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 명심해야 할 것은 ‘비정상의 정상화’가 아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이때 리더는 과연 어떻게 소통해야 할 것인가. 3R(Rule·Role·Respect)로 정리해 살펴보자.
[special]리더십, '패' 말고 '판' 바꿔라...‘3R’ 주목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 리더십은? 결론부터 말하면 ‘패 말고 판을 바꾸라’다. 기존 리더십을 버전 업그레이드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달라진 판에 따라 룰(rule)과 롤(role)을 다시 정해야 한다. 코로나19는 이미 정해진 방향의 변화의 방아쇠를 당겼을 뿐이다. 이미 지각변동은 일어나고 있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뷰카(VUCA : volatility, uncertainty, complexity, ambiguity의 앞글자를 따온 용어로, 변동적이고, 불확실하고, 복잡하고, 모호한 사회 변동을 말한다.
)시대의 도래, 기존 성장 전략의 한계, 주52시간 근무제로 인한 한계 등이 그것이다.

MZ(밀레니얼+Z) 세대의 비중이 커지면서 조직 구성원의 속성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이들은 일과 조직을 바라보는 가치관에서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르다. 조용한 대이직(the great resignation) 바람이 불면서 인재 리텐션에 대한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코로나이후 일상의 회복 이야기가 나오지만 우리가 ‘돌아온’ 혹은 ‘돌아갈’ 일상은 이전의 일상과 다르다. 현상은 비슷해 보여도 본질은 그때 그 일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리더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➊ 룰(rule)을 바꾸자
“아웃풋(output)보다 아웃컴(outcome) 을 중시하라”
“재택근무를 하니 눈에 보이지 않아 열심히 일하는지 아닌지 관리할 수 없어 답답했어요.” 코로나19 이후 관리자들의 한결같은 고충이었다. 반면에 MZ세대 직장인은 “사무실에서 일한다고 몰입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사무실에서 몰입하는 직원은 재택에서도 일관되게 몰입했다. 관리자와 구성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일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옥석을 확연히 구별할 수 있게 됐다는 것.

“재택근무, 원격회의를 하니 우리 조직에서 불필요한 사람과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확실히 구분이 됐어요. 코로나19보다 무서운 게 옥석 구별을 할 수 있다는 거죠.” 포스트 코로나 시대 리더십에서 부각된 것은 일하는 방식의 변화다.

모 회사 교육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코로나19 이후 조직문화 재정립을 주제로 한 교육이었다. MZ세대 직원들은 “회사에서 ‘일’로만 평가하고 출퇴근 시간 등 근태 문제 등 부수적 일은 간섭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을 공식 건의했다. 온라인교육에 참여했던 선배 리더들은 후배들의 발언을 듣고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일 못하는 직원은 참아도, 근태 나쁜 직원은 못 참아. 근태는 회사생활의 기본이야. 근태를 보면 정신 상태를 알 수 있어”라던 자신들 때와 전혀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어서다.

과거에는 이른바 엉덩이력, 성실함이 ‘일잘러’의 바로미터였다. 그다음 덕목이 스마트함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스마트함에 더해질 덕목은 유용함이다. ‘열심히’에서 강조된 미덕은 성실과 근면이다. 스마트함은 경제적 효용과 효율이 강조된다. 포스트 코로나에선 합목적성, 유용함이다. 즉, 아웃풋보다 아웃컴이 중요하다.

아웃풋은 작업의 산물이지만 아웃컴은 비즈니스 밸류가 포함돼 목적에 합당한 결과물이다. 요컨대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일하는 방식의 체감은 평가 기준의 룰을 바꿔야 발동이 걸린다.

