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정규 미즈호은행 전무 인터뷰
환율이 1400원대를 돌파한 이후에도 좀처럼 하락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지만 현재로선 시장 상황이 개선될 여지도 멀어 보인다.JP모건을 시작으로 SC제일은행 등에서 25년간 딜러로 활동해 온 변정규 미즈호은행 전무는 작금의 금융 시장이 과거에 보지 못했던 모습을 띠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스템 리스크로 가지 않으려면 환율과 증권, 채권, 파생상품 등 자본시장의 안정화는 필수라고 강조한다.
변 전무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지금 시장의 모습은 많이 다르지만 위험 요인들이 상당히 많다”며 “신용상황이 악화된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특히 지금 같은 시기엔 체질이 나쁜 기업이나 국가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국가 신용도의 위험 수준을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크게 상승했다.
한국은 과거에 20bp(0.2%)였지만, 최근엔 60bp(0.6%)까지 올라온 상태다. CDS가 올라갈수록 국가 부도율이 높아지는데 변 전무는 미국을 제외한 많은 국가들의 CDS 비율이 과거보다 올라간 상태라고 진단했다. 우리나라의 CDS프리미엄이 상승한 배경으로는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 때문이라고 꼽았다.
그는 “환율이 일시적으로 1500원 선을 돌파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 같은 고환율 흐름이 내년 초까지는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처럼 고환율이 유지되는 배경으로 향후 신용 사태 발생 등을 우려해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 등으로 달러화에 대한 선호도가 여전히 높아진 점을 이유로 지목했다.
다만 고환율이 고착화될 가능성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시중에 풀렸던 유동성이 급속도로 회수되는 과정에서 금융 시장이 빠르게 경색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우려를 제기했다.
변 전무는 “지금으로선 정부의 재정정책이나 나라별 공조마저 어려워 상당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며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외환보유액을 아끼고 환율 방어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가계부채 부담이 커지고 있지만 환율 안정화를 위해 정부의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변 전무는 주식을 비롯해 채권, 부동산, 파생상품 등 자산의 가치가 전방위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것은 경기 사이클에서 자산 가치 하락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요즘 같은 시기엔 자본의 조달비용이 높기 때문에 어떤 자산에 투자하더라도 손해보기 쉽다”며 “현금 비중을 높이고 자산 가격이 낮아졌을 때 저가 매수 할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변 전무와의 일문일답.
환율 시장이 안정화되려면 시간이 필요해보이는데, 고환율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나.
“미국의 테이퍼링 발표 이후 달러 가치는 다른 통화들보다 비싸지는 달러발 통화 가치 조정을 거쳤다. 달러의 내재적 가치는 올랐지만 세계의 모든 국가의 통화가 미국 달러화 대비 가치가 떨어졌다. 고환율은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달러 강세가 내년 초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가 있나.
“우선 유로화나 엔화 약세로 인해 달러 인덱스는 초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유로화가 달러인덱스 가중치의 57% 이상을 차지하는데 유로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유로화는 역사적으로 1.3달러 선에서 거래됐는데 현재는 1달러 미만으로 달러보다 단위당 가치가 더 싸졌다. 엔화도 테이퍼링 이후 달러 대비 가장 크게 하락한 통화 중 하나다. 그리고 신용 사태 우려나 북한의 미사일 위협, 중국 위안화 동조화 등으로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달러화 선호도가 커질 것으로 본다.
다만 내년에는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에 안착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미국산 상품과 서비스 경쟁력이 떨어지고 미국의 국가부채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립금리에 대한 9월 점도표를 보면 2025년 이후 미국의 장기 금리는 2~3% 정도로 보고 있다. 다만 평균 환율이 과거보다는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제2의 금융위기가 발생할 것으로 보는가.
“통화정책 정상화 과정에서 개인 파산, 기업 부도 등 신용 사태가 시작될 수 있다. 제2의 금융위기가 생길 가능성은 낮지만 달러 초강세로 미국의 물가 상승이 타국으로 빠르게 전이되고 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의 에너지 위기 가능성, 중국 경제의 경기 둔화 등이 가시화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외환보유액이 충분하고, 단기 부채 비율이 낮아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진단하나.
“달러에 대한 선호가 높긴 하지만 원화에 대한 투매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환율 안정을 위해 정부가 강한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 환율이 불안정해지면 한국의 CDS 프리미엄은 상승하게 된다. 이는 한국 기업들의 조달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계부채 문제 등으로 인한 우려가 있지만 금리를 올리는 이유는 물가 상승과 환율 불안정을 먼저 안정화시키는 것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또한 만일 사태에 대비해 충분한 외환보유액 확보가 중요하다.”
최근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 자산 시장이 녹록지 않은데 투자 시점은 언제로 보고 있나.
“경기 사이클상 지금은 자산의 가치가 하락기에 접어들었고, 현재는 급격한 금리 인상과 유동성 긴축 등으로 투자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 자본의 조달비용이 너무 높기 때문에 투자 대비 수익이 클 수 없다. 지금 같은 시기에는 현금 비중을 높이고 자산 가격이 낮아졌을 때 저가 매수 기회를 엿봐야 한다. 주식 투자 시기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정상화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다시 투자할 것을 조언한다.”
채권 시장에서의 위험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안전자산 선호로 회사채 투자 분위기가 냉각됐다. 최근 AA-급 회사채 신용 스프레드가 1% 이상으로 상승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이는 신용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는 반증이다. 또한 회사채 스프레드가 연말까지 1.3% 이상으로 벌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신용 상황이 악화된 기업들의 자금조달은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
파생상품에 대한 리스크에 대해선 어떻게 진단하나.
“장내보다는 장외파생상품인 파생결합증권(DLS)에 대한 우려가 있다. 특히 금리파생상품의 경우 최근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 금리가 크게 변동했고 기간금리와 국가 간 금리가 역전된 경우가 있기 때문에 금리파생상품의 경우 투자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이미경 기자 esit917@hankyung.com | 사진 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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