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만에 '골디락스 장세' 올까
1990년대 후반 신경제 신화를 낳았던 빌 클린턴 정부 시절 이후 25년 만에 미국 경제를 두고 공식적으로 ‘골디락스’라는 용어가 나왔다. ‘숲속을 가던 배고픈 소녀가 곰이 차려 놓은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는 영국의 전래동화에서 유래된 골디락스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이보다 좋아질 수 없는 이상적인 국면을 말한다.

지난해 말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까지 나왔던 미국 경제가 계묘년 새해 들어 갑작스럽게 골디락스 용어가 나온 것은 매월 초에 발표되는 고용지표 때문이다. 경기 침체 우려는 지난해 12월 실업률이 3.5%로 낮게 나와 완화됐다. 실업률 3.5∼3.7%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추정하는 완전고용 수준이다.

인플레이션 우려도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20년 5월 이후 처음으로 전월비 감소세를 보임에 따라 완화되고 있다.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서비스 분야의 임금과 물가 간 악순환(wage-price spiral) 고리가 차단되느냐 여부다. 임금을 제외하고는 인플레를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 항목의 물가가 하락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임금과 물가 간 악순환은 기대인플레이션을 바탕으로 임금이 오르면 기업이 제품 가격에 전가시키고 이에 근로자들이 임금 인상을 다시 요구하면 물가 상승이 본격화된다는 이론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도 소비자물가가 1%포인트 오르면 임금 상승률이 4분기 시차를 두고 0.3∼0.4%포인트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초부터 주식 투자자들의 기대를 한층 부풀게 하고 있는 골디락스 장세가 실제로 나타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최근과 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Fed의 통화정책이 어디에 우선순위를 둬 추진했는가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특히 골디락스 용어가 처음 탄생한 1990년대 후반 신경제 국면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Fed는 1913년 인플레 안정을 목표로 설립됐다. 하지만 설립 이후 제1차 세계대전, 금본위제 집착, 1차 산품 과잉 생산 등으로 초래된 대공황 탓에 이 목표는 뒷전으로 물러났다. 테네시강 유역 개발로 상징되듯 국가 주도로 경기 부양과 고용 창출이 더 급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뉴딜정책의 근간이 됐던 케인즈 이론이 탄생했다.

그 후 베트남 전쟁, 1차 오일쇼크 등의 시험대가 있었긴 했지만 Fed는 전성시대를 맞았고 케인즈 이론도 주류 경제학으로 부상했다. 케인즈 이론의 총수요 관리 방식대로 금리를 내리기만 하면 침체되는 경기가 살아났고 반대로 금리를 올리면 경기 과열에 따라 오르는 물가도 잡혔기 때문이다.

케인즈 이론의 첫 시련은 뜻하지 않는 곳에서 발생했다. 1979년 2차 오일쇼크의 여파로 경기가 침체되는 속에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치자 케인즈 이론은 무력화됐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면 물가가 더 오르고 물가를 잡기 위해 재정지출을 줄이면 경기가 더 침체됐기 때문이다.

Fed 내부에서도 고민에 빠졌다. 전통대로 “물가 안정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 아니면 전통을 깨고 “경기를 부양시키는 데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를 놓고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Fed의 통화정책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이 설전은 후일에 ‘볼커 모멘텀’과 ‘역볼커 모멘텀’ 간 대혈투로 비유된다.

평행선을 달리던 끝에 Fed는 볼커 모멘텀을 선택해 힘겹게 ‘물가 안정’이라는 설립 목표를 지킬 수 있었다. 역볼커 모멘텀의 경기 부양 과제는 미국 재무부로 넘어갔다. 재정정책도 케인즈언의 총수요 관리대책이 한계에 봉착하자 세율 감소 등을 통해 경기를 부양시키는 공급 중시 대책으로 선회됐다.

볼커 모멘텀도 흔들렸다. 고민 끝에 Fed는 2012년 ‘고용 창출’ 목표를 양대 책무로 설정했다. 그 이후 10년 동안 Fed의 통화정책은 물가 안정보다 고용 창출에 더 우선순위를 둬 운영했다. 역볼커 모멘텀을 따르는 일부 Fed 인사들은 고용 창출을 1선 목표로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제시됐다.