이는 요즘 각 기업에서 유행하는 보고 프로세스 단순화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보고할 때, 원페이지(1P)를 넘어 사진 1장 보고, 심지어 자료 없는 구두 보고가 대세다. 직원들은 이런 프로세스 단순화로 잡무가 줄었다고 환영할까. 현장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히려 울상이다. 목적과 기준, 체크포인트에 대한 공유 없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무조건 줄이는 것, 없애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왜 줄이느냐다. 구성원들의 잡무 시간을 줄이고자 하는 목적에 맞는 프로세스 합의가 먼저다. 파워포인트 일제 금지만이 능사는 아니다.
일하는 방식을 ‘아웃풋’ 중심에서 ‘아웃컴’으로 전환해야 한다. 인풋의 시대에서 아웃풋의 시대, 이제 아웃컴의 시대로 돌입했다. 아웃풋의 시대는 산출량으로 일의 성과를 측정했지만, 이젠 일의 합목적성으로 측정한다. 목표보다 목적이 중요하다. 목표는 수치로 측정하지만 목적은 가치의 의미가 더해진다. 리더가 “요즘 친구들은 태도에서 절실함이 없어”, “사진 한 장 보고인데도 못하다니, 쯧쯧”라고 할 게 아니라 일의 목적과 평가 기준(rule)에 대해 끊임없이 스스로도 묻고, 구성원과도 공유해야 한다. 룰을 지키라, 따르라보다 ‘우리가 지켜야 할 룰은 무엇인가’란 질문이 중요하다.

➋ 리더의 롤(role)을 재정의
“회식·회의보다 원온원 면담을 하라”
인재 이탈 방지는 모든 리더들에게 발등의 불이다. 경쟁사 이직 문제만은 아니다. 글로벌 기업에서만 시도되던 잡포스팅(직무 전환) 제도가 조금씩 시도되면서 사내 부서 이동으로 인한 희비도 엇갈린다. 다른 회사로 이동하는 것도 안타깝지만, 같은 회사에서 옆 부서로 이동해 매일 아침저녁 부딪히는 것은 더 뼈아프고 배신감을 느끼게 한다. 어떻게 ‘내 곁에 있어 달라’고 할 것인가. 읍소도, 우격다짐도 통하지 않는다.

예전처럼 ‘우리가 남이가’ 하며 형님 아우의 혈연, 패밀리로 묶을 수도 없다. 회식을 하면 연대감이 강해지긴커녕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 산업화 시대의 정(情), 고성장 시대의 총알, 즉 인센티브나 승진으로 유인할 수도 없다. 많은 리더들이 권력도, 금력도 없는 무장해제 상태에서 어떻게 팀원들을 이끌고, 묶을지 대책이 안 선다고 고민한다.

이제 좋은 리더의 역할은 그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의리 있는 형님 리더, 일잘러 리더는 과거형 리더다. 지금 필요한 리더는 성장시켜주는 리더다. 회식도, 회의도 비효율적이고 애사심, 충성심도 없는 이들에게 무대책인 상황에서 현실적 가능책은 구성원 성장에 초점을 둔 원온원(1대1) 면담이다. 이때 리더들의 걱정은 2가지다. 하나는 일하느라 면담할 시간이 내기 힘들다, 다른 하나는 리더는 하고 싶어 해도 팀원들이 ‘면담 당한다’며 도살장에 끌려오는 것처럼 싫어해 원온원 면담을 하기 힘들다는 현실적 고충이다.

첫째, 시간 문제부터 살펴보자. 리더는 다른 사람을 통해 성과를 내는 사람이다. 즉, 리더의 일이란 곧 인재 성장-관리다. 무엇이 리더에게 정말 중요한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팀원이 많다면 모두 본인이 다 관리하려고 하는 것은 무리다. 직속 매니저들에게 먼저 실시해 조직 전체에 폭포 효과를 내 퍼지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리더의 일에 팀원 성장은 우선순위다. 리더십 소통은 강도보다 빈도다.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자.

둘째, 정서 문제다. 구성원이 소통에 거부감을 표한다면 리더의 미숙한 면담 스킬과 마인드 문제다. 예전 개그 프로에 ‘우리 가족은 대화가 필요해’란 코너가 있었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지금 불편하다면 상호 대화와 신뢰가 형성되지 않아서다. 피하거나 미루기보다 상호 유익하다고 느낄 분위기와 스킬을 익히자. 기존 면담은 ‘일을 잘했다, 못했다’의 평가식이다. 팀원 입장에서는 편치 않을 수밖에 없다. 원온원은 그와 초점과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한다. 성과보다 성장에 초점을 맞추자.

