워낙 스테디셀러라 변화를 주려고 해도 사실 한계가 있어요. 다만, 전 시즌과 달라진 점이라면 연출이 바뀌었다는 거예요. 새로운 연출자께서 각 캐릭터들의 고유한 특성들을 조금 더 극대화시키고 그 신(scene) 안에서의 목표들을 더 명확하게 보이게끔 노력을 많이 하세요. 배우들 역시 연출의 의도에 맞게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브로드웨이 42번가> 하면 역시 격정적인 탭댄스가 인상적이죠. 연습량이 엄청날 것 같습니다. 어떤가요.
“솔직히 이제는 어느 정도 탭댄스가 익숙해져서 맨 처음 준비했을 때만큼 연습량이 많진 않아요. 그때는 정말 아침부터 밤까지 ‘이렇게 하다가는 진짜 다치겠다’ 싶을 정도의 마음이 들 때까지 했거든요. 사실 지금은 그렇게 하면 위험해요. 나이도 있고요.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있어요. 네 시즌이나 했으면 자다 일어나서도 바로 할 것 같은데 이렇게 시즌 사이 텀을 보내고 다시 연습을 하면 발이 굳어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발의 감각을 찾기 위해 몸을 풀 때 기본기에 더 충실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각 신마다 에너지의 값을 알기 때문에 좀 더 노련하고, 정확하게 연습하는 편입니다.”
오소연 "울면서 탭댄스 배웠는데 이젠 사명감 느껴요"
언제까지 이 페기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 적 있으세요.
“네, 그럼요. 전 늘 매 시즌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하고 있어요. 동시에 제겐 워낙 뜻 깊은 작품이다 보니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극 중 다른 배역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실제로 전수경 선배님, 최정원 선배님들도 이 작품의 역사를 함께 쓰고 계시잖아요. 어떤 롤이 됐든 제겐 감동적인 일이 될 것 같습니다.”

1996년 <레미제라블>의 아역 코제트를 시작으로 26년 넘게 무대에 오르고 있는데, 롱런의 비결이 있다면요.
“사실 좀 더 어렸을 때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어요. 밝고 에너지가 많은 편인데 그런 제 열정과 에너지들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동시에 제가 가진 외모나 목소리와 잘 맞는 배역들을 잘 매칭해주시고, 캐스팅해주셔서 덕을 본 것 같아요. 무엇보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수록 좀 거창한 말 같지만 ‘내려놓는’ 지혜도 이해하게 됐고요. 예전에는 뭐든 제 뜻대로 안 되면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났거든요. 스스로 용납이 안 됐어요. 그런데 이제는 알아요. 모든 건 다 나름의 이유가 있고, 때론 내 의지대로만 될 수 없다는 것을요. 그런 부분에서 좀 유연해졌어요. 내 열정과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길도 있고, 충분히 돌아갈 수도 있더라고요. ‘안 돼도 괜찮아’라고 다독일 줄 알게 됐어요.”

페기 소여 외에도 개성이 강한 캐릭터들도 많이 연기해 오셨어요. 캐릭터 연구는 어떻게 하시나요.
“일단은 전적으로 대본을 파고들어요. 그리고 제 머릿속으로 그 인물의 내면을 살아 있는 것처럼 상상해요. 가령, 페기 소여는 제가 너무 잘 아는 감정이에요. 저 역시 공연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공감이 많이 가는 캐릭터거든요. 반면, 뮤지컬 <테레즈 라캥> 속 테레즈의 경우엔 다르죠. 제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삶을 산 인물이거든요. 테레즈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지극히 상상에 맡겨야 하지만, 제 강점 중 하나가 사람의 감성을 잘 이해하는 편이거든요. 테레즈가 겪은 상실감이나 두려움, 모든 것을 포기하는 느낌도 제 인생의 한 구석에서 찾아볼 수 있더라고요. 남들에게 얘기하지 못했던 나만의 내면 속 이야기들 말이죠. 그런 부분들을 꺼내서 제가 맡은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는 편이랍니다.”

평소 목 관리나 체력 관리도 궁금해요.
“작품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이번 같은 작품을 만나면 체력 관리가 자연스럽게 돼요. 반면, 활동량이 적은 시기에는 따로 운동을 하기도 하죠. 얼마 전까지는 풋살에 심취해 있었어요. 거의 6개월 넘게 ‘이렇게 재밌는 운동이 있나’ 싶을 정도로 매진했었답니다. 제가 소셜한 운동을 정말 좋아하더라고요.(웃음) 목 관리는 특별히 하는 편은 아니지만 반드시 8시간 이상 수면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잠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꿈이 있다면요.
“저는 배우를 오래 하고 싶어요. 화려하지 않아도 계속 꾸준하게 연기하고 싶어요. 윤여정 선배님, 남문희 선배님처럼 연륜이 있는 나이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배우가 분명히 필요하잖아요. 저도 그분들처럼 계속 무대에 남아 연기하고 싶습니다.”

글 김수정 기자 | 사진 서범세 기자 | 장소 협조 카페 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