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에 발생한 대형 변수들은 유독 ‘인플레이션’과 ‘성장률 훼손’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는 점이 종전과 다르다. 세계적인 예측기관들이 2021년 말과 2022년 9월에 내놓은 전망치를 비교해보면 대형 변수들이 세계 경제성장률을 3%포인트 이상 떨어뜨리고 세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5%포인트 이상 끌어올리는 것으로 나온다.
세계 경제를 보는 시각도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2021년 말까지 ‘과연 세계 경기가 침체될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논쟁을 벌인 바 있었는데 2022년 4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슬로플레이션’ 우려를 처음으로 제기했다. 그 후 두 달도 채 지나지 않는 시점에서 세계은행(WB)은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 경제는 바이든 정부가 집권 전반기도 채 끝나기 전에 크게 흔들리고 있다. 미국 학계와 월가를 중심으로 종전과 다른 새로운 위기 징후군이 나타나고 있어 2024년 대통령 선거에서 연임을 고사하고 집권 후반기에는 좀비 국면에 빠질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중간선거 이후 많이 거론되고 있는 바이든 정부의 7대 위기 징후군은 마냐냐 위기(manana crisis), 착한 정책의 역설(angel policy paradox), 삶은 개구리 징후군(boiled frog syndrome), 무각통증(disregard), 신넛 크래커(neo nut cracker), 더 큰 바보 이론(greater fool theory), 핀볼 위기(pinball crisis) 등이다.
7대 위기 징후군에 빠진 미국 경제의 고민은 2022년 8월 유럽중앙은행(ECB) 포럼에 참가했던 제롬 파월 미 Fed 의장의 입을 통해 노출됐다. 코로나19 이후 통화정책 여건은 종전의 이론과 대응 방식이 통용되지 않는 뉴노멀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그 고충을 호소했다. 파월 의장의 발언 중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불균형 이론’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대목이다.
불균형 이론의 요지는 이렇다. 특정 사건을 계기로 균형점에서 이탈됐을 때 종전 이론에서는 시장 조절 기능에 의해 이 점에 수렴된다고 봤다. 하지만 이 이론에서는 시장 조절 기능이 무너져 균형점에 도달되지 않은 상황에 오랫동안 머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상황이 닥치면 2023년에 미국 경제는 의외로 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시지노믹스’ 강화에 탈중국 등 반발 거세
2023년에는 중국 경제도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제20차 공산당 대회를 통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영수’ 지위에 등극했다. 공산당 주도의 왕정체제에서 영수체제로 시진핑 독주의 절대군주제에 해당한다. 미국 언론들이 영수를 단순히 정상이라는 의미의 ‘summit’보다 위대한 통치자를 뜻하는 ‘great emperor’라고 표기하는 데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시진핑 독주의 영수체제에서는 공산당 목표부터 수정된다. 대내 목표인 샤오캉을 ‘공동부유’로, 대외 목표는 일국일제를 조기에 완성하고 중국 중심의 질서인 ‘팍스 시니카’ 야망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종전과 다른 점은 목표 시한을 정하지 않아 시진핑의 종신집권 야망이 숨겨져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우선 과제인 공동부유를 실천하기 위한 사전정지 작업으로 고성장기의 기득권층과 반시진핑 세력의 숙청 작업은 이미 시작됐다. 2021년 3월 양회 대회 이후 추진해 온 부정부패 척결, 테크래시·코인 등을 통한 불법자금 거래 금지, 부동산 거품 제거, 미국 유학 금지 등은 앞으로 더 강화해 추진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 운영 계획도 180도로 바뀐다. 고도성장기의 한 축이었던 ‘시장경제’는 ‘계획경제’로, 또 다른 축이었던 ‘개방경제’는 ‘폐쇄경제’로 환원된다. 신경제 운영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리커창, 류허, 이강 등의 미국 유학파에서 리창, 허리평을 쌍두마차로 하는 국내파들로 대거 교체된다. 한마디로 ‘리커노믹스’에서 ‘시지노믹스’로 대체해 경제 분야까지 장악한다는 의도다.
