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제 개정 이슈가 올해 세법개정안 논의에서 법인세 인하만큼이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여야 간 상당폭 이견을 보이고 있는 상속세제 개정안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짚어봤다.
[big story]상속세제 개정 '충돌'...징벌적 과세냐 부자 감세냐
해마다 세법개정안을 두고 여야는 물론이고, 사회 곳곳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올해는 정부가 상속세제에 대한 전면 개편을 추진하며,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여당은 그간 우리나라 상속세제가 지나치게 ‘징벌적 과세’에 가까웠다는 주장인 반면, 야당 측 상당수는 ‘부자 감세’라며 맞불을 놓는 형국이다.

정부는 올해 상속세제 개편과 관련해 ‘원활한 가업승계’에 방점을 찍었다. 특히, 가업상속공제 및 사전 가업승계 증여세 과세특례 제도 합리화, 법인세 과세표준 단순화 및 최고세율 인하, 해외 자회사 배당금 익금불산입 도입, 투자·상생협력 촉진 과세특례 제도 폐지,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세제 변경 등 원활한 가업승계를 지원하고 기업의 적극적인 경제 활동을 유인하기 위한 정책들이 발표됐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가업승계 관련 애로를 대폭 완화해 경쟁력 있는 기업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투자 확대와 기술의 세대 간 이전을 촉진하는 데도 방향성을 뒀다”고 설명했다.

우선, 정부는 가업상속공제 적용 대상을 연간 매출 4000억 원 미만 기업에서 1조 원 미만 기업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공제 한도도 기존 500억 원에서 1000억 원으로 2배로 늘리고, 상속 이후 고용, 자산 유지 요건도 완화해 가업을 승계하고자 하는 경영인들의 부담을 한층 덜어주려는 것이 이번 개정안의 골자다.

가업상속공제란 피상속인이 생전에 10년 이상 영위한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을 상속인에게 물려주는 경우 가업 상속재산가액의 100%(최대 500억 원 한도)를 상속세 과세가액에서 공제해 가업승계에 따른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다. 당초 이 제도는 중소·중견기업의 지속적인 성장과 안정적인 고용 유지를 위한 지원책으로 마련됐다.

실제 중소·중견기업이 가업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상속·증여세를 애로사항으로 뽑는 경우가 높고, 가업 상속과 관련된 여러 연구에서도 상속·증여세의 완화를 주장해 왔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업력 10년 이상 중소기업 600곳을 대상으로 시행한 ‘2022 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조사’에서 78.4%가 가족경영을 지속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가업승계를 하지 않는 경우 경영 변화에 대해 절반이 넘는 기업이 폐업, 매각을 하거나 고려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승계 과정에서 예상되는 어려움으로 기업은 조세 부담 우려 76.3%, 가업승계 정부 정책 부족 28.5%, 후계자 경영 교육 부재 26.4%를 꼽았다. 우리나라의 상속·증여세율은 최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인 26%의 2배에 달한다. 여기에 최대주주 등으로부터 주식을 상속받으면 할증평가가 이뤄져 사실상 60%의 최고세율이 적용돼 가업 상속의 주된 난제로 꼽혀 왔다.

정부가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손보려는 것 역시 중소·중견기업 오너들의 노령화로 2·3세 경영인들이 상속세를 내고 기업을 물려받으려 해도 현금이 없어 기업을 매각하거나 주식을 현물로 납부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업계의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이번 개정안에서 공제 한도도 10년 이상은 200억 원에서 400억 원으로, 20년 이상은 300억 원에서 600억 원으로, 30년 이상은 500억 원에서 1000억 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7년이던 사후관리 기간을 5년으로 줄이고, 기존엔 표준산업분류상 중분류 내에서만 허용했던 업종 변경을 제조업, 건설업, 도소매업 등 대분류까지 가능하도록 기준을 완화했다. 고용 유지 조건도 ‘5년 통산 정규직 근로자 수 90% 이상’ 또는 ‘총급여액 90% 이상’만 맞추면 되도록 단순화하고, 20% 이상의 가업 자산을 팔지 못하게 했던 자산 유지 조건도 40%로 확대했다.

자녀가 부모로부터 가업승계를 목적으로 주식 등을 증여받았을 때 주어지던 과세특례 제도도 상속세에 맞춰 기준을 완화했다. 증여재산가액 100억 원이던 특례 적용 한도를 1000억 원으로, 기본공제를 5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각각 늘리고 20% 세율 적용 과세표준 구간도 30억 원에서 60억 원으로 높였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가업승계를 받은 상속인과 수증자가 양도·상속·증여하는 시점까지 상증세 납부를 미뤄주는 납부유예 제도도 신설했다.

[big story]상속세제 개정 '충돌'...징벌적 과세냐 부자 감세냐

최대주주 할증 완화·유산취득세 도입 등 박차
최대주주 보유 주식을 상속·증여할 때 세율을 가산하는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20%)’도 원칙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 다만 자산 규모 10조 원 이상인 대기업을 의미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대상으로 한 할증평가는 유지된다. 이는 경영권 프리미엄에 대한 추가 과세 시 상속세 세율이 최대 60%가 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할증과세 제도는 1993년 도입했다. 최대주주 보유 주식엔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기 때문에 세금도 더 물려야 한다는 것이 당시 정부의 설명이다. 할증과세는 기업인의 상속세 부담 중 큰 요인으로 꼽혀 왔다. 따라서 2019년 26년 만에 한 차례 개정안이 통과되긴 했지만 여전히 재계에서는 ‘징벌적 과세’라며 할증과세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부의 대물림’을 돕는 셈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해 왔다. 경제개혁연대는 2019년 ‘상속세와 관련한 오해’ 보고서에서 “상속재산에 대한 과세는 부와 권력이 소수의 가문에게 집중되는 걸 막기 위한 목적”이라며 “상속세율 인하에 따른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진행되는 상속세율 인하 논의는 매우 무책임하다”고 반발한 바 있다.

보고서는 또 “높은 상속세율 때문에 기업의 상속을 포기한다는 주장 또한 사실과 다르다. 기업의 주식을 매각한 후 상속하면 오히려 더 높은 세금을 부담하기 때문”이라며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상속세율이 높아 주식을 매각한 사례로 든 기업들은 실제로는 다른 이유로 주식을 매각한 경우가 더 많았다”고 강조하는 등 반기를 들었다.

따라서 이번 개정안에 대한 여야의 움직임에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무엇보다 가업상속공제 대상 기업을 연 매출액 1조 원까지로 늘리는 내용의 정부안을 두고 여야가 현격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어서 정기국회 통과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올해 개정안에 포함된 사안은 아니지만 이번 상속세제 관련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유산취득세 도입’ 여부다. 유산취득세는 전체 유산이 아니라 상속인의 유산 취득분에만 매기는 세금이다. 전체 유산에 세금을 매기는 현행 상속세는 최고 50%(최대주주 할증과세 적용 시 60%)의 누진세율이 적용돼 세금이 과중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지난 2020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사망하면서 남긴 전체 상속재산 18조9633억 원에 대해 절반이 넘는 12조 원 이상의 상속세가 부과되기도 했다. 기재부는 내년엔 상속세제의 기본틀 자체를 바꾸는 개편에 나설 계획이다.

상속세를 상속 총액에 일괄 과세하는 유산세 방식에서 개인별 상속 취득액에 세금을 매기는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한다. 유산취득세 방식은 상속인이 많을수록 낮은 과세표준과 세율을 적용받아 상속세 총합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지만, 이것 또한 ‘부자 감세’의 또 다른 방편이라는 의견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새해 상속세제 개편을 둔 공방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