뒷전에 물러날 뻔했던 볼커 모멘텀이 다시 힘을 얻은 것은 코로나19 사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Fed의 통화정책 여건에 또 한 차례 격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성장과 물가 간에는 종전의 ‘고성장-저물가’에서 ‘저성장-고물가’로, 고용과 성장 간에는 ‘고용 없는 성장(jobless recovery)’에서 ‘고용이 풍부한 저성장(jobfull downturn)’으로 바뀌었다.

뉴노멀 통화정책 여건에 선제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던 Fed가 지난해 3월 이후 인플레가 목표선의 4배 가깝게 웃돌자 제롬 파월 Fed 의장과 강경 매파를 중심으로 뒤늦게 볼커 모멘텀 방식으로 금리를 올렸다. 과연 올해도 볼커 모멘텀 방식으로 금리를 올릴 것인가 여부가 세계 증시에 골디락스 장세가 올 것인가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25년 만에 '골디락스 장세' 올까
Fed 금리 결정의 난제는

현재 Fed는 지난해 3월 이후 볼커 모멘텀 방식으로 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3대 난제에 걸려 있다. 인플레를 안정시키기 위해 ‘긴축’을 단행하다간 고부채에 따른 원리금 상환 부담이 증가하고 실물경기는 더 침체된다. 반대로 실물경기를 살리기 위해 ‘완화’ 정책을 고집할 경우 인플레가 증폭되고 부채가 급증하는 트릴레마 고통이다.

1990년대 후반 클린턴 정부 시절 Fed가 최근과 같은 상황에 봉착됐을 때는 정보기술(IT) 산업으로 풀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IT 산업은 2가지 새로운 현안을 해결해야 한다. 하나는 기업 권력이 국가 권력을 넘보는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테크래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테크래시(techlash)란 ‘기술(technology)’과 ‘반발(backlash)’의 합성어로 각국 정부와 빅테크 기업 간 힘 겨루기 현상을 일컫는다.

또 다른 하나는 IT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는 과정에서 고착화되는 ‘K’자형 양극화 구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횡재 효과’와 ‘상흔 효과’가 뚜렷한 IT 산업이 발전할수록 빈곤층이 두터워짐에 따라 노조 활동이 강해지고 자살 등 각종 사회병리 현상이 심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제3의 통화정책 수단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연초에 열렸던 전미경제학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최근처럼 심리 요인이 각종 경제활동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는 경기에 크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인플레를 안정시키는 방안은 기대심리부터 차단하는 것이다. 합리적 기대가설에 따르면 인플레 기대심리를 차단하지 못하면 임금과 인플레 간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과연 골디락스 장세는 올 것인가

인플레 기대심리를 차단하는 최선책은 통화정책의 생명인 ‘선제성’을 유지하는 길이다. 이번처럼 조기 진단에 실패해 선제성을 잃은 상황에서도 금리를 올릴 때 초기에 대폭 끌어올려야 인플레 기대심리를 차단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인플레 기대심리를 차단하는 것은 실물경기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통화론자들의 시각이다. 인플레 기대심리가 안정되면 기업은 실질비용 개선과 국민은 실질소득 증대 심리로 설비투자와 소비를 늘리면서 침체 국면에 빠지는 실물경기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과연 3대 난제를 풀 수 있을 것인지현재로서는 반반이다.

연초에 불고 있는 골디락스 장세가 올 것인가를 쉽게 예단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가지 희망을 갖고 하는 것은 금융위기 이후 금리 인상 시기와 속도를 결정할 때 Fed가 자산 시장 여건과 함께 경제지표에 의존하는 새로운 기준이다. 기준금리 변경은 케인즈언의 통화정책 전달 경로상 인플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정국의 금리 체계상 기준금리와 시장금리 간 관계가 ‘안정적’이라면 금융 시장 반응을 주목할 필요가 크지 않지만 미국의 경우 2004년 금리 인상 때부터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 왔다. 지난해 3월 이후 Fed가 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도 금융 시장의 자금경색이 심해지자 미국 재무부는 바이백, 즉 국채를 재매입해 유동성을 공급해 오고 있다.

