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B와 결혼해 딸 둘을 낳고 잘살고 있었는데, B가 바람이 나서 내연녀 C와 동거를 하다가 암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B가 사망하기 전에 유언장을 작성했는데, B가 다니던 직장(K공사)에서 직원이 사망하면 나오는 상조금을 자기 누나인 D에게 주기로 하면서 대신 내연녀 C를 보살펴 달라는 취지의 유언을 남겼다.
B가 사망하면서 A는 K공사에 약 2억7000만 원 상당의 상조금 지급을 요구했는데, K공사는 B의 유언장을 근거로 상조금 지급을 거절했다. 그래서 A와 딸들은 K공사를 상대로 상조금을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는데, 1심과 2심에서는 모두 패소해 버렸다. 다만 1심과 2심의 이유는 조금 달랐다.
먼저 1심은 “상조금과 같은 사망 위로금은 원칙적으로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 근로자의 유족을 수령권자로 하는 일종의 제3자를 위한 계약 관계로 규율함이 상당하다고 할 것”이라며 “타인을 위한 생명보험의 경우에 준해 근로자의 사망과 동시에 유족은 수익의 의사 표시 없이도 그 자신의 고유한 권리로서 사용자에 대해 상조금을 취득하지만, 근로자는 자신의 유언 등으로 그 수령권자를 지정·변경할 권리를 가진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심은 기본적으로 상조금을 생명보험금과 유사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하면서도 “K공사의 상조회칙에는 회원이 그 수급권자를 다른 사람으로 지정·변경하는 것을 제한하는 규정을 두지 않고 있고, 상조금은 직장 상조회 회원 각자가 납부한 회비를 기금으로 마련된다는 점과 이 같은 회비를 부담하는 회원이 본인의 사망에 따른 상조금 수급권자를 따로 지정하는 것이 상조회의 구성 및 운영 목적이나 상조금 제도의 취지에 반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상조회 회원들은 각자 자신의 사망에 따른 상조금 수급권자를 그의 선순위 상속인 이외의 다른 사람으로 지정·변경할 수 있도록 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상조금이 유족의 고유재산인지 아니면 상속재산인지 그리고 피상속인이 유언으로 상조금의 수령권자를 변경할 수 있는지 여부다. 만약 상조금을 유족의 고유재산이라고 보면 피상속인이 상조금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유언으로 수급권자를 변경할 수도 없게 된다. 반면에 이를 상속재산으로 보면 그것은 피상속인의 재산이기 때문에 피상속인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 따라서 유언으로 수급권자를 변경하는 것도 가능하게 된다.
필자는 ‘경조사를 서로 돕는다’는 상조금의 사전적 의미나, 이를 위해 상조금을 전달한 회원들의 의사를 고려할 때, 상조금은 유족에게 전하는 일종의 조의금과 같은 성격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상조금은 상속재산이 아닌 유족의 고유재산으로 보아야 하므로 유언으로 처분할 수 없고 유족인 1순위 상속인들이 지급받는 것이 타당하다고 대법원을 설득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해 9월 16일 대법원에서 선고를 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한다”고 판결했다. 즉, 1심과 2심을 뒤집고 A에게 승소 판결을 안겨주었다. 판결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상조금은 유족의 정신적 고통을 위로하고 유족의 생활 안정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유족에게 지급되는 사망위로금의 성격을 갖는다. (생략) 상조금의 수급권자는 법정상속인이고 상조금은 상속재산이 아니라 상속인의 고유재산에 해당한다. (생략) 회원(망인)이 일방적으로 회원 본인 사망 시 지급되는 상조금의 수급권자를 지정 또는 변경할 수 없다.”
이 내용은 필자가 상고이유서에서 주장했던 내용 그대로였다. 필자는 이날 직접 대법원에 가서 선고 결과를 들었고, 즉시 의뢰인인 A에게 전화로 소식을 전했다. A는 목이 매여 말을 잇지 못하며 연신 감사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제야 조금은 편안하게 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
이 사건은 상조금의 법적 성격에 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판결이다. 이렇게 내 손으로 새로운 상속 판례를 하나 만들었다는 데 법률가로서 큰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의미는, 이 판결을 통해 의뢰인 가족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줄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사실 A와 그녀의 딸들은 이 상조금을 받아서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에는 크게 연연해하지 않았다. 그저 아내와 자식을 버린 남편이 가는 날까지 처자식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것에 대해 평생을 괴로워하며 지내지 않게 되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은 작은 정의를 실현함으로써 한 가정에 희망의 불씨를 되살렸다.
글 김상훈 법무법인 트리니티 대표변호사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