대외적으로는 보유외화대출을 통한 1단계 일대일로 계획이 자금 수여국의 부채 함정과 디폴트로 부작용이 컸던 만큼 오히려 위안화 결제망 확대와 디지털 위안화의 기축통화 계획에 참여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수정해 추진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 부문의 패권이 미국과의 경쟁에서 열쇠를 쥐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시진핑 영수체제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측의 반응은 의외로 빠르다.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인 뱅크런과 마찬가지로 ‘일단 중국을 탈출하고 보자’는 ‘차이나런’ 현상이 심상치 않다. 1978년 개방을 추진한 이후 ‘세계의 공장’이라 불릴 만큼 기업과 자금, 사람을 끌어들였던 중국의 투자 매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위기감에서다.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예측기관들은 차이나런 현상이 오래갈 것으로 보고 내년을 포함해 앞으로 상당 기간 중국의 성장률을 크게 낮춰 잡고 있다. 글로벌화가 급진전되기 시작했던 1990년 이후 성장률 개념의 기준인 국내총생산(GDP)은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이 생산한 부가가치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혼돈의 유럽, EU 붕괴 ‘경고음’
2023년은 유럽 통합의 맹주 역할을 담당해 왔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떠난 지 햇수로 3년째를 맞는다. 포스트 메르켈 시대 첫해였던 2022년 유럽은 유난히 대형 사건이 많이 발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세계인의 관심이 온통 쏠려 있는 사이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데 이어 영국발 금융위기 우려까지 제기됐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10년 전 유럽 재정위기 당시 ‘PIGS(포르투칼,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를 중심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던 회원국의 유로랜드 탈퇴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인플레 문제로 인한 유럽 국민들의 경제 고통을 해결하지 못하면 유럽연합(EU), 유로랜드 모두 회원국의 탈퇴 움직임은 의외로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혔던 회원국 내 분리독립운동도 고개를 들 가능성이 높다. 첫 주자는 영국의 스코틀랜드다. 스페인의 카탈루냐와 바스크, 북부 이탈리아, 네덜란드의 플랑드르 등도 언제든지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회원국 탈퇴가 잇따르고 분리독립운동마저 일어난다면 유럽 통합은 붕괴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탈퇴와 분리독립은 쉽지 않은 문제다. 1995년 캐나다 퀘벡과 2014년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도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반대가 더 많이 나왔다. 미국도 실리콘밸리가 있는 캘리포니아의 분리 요구가 나온 지 오래됐으나 연방정부 차원에서 검토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브렉시트를 이례적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국 탈퇴’라는 난관에 봉착하고 있는 EU는 △현 체제 유지 △붕괴 △강화 △질서 회복 등 4가지 시나리오 놓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재정위기, 브렉시트 등으로 노출된 문제를 회원국이 정치적 명분과 경제적 이익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 110년 이상 걸쳐 추진해 온 ‘하나의 유럽’ 구상이 물 건너가기 때문이다.
잔존 회원국은 유럽 통합의 차선책, 이를테면 ‘F-EU(France+EU)’ 방안을 빠르게 추진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F-EU’는 프랑스를 EU에 잔존시키면서 난민, 테러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독자적인 해결권을 갖는 방식이다. 이때 프랑스는 EU의 구속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국의 현안을 풀어 갈 수 있어 ‘탈퇴(exit)’보다 더 현실적인 방안이다. 일본, 엔화 가치 추락…위기 벗어날까
2022년을 마무리하면서 엔화 가치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추락하고 있다. 외형상 이유는 미국과 일본 간 디커플링 통화정책에 따라 양국 간 금리 차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금리 차와 환차익을 노리는 엔캐리 자금이 미국으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엔화를 매도하고 달러화를 매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가 내수 부문의 활력을 되찾아 디플레이션 국면에서 탈피하기란 쉽지 않다. 내수 부진이 고용과 임금 불안정성 증대, 인구 고령화 진전 등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요인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재정 여건도 크게 악화돼 1990년대처럼 정부가 민간수요를 적극적으로 대체해 촉진하는 데도 임계점을 넘은 지 오래됐다.
