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열풍
2022년은 국내 위스키업계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해일 것이다. 그만큼 대단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10월까지 위스키 수입액은 2억1804만 달러로, 전년 동기 1억3475만 달러와 비교해 61.8%나 상승했다. 싱글 몰트위스키와 블렌디드 위스키 모두 상승한 수치라 더욱 의미가 크다. 심지어 발베니와 맥캘란 등 일부 위스키는 품귀 현상을 빚기도 했다. 시장을 이끈 건 소위 MZ세대였다. 젊은 세대의 프리미엄 제품 선호와 나만을 위한 가치 소비 성향에 힘입어 고급술의 대표 격인 위스키가 큰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 실제 GS25 편의점의 분석에 따르면, 2030세대의 위스키 구매는 전년 대비 71%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쯤 되자 2022년에는 다양한 위스키가 한국에 첫선을 보였다. 대표적 위스키 수입업체인 페르노리카코리아에서는 아이리시 위스키 ‘레드브레스트’와 버번위스키 ‘레빗홀 케이브힐’을 새롭게 론칭했으며, 발렌타인과 로얄살루트 라인업에 각각 23년과 30년을 추가했다. 나아가 유명 와인 수입사인 금양인터내셔날은 10년 만에 다시 위스키 수입을 재개했으며 유통을 전문으로 해오던 가자주류에서도 ‘글랜카담’과 ‘토민타울’이라는 싱글 몰트위스키를 직수입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 국제주류품평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기원 유니콘 에디션’과 하이트진로가 이탈리아 카를로 펠레그리노 와이너리와 공동 개발한 ‘진로 레드 와인’.
K-주류의 다양화
2022년에는 한국산 술의 종류가 한층 늘었다. 젊은 세대와 소규모 양조장들이 분주히 움직인 결과다. 우선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와 김창수 위스키 증류소에서 각각 위스키를 출시함으로써 대한민국도 위스키 종주국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세계적 평가도 뒤따랐다. 특히 지난 4월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에서 선보인 ‘기원 유니콘 에디션’이 세계 3대 주류 품평회 중 하나인 ‘샌프란시스코 국제주류품평회(SFWSC)’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이목을 끌었다. 런던과 암스테르담이 아닌 경기도 양평과 남양주에서 각각 생산하는 진(Gin), 부자진과 정원진에 대한 평가도 높다. 이뿐 아니라 맥주와 소주, 전통주 등에도 다양한 시도를 접목해 국산 주류가 한층 다채로워진 한 해이기도 했다. 2023년에는 대기업의 선전이 기대된다. 우선 하이트진로는 와인 생산에 뛰어들었다. 지난 11월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가족 경영 와이너리이자 최대 와이너리로 꼽히는 카를로 펠레그리노와 함께 프리미엄급 와인을 공동 개발한 것. 파트너 선정부터 포도 품종, 맛, 디자인 등 모든 과정에 직접 참여해 한국인의 입맛에 가장 잘 맞는 와인을 개발했다는 설명이다. 신세계 L&B와 롯데칠성음료는 위스키 개발에 뛰어들 예정으로, 각각 제주도에 증류소를 건립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월에 새롭게 출시한 ‘원소주 클래식’. 강원도 원주 지역 쌀인 토토미를 한국식품연구원이 개발한 효모 균주로 발효해 상압에서 증류했다.
원소주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올해 주류 시장의 최고 히트 상품은 다름 아닌 원소주일 것이다. 등장하는 곳마다 화제를 모았으니, 그럴 만하다. 출시부터 그랬다. 원소주는 지난 2월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며 공식 출시했는데, 백화점 오픈 전부터 이 술을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1인당 구입할 수 있는 양을 제한했을 정도였다. 이후 서울 가로수길과 부산에서 열린 팝업 스토어 행사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비단 오프라인뿐이 아니었다. 지난 11월 원소주가 카카오톡 선물하기에 입점하자마자 단 하루 만에 초도 물량이 모두 소진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오죽하면 어른들의 포켓몬빵이라는 별칭까지 얻었을까. 원소주 흥행의 중심에는 젊은 소비자가 있다. 가수 박재범이 만든 술이라는 셀럽 효과와 인증샷 열풍, 젊은 층의 프리미엄 소비 트렌드가 수요를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괄목할 만한 사실은 원소주가 쏘아 올린 공이 전체 증류식 소주 시장을 들썩이게 했다는 것. 올해 증류식 소주 시장 규모는 약 700억 원으로, 지난해 450억 원대에서 크게 증가했다. 무알코올 맥주 시장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 ‘하이네켄 0.0’, 과당 대신 에리트리톨, 효소 처리스테비아 등 감미료를 사용해 산뜻한 맛을 구현한 ‘처음처럼 새로’, 기존 맥주와 같은 방식에서 알코올만 따로 추출해 만든 ‘에페스 오리지날’.
‘건강(?)’한 음주 생활
팬데믹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일까. 맥주 시장에서는 무알코올이 화제였다. 특히 무알코올 맥주의 경우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판매량이 417%나 증가했을 정도다. ‘혼술’과 ‘홈술’을 즐기는 인구가 늘었을 뿐 아니라 1인 가구가 증가한 점이 무알코올 맥주 시장이 성장할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또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여성의 주류 선호 성향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맥주 브랜드 하이네켄이 2030세대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무알코올 맥주를 마시는 이유로는 ‘술을 마실 수 없는 상황에서 대안으로 선택’이 52.4%로 가장 많았고, ‘취하고 싶지 않아서’라는 답변이 그 뒤를 이었다. 반면 소주 시장에서는 무설탕 제품이 등장해 시선을 끌었다. 지난해 무학이 과당 제로를 강조하며 내놓은 소주 ‘좋은데이’가 출시 1년 만에 1억6000만 병이 팔리며 시장을 선도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건 롯데칠성음료. 지난 9월 선보인 ‘처음처럼 새로’는 출시 두 달 만에 1200만 병 이상 판매하며 흥행몰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글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 | 사진 박도현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