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슬픔을 잘 위로해주려면
[한경 머니 기고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해외 학회 기간 중 바닷가의 ‘명상 맛집’으로 유명한 곳을 우연히 지나가게 됐다. 4개의 기둥이 거친 바다를 잠재우는 상징을 표현한 예술 작품이라고 설명돼 있었다. 파도를 잠재우는 상징물 근처가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명상 맛집’이라니, 그 자체가 힐링을 주었다. 우리 인생도 그리고 마음도 파도만큼이나 때론 거칠게 출렁거린다.

물끄러미 4개의 기둥과 바다를 보고 있는데 명상을 하던 사람 둘이 꼭 포옹을 한다. 연인인지 친구인지 알 수 없지만 최근 힐링에 중요한 키워드인 ‘연민(compassion)’이 느껴졌다. 필자는 연민을 추앙이라 표현한다. 개인적으론 추앙이란 단어가 더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힘이 크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저는 나쁜 엄마인가요?”란 질문을 받는 경우가 늘어났다. 우선 “당신은 훌륭한 엄마다”라고 답변한다. 자녀의 정상적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이상 성격의 부모도 극히 일부 존재하겠지만 이런 경우는 대체로 자기인식이 결여돼 스스로의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나쁜 엄마인지 묻는 엄마는 자녀 양육에 한계를 느끼고 그 원인을 자신 안에서 찾으려는 자기인식 기능이 작동하는 상황이다. 좋은 엄마인 것이다.

학부모들에게 “자녀를 키울 때 부모가 얻는 최고의 유익은 끝없는 인내의 단련과 자기 성숙”이라고 우스개처럼 이야기하면 대체로 공감하며 크게 웃는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실제로 만만치 않다. 여러 미디어 채널을 통해 제공되고 있는 부모와 자녀 관계나 자녀의 심리 등 다양한 양육 관련 정보가 인기 있는 이유일 것이다.

좋은 정보를 잘 활용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지나치게 그 정보를 자기 판단의 기준으로 강하게 묶어 버리면 ‘나는 나쁜 엄마다’란 생각이 들기 쉽다. 일을 잘하는 직장인도 자신의 경직된 기준 탓에 일을 못한다고 주관적으로 자꾸 생각하면 실제 객관적 업무 능력이 떨어질 수 있는 것처럼 스스로 ‘나쁜 엄마’라고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등학교 자녀가 지난해에 성적이 떨어져 너무 우울해져 걱정입니다”라며 아이 마음 하나 제대로 위로해주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단 엄마의 고민을 접했다. “2가지 경우밖에 없다”고 대화를 시작했는데, “성적이 떨어졌는데 우울한 자녀와 아무렇지도 않은 자녀 중 어느 자녀를 더 걱정해야 하느냐”고 이어서 물으니 조금 당황해하다가 웃음 지었다.

자녀 양육에서의 ‘성장’과 비즈니스 영역에서의 ‘전환(transformation)’의 심리 전개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마음이 평온한 성장과 전환을 원하지만 실제는 영 그렇지가 않다. 불안, 걱정, 우울, 좌절 등의 심리적 압박 지점(pressure zone)을 반드시 경험한다. 성장하고 전환하려 하기에 압박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 압박의 시기에 적극적인 정서적 지원이 함께해주면 전환 성공률이 올라간다. 정서적 지원의 중요한 요소가 그 고통을 공감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열린 질문과 능동적 경청과 같은 정신 치료적 접근이 리더십의 소통 기술 중 하나로 적용되고 있다.

앞의 사례에 적용해보면, 자녀가 성적이 떨어져 우울한 것을 내가 나쁜 엄마라서 잘 케어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자신을 탓하지 말자. 성장과 전환을 위한 심리적 압박의 시기임을 인지하고 “어떤 부분을 엄마가 도와주면 좋을까”와 같이 열린 질문을 하고, “공부 자체가 싫은 건 아닌데 시험을 또 망칠까 하는 걱정에 집중이 잘 안 된다”와 같은 이야기를 능동적으로 경청하자. 이를 통해 공감하고 지지해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나쁜 엄마도 아닐 뿐만 아니라 나쁜 엄마라고 자신을 탓하는 것은 자녀와의 소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뜻한 포옹, 추앙이 필요하다.
타인의 슬픔을 잘 위로해주려면
잘 위로하기 위해서는 공감 에티켓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사별은 정신적 통증을 수반한다. 특히나 갑작스러운 자녀와의 사별만큼 큰 고통이 존재할까 싶다. 자녀를 갑작스럽게 떠나보내고 한 달 동안 자지도 먹지도 못했다는 유가족의 호소를 접한 적이 있다. 몸도 상하게 된다. 우울증과 트라우마로 이어질 수 있다.

“떠난 가족도 네가 이렇게 밥도 안 먹고 힘들어하는 것을 원치 않을 거야. 어서 잊고 산 사람이라도 힘내서 살아야지”라는 내용의 위로는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사별의 고통을 겪는 초기에는 하지 않을 것을 권한다.

우선 충분히 유가족의 슬픔을 공감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타인의 큰 슬픔을 공감한다는 것은 자신도 2차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것이다. 2차 트라우마는 연민 피로(compassion fatigue)로 이어지고 피로로 나도 모르게 얼굴과 표현에 짜증이 묻어날 수 있다. 고통받는 가족의 마음 하나 제대로 공감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다는 고민을 듣는데 그렇지 않다. 상대방의 통증을 경험하는 것은 내 통증 중추에도 실제로 고통을 유발한다. 유가족의 슬픔에 비할 수 없지만 지금은 국민 상당수가 2차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함께 힐링 여행을 가는 것은 어떠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마음은 훌륭하나 너무 빠르게 위로의 속도를 내지 말고 충분히 애도 기간을 갖은 후에 삶에 대한 에너지가 회복되고 나면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타인을 위로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나 자신도 2차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것이다. 가족들과 지인이 요일이나 시간을 정해 돌아가면서 위로하는 것이 질적으로 더 좋은 공감과 위안을 줄 수 있다.

서로를 잘 위로하기 위해서는 타인과 나를 위한 공감 에티켓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누군가를 깊이 공감하고 있다면 내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간병을 할 때 가족들과 나눠서 해야 하는 이유다. 내 마음에 따뜻한 에너지가 충분해야 따뜻한 간병이 가능하다. 효심은 간절해도 공감 에너지가 고갈되면 나도 모르게 소통의 내용이 불편해질 수 있다. 반대로 누군가 나를 공감해주면 상대방의 에너지가 고갈되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처럼 마음의 에너지가 고갈되기 쉬운 환경에선 모두가 서로 나를 위로해 달라며 요구하다가 가족이나 구성원 전체가 번아웃에 빠질 수도 있다. 내가 상대방의 귀한 공감 에너지를 받았다면 다음에 내가 넉넉할 때 나누어주겠다는, 또는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겠다는, 소중한 공감을 서로 주고받는 공감 에티켓이 꼭 필요하다. 서로 주고받으면 고갈되지 않고 내가 속한 그룹의 공감 에너지가 차오르게 된다. 12월 ‘공감 에티켓’을 서로에게 선물해보자.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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