상사 편한 시기에 불쑥, 내키는 대로 하지 말고, 정기적이고 지속적으로 합의하에 정해진 때에 상호합의하에서 하자. 모 팀장은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질문카드를 준비했다. 아이스 브레이킹(ice-breaking)을 위한 가벼운 질문들, 가령 ‘당신이 최근 깔깔 웃은 것은 언제입니까’ 등의 내용이 담긴 도구들을 활용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니 한결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고 경험담을 들려줬다.

꼭 질문카드가 특별해서라기보다, 리더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자 ‘이렇게까지 준비하고 용을 쓰며 노력하는구나’ 하고 배려심을 알아주는 것 같더란 전언이었다. 나태주 시인의 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는 리더십 소통에도 적용된다. 자세히 보아야 파악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이제 수박 겉핥기의 접촉만으론 부족하다. 개인의 재능과 강점과 꿈에 접속해 조직 목표와 정렬시켜야 한다.

➌ 구성원을 리스펙트(respect) 해야
“조직 구성원들을 어른으로 존중하라”
요즘 리더들을 보면 극단으로 나뉜다. “요즘 애들은~” 혹은 애칭이랍시고 “아그들”이라고 칭하는 계몽군주형이 있다. 반대로 묵언수행 중이라고 하는 수도사형이 있다. 꼰대라는 말을 들을까 봐 두려워서다. 팀원을 ‘애들’이라고 보는 꼰대마니아와 ‘몸에서 사리가 나올 정도로’ 지적할 말을 참고 있다는 꼰대 포비아 양극단은 다 문제다.

상사, 부하란 위계적 단어는 조직에서 금기가 된 지 오래인데 아이, 애란 표현은 시대착오적이다. 후배를 넘어 이젠 ‘친구’란 호칭을 쓰는 세상이다. 일각에선 ‘공감을 빙자한 인기 몰이’만 하면 소는 누가 키우냐는 걱정도 많다. 무조건 참는 것만도, 뱉는 것만도 능사가 아니다. 지적질이 아니라 피드백을 해야 한다. 구성원 존중은 입에 발린 말, 눈 감고 아웅이 아니라 직면에서 드러난다.

쓴소리 소통일수록 ‘어른으로서 존중하라’는 태도가 중요하다. 조직에서 ‘공감’, ‘존중’ 하면 성과와 별개, 심지어 저해요소로 착각한다. 성과를 내기 위해서라도 공감과 존중이 필수다. 생각해보라. 아그들과 일해서 성과가 날 수 있겠는가.

지적질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지적하거나 심지어 그것조차 없이 결과를 탓한다. 반면에 피드백은 무엇을 보완하면 좋은지 지적하고 확인하고 합의하고 지원한다. 내용은 같을지 모르지만 영향력은 천지차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지적질은 “이렇게 하면 ~되겠어” 심지어 “아니 직장생활 몇 년인데 이렇게~”다. 피드백은 “~을 고치면 보다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혹은 상대의 원하는 목표에 결부해 “당신의 ~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걱정된다”로 플러스, 마이너스 효과와 연결시켜 말한다. 모든 소통은 자신은 의도로, 상대는 결과로 판단하려는 데서 차이가 발생한다. 가령 “~가 노력하는 것은 잘 알지만” 하고 의도나 헌신을 인정해준 후 지적한다. 자신의 의도가 인정될 때 진정으로 수평적 조직문화는 조성된다.

어른 소통에서 하나 더 강조할 것이 있다. 피드백 수용도를 높이려면 리더도 상향 피드백 등 자신에 대한 지적 사항을 열린 자세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너를 계도하고, 너는 나에게 한 치의 지적도 할 수 없다’는 논리야말로 불평등이고 위계적이다. 조직 성장을 위해 구성원에게 필요한 것은 심리적 안전감 보장이고, 리더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신의 취약성 개방과 피드백 수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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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회 CEO리더십 연구소장·코칭경영원 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