또 하나 고려해야 할 기준은 ‘최적통제준칙(optimal control rule)’이다. 최적통제준칙이란 Fed가 양대 목표로부터의 편차를 최소화하는 기준금리 경로를 산출해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때그때 상황을 반영하는 유연성 면에서 테일러 준칙 등에 따라 산출된 적정금리를 토대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종전의 방식과는 차이가 난다.

양대 기준을 조합하면 두 번째 질문의에 대한 답이 나온다. 금리 인상 시기(속도 포함)를 경제지표와 금융 시장 반응을 동시에 고려해 결정할 경우 최적통제준칙에 따른 금리 인상 경로보다 앞당기거나 늦춰질 수 있다. 금리를 올릴 때 금융 시장 충격이 우려되면 그 시기가 최적통제준칙에 의한 경로보다 늦춰지고, 반대의 경우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Fed의 금리 인상 잣대인 경제지표에 조작 문제가 자주 거론된다는 점이다. 통계 조작은 정량적 통계의 ‘작성’ 단계에서 발생한다. 작성 조작은 각각의 통계당 세부 구성 항목 선정과 가중치 설정 문제로 귀결된다. 인플레 지표의 경우 국민 경제 생활에 민감한 항목을 제외하거나 가중치를 낮게 설정하면 늘 안정된 것처럼 나온다.

설문조사 통계의 경우 특정 목적에 부합되는 대상만을 추출해 조사하면 ‘표본오차(sampling error)’가 발생한다. 표본에 추출된 대상도 나중에 찾아올 후폭풍 등을 생각해 의도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비표본오차(non sampling error)’가 발생해 결과치가 크게 왜곡된다. 두 오차가 일정 허용 범위를 넘으면 통계 조작에 해당된다.

최근 들어서는 통계 선택과 해석 등 넓은 의미의 통계 조작이 문제가 되고 있다. 최고통수권자의 정치적 야망 등과 같은 특정 목적에 부합되는 통계만을 골라 발표하는 경우다. 같은 통계라 하더라도 특정 목적에 맞게 해석하고 반대 해석을 무시하거나 위기조장론으로 몰아가는 경우도 해당된다.

4년 전 미국과 한국 경제처럼 지표상으로 괜찮은데 경제주체가 침체를 우려하고 시장은 주가 폭락 등으로 과민하게 반응했던 상황을 가정해보자. 프레이밍 효과를 중시하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은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하자는 의사를 밝히면서 경기와 시장을 안정시켰다. 하지만 프레임에 갇혀 있는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은 ‘위기를 조장하는 가짜 미네르바 세력’으로 무시했다.

Fed가 비판을 받는 통계 조작은 인플레 지표 해석상의 문제다. 같은 지표라 하더라도 인플레를 안정시키려는 의지가 강할 때에는 ‘불안’하다고 해석해 매파 성향을 쏟아낸다. 하지만 경기 부양 등 다른 현안도 감안해야 할 때는 ‘안정’됐다며 비둘기 성향의 발언이 나온다. Fed의 인사들이 어떤 성향이 채워지느냐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이후 금리를 말이 뛰는 식으로 올린 데는 FOMC 보드 멤버로 강한 매파 성향의 위원들이 채워졌기 때문이다. 최고금리를 7%까지 올려야 한다는 제임스 블러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 자이언트 스텝을 주도한 로레타 메스트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와 에스터 조지 캔사스시티 연은 총재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 1월 말 이들이 모두 빠지는 대신 오스턴 굴스비 시카고 연은 총재,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 연은 총재, 로리 로건 댈러스 연은 총재 등 비둘기파 성향을 지닌 인사들이 새롭게 들어온다. 1990년대 후반처럼 강하게 나타날 가능성은 적지만 올해 25년 만에 골디락스 장세를 기대해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글 한상춘 한경미디어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