내수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일본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 여건 이상으로 강세를 보이는 엔화 가치가 약세로 돌아서야 가능하다. 2012년 12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리로 재집권하자마자 엔저를 통해 성장을 지향하는 구로다 하루히코 현 일본은행 총재를 전격적으로 영입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아베노믹스를 추진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의도대로 효과를 거두기보다 국제 금융 시장 참가자인 각국 간에 갈등만 조장시켜 왔다는 것이 지배적인 평가다. 아베의 엔저 정책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선진국임에도 인위적인 엔저 유도를 통한 경기 부양은 경쟁국에 고스란히 피해를 주는 ‘근린궁핍화 정책’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일본 내부에서도 여론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가장 타격을 받는 곳은 엔저로 채산성이 지속적으로 악화돼 왔던 내수 업체다. 일본 국민도 수입물가 급등으로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경제 고통이 높아져 왔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전체 에너지원에서 수입 에너지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가장 반겨야 할 수출 업체의 불만이 누그러지지 않는 점도 주목된다. 장기간 지속된 엔고에 대응하기 위해 수출 업체가 해외로 진출해 이제는 ‘기업 내 무역’이 보편화됐다. 수출결제통화도 한때 80%를 웃돌았던 달러 비중이 40% 밑으로 떨어져 엔저가 되더라도 채산성 개선보다 통상 환경만 악화될 수 있다. 아베노믹스가 멈추면 곧바로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는 시각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내수부터 확보돼야 한다. 하지만 엔저 정책은 내수 산업을 더 어렵게 한다. 이 상황에서 수출마저 안 되면 일본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국가채무 누적으로 재정지출에 한계가 있다면 일본 국민에게 ‘저축이 미덕’이 아니라 ‘소비가 미덕’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부(負)의 저축 준조세’ 등을 통해 내수진작책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그것만이 일본 경제가 살 길이다.
신흥국 금융위기설 ‘솔솔’…디폴트냐 재건이냐
2023년 신흥국 경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 차별화가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인도네시아, 브라질, 인도 등과 같은 부존 자원국과 인구가 많은 국가는 선진국의 대체투자 국가로 부상할 것으로 보이지만 나머지 국가들은 외환위기에 몰리면서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취약 신흥국들은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늘어난 달러 부채 만기가 돌아오는 시기에 Fed의 금리 인상과 맞물리면서 원리금 상환 부담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 차와 환차익을 겨냥해 이동되는 캐리자금도 네거티브 트레이드 여건이 형성돼 달러계 자금을 중심으로 외자 이탈이 가세되고 있는 것도 취약 신흥국을 더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신흥국은 2025년까지 매년 4000억 달러 이상 달러 부채 만기가 돌아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3월 회의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미 Fed는 2023년에는 5% 이상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신흥국의 달러 부채 원리금 상환 부담이 급증하면서 외화 사정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IMF의 모리스 골드스타인 지표와 글로벌 투자은행(IB)이 활용하는 외환상환계수로 신흥국 금융위기 가능성을 점검해보면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라오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높게 나온다. 필리핀, 터키, 파키스탄, 콜롬비아, 미얀마, 이란 등은 그다음 위험국이다.
2023년 대내외 금융 시장에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차기 금융위기가 어느 국가에서 발생할 것인가’는 이런 각도에서 따져보면 어느 정도 감(感)을 잡을 수 있다. 2023년에 신흥국 경제는 부채 원리금 상환 부담을 얼마나 잘 극복하느냐에 따라 각 국가별로 ‘디폴트’와 ‘재건’의 운명이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글 한상춘 한경미디어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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